산다는 건, 붙잡는 것

풍선초 이야기(6)

by 리오라

사람들은 나를 덩굴식물이라고 불러요. 줄기가 곧게 서지 못하고 무엇인가에 몸을 기대어 자라거나, 땅을 기어 다닌다고 말이죠. 하지만 나는 이 이름이 왠지 엉성하고 성의 없어 보여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허리가 금세 휘긴 하지만, 처음엔 누구보다도 하늘을 향해, 태양이를 향해 곧게 자라나거든요. 태양이는 우리에게 인기가 아주 많아요.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뭔가를 바라보며 살아가잖아요.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가 오직 태양이만을 향하는 동안,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대상을 바라보며 산다는 거죠. 태양이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데, 사람도 그런 생명을 주는 무언가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걸까요?


물론 우리도 혼자서는 곧게 자랄 수 없어요. 누군가의 손길을 붙잡아야만 자라날 수 있지요. 하지만, 세상에 도움 없이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어디 있겠어요. 사람도 태어나자마자 부모님과 가족, 선생님과 친구들… 수많은 손길에 의지하며 자라잖아요.


친구들 중에는 줄기나 잎에 가시나 갈고리 같은 털을 달아 그것들로 몸을 붙잡는 이도 있고, 나처럼 손을 길게 뻗어 감아 올라가는 아이들도 있어요. 이웃으로 살던 담쟁이덩굴 아저씨는 힘이 대단하셔서 커다란 벽도 가볍게 기어올랐지요. 높은 건물조차 주저 없이 타고 오르는 걸 보면, 인간들이 실내에서 땀 흘리며 벽을 오르는 게 어쩐지 우스워 보였어요. 아저씨는 늘 “타고난 건 아무도 못 이기지’라며 자랑하곤 했거든요.


나는 아직 본 적은 없지만, 어떤 아이들은 좌우로 빙글빙글 돌며 자란다고 해요. 반시계 방향만 고집하거나, 꼭 시계 방향으로만 몸을 틀어가는 경우도 있대요. 또 어떤 이들은 몸이 약해 땅을 기듯 자라기도 하지요. 인간들에게는 낯설지 모르지만, 나팔꽃, 시계초, 바닐라, 호프, 아이비, 자스민, 오이, 참외, 등나무… 다 내 친척들이에요. 나보다 훨씬 인간들과 가까운 친구들이지요.


내가 무엇인가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것은 타고난 운동신경 때문만은 아니에요. 더 본질적인 이유는 바로 저만의 특별한 ‘손’이에요. 인간들은 이걸 보고 줄기나 잎이 변한 것이라 하지만, 어림도 없는 말씀. 이 손은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손이에요. 변형이라니… 듣기만 해도 불쾌해요. 우리는 관절도 없고, 관절염도 없는데 말이에요. 부디 인간의 기준으로 우리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았으면 해요.


이 집으로 처음 옮겨와 흙 속에 뿌리내렸을 때, 내 손을 누가 잡아줄 수 있을까 불안했어요. 하지만 이 집 아이는 내가 쓰러지기도 전에 지지대를 서둘러 만들어 주었지요. 나는 꼼꼼한 성격이라 반드시 두 번은 손을 감아쥐어요. 바람이 불거나 누가 스쳐 지나가도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는 거예요. 사람들은 내 손이 스프링 같다며 신기해하지만, 붙잡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요. 길을 가는 아이들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놀이동산에 가면 엄마 손을 꼭 잡고, 소풍을 가면 친구들과 손을 꼭 잡죠. 커서도 마찬가지예요. 어른이 되어도 사랑하는 이의 손을 놓지 않으려 해요. 결국 그것은 ‘불안’을 견디려는 본능이에요. 나도 그래요. 인간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아요. 잘난 척을 하긴 해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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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이 집 아이가 내 손을 보고는 무척 놀랐어요. 난리가 났죠. 그냥 올라가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손을 뻗어 붙잡고 올라간다며, 아줌마까지 불러와 호들갑을 떨었지요.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 어리둥절했어요. 내 손 하나하나가 불안함을 견디려는 몸부림인데, 그걸 예쁘다며 웃어주다니요. 그러더니 이 집 아이는 내 손이 어디에 얼마나 붙어 있는지 일일이 찾아다니며 관찰했어요.


인간과 다른 점이 또 하나 있어요. 나는 손이 많다는 거예요. 나에게 산다는 건, 붙잡는 것과 같아요. 어떤 줄은 잡았다가 너무 날카로워서 놓아버리기도 하고, 어떤 곳은 오래 망설이다가 결국 꼭 붙잡기도 해요. 인간도 마찬가지겠죠. 누구의 손을 잡느냐, 얼마나 좋은 손을 잡느냐에 따라 삶의 무게와 빛깔이 달라지는 거예요. 살면서 단단히 잡아줄 손 몇 개만 있어도, 그것은 이미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아…… 오후가 되자 어디선가 노래가 흘러나와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는 브람스예요. 그는 유독 우리 덩굴식물들을 따뜻하게 바라봐준 사람이에요. 예전에 호프 덩굴(1) 친구가 모임에서 말하길, 브람스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준 유일한 인간이었다며 찬양을 아끼지 않았어요. 그래서 브람스는 우리 세계에서 인기가 참 많아요. 특히 그의 여섯 개 가곡 중 작품 번호 3번, 그중 제2곡 ‘사랑과 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에요.


사람들은 식물이 무슨 음악을 듣냐고 하겠지만, 예전에 관련 연구도 있었고 그때 나도 인터뷰에 응했어요. 그런데 내 이름이 빠져서 무척 서운했지요. 우리는 인간보다 음악을 더 좋아해요. 음악이 들리면 마음이 흔들려 어쩔 줄 모르겠어요. 그래서 어떤 농장에서는 주인이 꼭 음악을 틀어준다고 들었어요. 내가 살던 포도밭 농장에서도 늘 음악이 흘러나왔지요. 지금 들리는 이 곡도, 그때 듣던 바로 그 곡이에요. 어쩌면 이 근처에도 포도밭이 있는 건 아닐까요? 이렇게 완벽한 선곡이라니……


‘포도나무 덩굴이 흔들거릴 때(2)’ 이 집 아이, 제법 감각 있네요!




(1) Die grüne Hopfenranke

(2) Liebe und Fruhling I, Op. 3/2: Wie sich Rebenranken schw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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