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초 이야기(11)
요 며칠, 태양이가 유난히 말이 많아졌어요. 늘 그렇지만, 특히 7월 이맘때가 되면 한껏 높이 떠서 긴 수다를 떨곤 해요.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쏟아내다 보니, 이 시기에는 태양이를 만나지 않은 친구들이 없을 정도예요. 누구네는 어떤 색 꽃을 피웠다느니, 뒷마을 꿀벌이 어디로 여행을 떠났다느니, 옥수수가 익으면 하모니카 대회가 열린다느니, 아랫마을 청개구리가 분홍 레이스 달린 치마를 입은 아이에게 납치되었다느니… 정말 온갖 이야기를 다 하고 다녀요. 그러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집에 늦게 들어간다고 했어요. 사람들은 그런 사정을 알지도 못한 채, 해가 길어졌다며 마냥 좋아하지요. 몇 달 전만 해도 금세 어두워졌는데, 이제는 낮이 한참이나 길어졌어요.
오늘은 아침부터 나를 찾아와 떠들더니, 갑자기 피곤하다며 잠시 쉬고 가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아뽀야가 꼼짝도 하지 않자, 태양이는 눈치를 보다가 조용히 자리를 떴어요. 나라고 당장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없어서, 정말 힘들 땐 구름 아줌마에게 가서 기대 보라고 조언해 줬어요. 나도 아주 지칠 때면 구름 아줌마를 찾곤 해요. 아줌마는 언제나 내게 포근한 휴식 같은 존재예요. 태양이는 내게 꼭 필요한 친구지만, 구름 아줌마가 없으면 마음 한켠이 허전해져요.
오늘은 태양이랑 너무 떠들어서 그런지 목이 바싹 말랐어요. 이 집 아이가 나타날 시간이 다 되었는데, 오늘따라 좀 늦는 것 같아 속이 타들어 갔어요.
그때였어요.
“목마르지? 오늘은 꽤 더울 것 같아.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됐거든.”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이가 큼직한 물을 한가득 들고 나타났어요. 나에게 물을 줄 때의 그 표정은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 보였어요.
왜일까요.
물은 자기가 마시는 것도 아닌데, 나에게 주는 것이 그렇게 기쁠까요? 시원하냐고 몇 번이고 물으며 싱글벙글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주는 것’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져요. 자기는 목이 마른 것도 아닌데 왜 마음이 시원해지는 걸까요? 정말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어 졌어요. 나는 과연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일단은 꿀꺽꿀꺽, 숨도 쉬지 않고 물을 마셨어요. 역시 말을 많이 하면 힘이 빠져요. 특히 태양이와 긴 대화를 한 날은 더 그렇지요.
그때 아이가 말했어요.
“아뽀야, 정말 멋져. 너무 걱정하지 마.
너에게 기댈 수 있는 게 참 많아.
이름부터가 그렇잖아. 풍선이도 너한테 기대잖아.
정말 대단한 거야. 누가 이런 안식처가 될 수 있겠어?
너밖에 없어.”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는 듯, 아뽀야가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어요.
나도 이 집 아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어요. 하지만 우리 둘은 중요한 힌트를 하나 얻었어요.
이름이 그렇다?
그건 분명 오색방울새가 했던 말이었어요.
아뽀야의 이름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다는 뜻이었지요.
아뽀야는 그저 말 한마디를 들었을 뿐인데, 왠지 힘을 내는 것 같았어요. 내 팔에 걸쳐 있던 그의 가지가 살짝 움직였어요. 나는 누구보다도 먼저 아뽀야의 기분을 알 수 있어요. 우리는 이제 서로의 마음에 영향을 주는 사이가 되었어요. 나도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더 간절해졌어요. 이름 속에 담긴 비밀을 꼭 알고 싶어졌어요. 그걸 알게 되면 아뽀야의 고민도 조금은 덜해질 것 같았어요.
그러려면 방법은 하나뿐이에요. 이 집 아이에게 직접 말을 걸어야 해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뭔가 해주고 싶어 졌어요. 아뽀야를 위해서요.
막상 마음을 먹고 나니,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어요. 그래도 용기를 내야 했어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뽀야를 위해서요.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어요.
이 집 아이는, 내가 마음속으로만 생각해도 그걸 알아챈 적이 있었어요.
정말 간절히 바란다면, 말보다 마음의 대화가 더 효과가 있을지도 몰라요.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전해지는 무언가가, 어쩌면 존재할지도 모르니까요.
나는 어떤 마음을 전해야 할지 밤새 고민하기로 했어요.
아뽀야도 내 마음을 아는지, 어제보다 조금은 기운을 내는 것 같았어요.
그래요, 내가 해주면 돼요. 내가 해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