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초 이야기(14)
한바탕 무엇인가 휩쓸고 지나간 뒤의 고요함이랄까요.
마음이 편안한 것도 같고, 왠지 가라앉는 것도 같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아침 내내 내 마음이 이리저리 오가요.
오렌지자스민은 오늘따라 유난히 짙은 향기를 뿜으며 아침부터 싱글벙글 웃고 있어요. 무슨 일인지 묻고 싶지만, 괜히 말을 섞었다가 온종일 수다 폭탄을 맞을까 봐 누군가 대신 그 이유를 물어주길 조용히 기다리고 있어요.
아뽀야도 한결 편안해졌는지, 내가 조금씩 손을 잡고 오를 때마다 살며시 도와주는 것 같아요. 며칠째 나는 시원한 물을 잘 마시고 있지만, 멀리 시골에 있는 친구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너무 힘들다고 난리래요. 나는 이 집 아이, 아니 심오 덕분에 이렇게 시원하게 물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해요.
그런데 요즘은 구름 아줌마가 어쩐 일인지 보이질 않아요. 심술이 나신 건지, 어디 놀러 가신 건지…
하늘엔 그림자 하나 없어요. 예전엔 구름 아줌마가 하늘을 가릴 때마다 이기적이라며 투덜댔는데, 이렇게 안 보이니 혹시 어디 편찮으신 건 아닌지 괜히 걱정돼요.
조용한 아침, 고요를 만끽하고 있는데,
갑자기 우르르쾅쾅!
하늘을 찢는 듯한 소리에 평화롭던 마음도 산산조각 났어요.
너무 놀란 나는 본능적으로 아뽀야를 꽉 끌어안았어요.
그건, 며칠간 모습을 감췄던 구름 아줌마가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였어요.
그런데 오늘따라 소리가 너무 커요. 원래 이런 분은 아닌데…
구름 아줌마가 아이스크림이 맛있는 나라로 여행을 갔다던데, 거기서 새 기계라도 가져오신 걸까요? 이렇게 요란한 소리를 내는 이유가 너무 궁금해요. 소리는 벌써 크게 들리는데, 정작 구름 아줌마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아요. 목소리만 커진 걸까요?
참, 멀리서부터 울리는 그 큰 소리가 어쩌면 그 이유일지도 모르겠네요. 그 나라에는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고도 했거든요. 혹시 노래를 배워오신 건 아닐까요? 괜히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나는 아뽀야와 함께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며 아줌마를 기다려보기로 했어요.
옆에 있던 오렌지자스민도 긴장한 눈빛으로 창밖을 뚫어져라 바라보았어요. 그때부터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내 마음도 따라 어두워졌어요. 늘 느끼는 거지만, 구름 아줌마는 내 마음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밝은 옷을 입고 오시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고, 어두운 옷을 입고 나타나면 괜히 마음이 가라앉거든요.
그런 생각에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중, 갑자기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혹시 친구를 데리고 오신 걸까요? 또 한 번, 누군가가 창을 ‘쿵’ 하고 두드렸어요.
깜짝 놀란 오렌지자스민은 울먹이며 나를 바라봤어요. 그렇게 세게 두들기지 않아도 다 들릴 텐데…
정말 성격 급하신 분이에요. 몇 번 더 강펀치를 날리더니 이내 창가를 후드득 두드리기 시작했어요.
“와, 비 오네~!”
심오가 갑자기 뛰어나와 창밖을 바라보며 기뻐했어요. 우리는 깜짝 놀랐는데, 비 온다고 저렇게 좋아하다니… 뭐, 시골에 있는 친구들이라면 갑작스러운 선물처럼 찾아온 비에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고 요란하게 오는 빗님은, 솔직히 좀 별로예요.
가끔 이런 빗님들이 있어요. 대체로 구름 아줌마가 검은 옷을 입을 때 함께 오는 분들이에요. 이런 빗님들은 키도 크고, 힘도 세고, 눈빛은 부리부리하고, 목소리도 아주 커요. 이런 날엔 괜히 몸을 사리게 돼요.
나는 비를 좋아해요.
하지만 그건 조용하고 우아한 분위기의 비예요. 이렇게 소란스럽게 오는 빗님이 오면 나는 당장 창을 닫고 싶어 져요. 내가 좋아하는 빗님은 보슬빗님이에요. 잔잔한 목소리, 조금씩 스며드는 웃음처럼 부드러운 감촉… 그런 빗님은 내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져줘요.
물론, 조용한 빗님만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장대빗님도 있어요. 힘은 세지만, 한 방향으로 곧고 정직하게 떨어지는 그 모습은 정말 매력적이에요. 일편단심 장대빗님은 우리 모두가 우러러보죠.
보통 꽃님이 모습을 드러낼 즈음이면 숨바꼭질을 좋아하는 장마빗님이 슬쩍 나타나요. 사람들은 장마가 귀찮다며 우산을 챙기기 싫다느니 불평을 쏟아내지만, 나는 장마빗님과 노는 게 재미있어요.
그러고 보니, 장마빗님이 곧 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