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꾸기

풍선초 이야기(20)

by 리오라

심오는 아침부터 나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어요. 좀 더 힘을 내보라며 응원까지 하는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나는 그냥 말없이 멀뚱멀뚱 바라볼 뿐이죠. 나는 여전히 내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데, 그게 힘들어 보였던 걸까요. 그렇게 기다리는 풍선이 달리지 않아서 걱정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아침부터 나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물도 주고, 말을 걸고, 응원하고… 한참을 내 앞에서 떠들고 있어요.


요즘은 날이 더워서인지 창밖을 보면 사람들의 발걸음도 영 가볍지가 않네요. 그렇게 처져 있는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나까지 늘어지는 기분이 들어요. 최근에 이 집에 들어온 파릇이는 아직 다가올 계절도 모른 채 방긋방긋 웃고만 있어요. 얼마 전 조그만 남자아이가 들고 와서 “이건 먹는 채소야”라며 한참 떠들더니, 내 앞에 툭 내려놓고 갔어요. 파릇이는 머리카락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는데, 그런 걸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날이 있어요. 너무 지루한 날엔, 그것만으로도 심장이 콩콩 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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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건 참 묘하고 즐거운 일이에요. 관심이 없으면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보이지 않으니까요. 화단에 꽃이 아무리 많아도, 나비나 벌은 늘 자기만의 '그 꽃'을 향해 날아가요. 그건 곧 눈앞에 들어온 대상을 향한 자연스러운 선택이겠죠. 파릇이가 눈에 들어온 것도 내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심오가 아침마다 나를 바라보는 것도 같은 이유겠네요.


가끔 오렌지자스민을 보면 괜히 질투가 날 때가 있어요.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아이의 단점을 찾으려 하고, 거들먹거리며 말하고, 괜히 내가 더 잘났다는 듯 쓸데없는 자랑을 늘어놓게 돼요. 결국은 내 안의 불안이 나를 그렇게 만든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오렌지자스민은 참 예뻐요. 관심이라는 건 같아 보여도, 그 눈길 하나하나의 온도는 서로 달라요. 그런 미묘한 차이까지, 우리는 느낄 수 있어요.


문득, 아침 내내 나를 바라보던 심오의 눈이 떠올라요. 나는 꽃을 크고 예쁘게 피우는 친구들에 비해 눈에 띄는 구석이 없어요. 그저 조용히 위로 뻗어 올라가려 애쓸 뿐, 어디에든 조용히 묻어가길 좋아해요. 그런데 이 집 애는 나를 볼 때마다 작은 장점들을 하나씩 발견해 내요. 식물 주제에 뭘 알겠느냐고 사람들은 말하겠지만, 우리는 딱 보면 안다니까요. 눈빛만 봐도, 그 사람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어렴풋이 읽을 수 있어요.

그래서일까요. 사람들은 우리를 오래 보지 않아요. 그저 스쳐가는 풍경처럼 지나치지, 마주 앉아 대화하듯 바라봐 주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평생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친구들이 있을 정도라니까요.

그러니 오래도록 눈을 맞추는 건, 작은 기적 같아요. 그런 면에서 나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에요.


사람들의 눈 속에는 그들만의 하루, 인생이 담겨 있어요.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면 눈에 잔상이 남아요. 오래 정성껏 바라보면 눈 속에 사진처럼 찍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눈 속에 나무나 꽃이 담겨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작년엔 단 한 사람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시골에 사는 친구들은 자주 그런 사람을 본다고들 하지만, 나는 어중간한 곳에 살아서인지 더 어려워요.


그래서일까요. 눈에 나무나 꽃이 담겨 있는 사람을 만나면 괜히 괜히 따뜻해지고, 숨소리만 들어도 예민했던 마음이 풀어지는 것 같아요. 마음의 여유가 느껴지는 거죠. 하지만 요즘 사람들 눈 속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점점 다른 것들로 채워지는 것 같아요. 주로 동그란 금속이나 네모난 종이쪼가리 같은 것들이죠. 하지만 그게 너무 많아지면 눈이 흐려지고, 시야가 좁아져요. 그러니 다른 것들이 보일 리가 없죠. 그래서 나는 눈에 여백이 있는 사람이 좋아요. 그래야 나 말고도 다른 것들을 볼 수 있으니까요. 무언가로 꽉 찬 눈을 마주하면, 나는 먼저 시선을 돌리게 돼요. 그렇게 우릴 외면하는 사람들은 사실, 우리가 먼저 외면한 거예요. 우리는 더 빨리 미세하게 느낄 수 있거든요.


할아버지께서는 늘 말씀하셨어요.

“눈을 가꿔야 한다. 눈이 흐리면 세상도 흐리게 보인다.”

흐리게 보이는 이유가 늘 날씨 탓만은 아니라고 강조하셨어요.

그리고 누군가를 바라볼 때, 이유는 딱 하나면 충분하다고 하셨어요.

그 안에서 좋은 점을 찾으려는 마음, 그 마음이 모든 걸 결정한다고 하셨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눈을 청소해야 해요. 깨끗하게 닦고 비워야만, 다른 것들을 제대로 볼 수 있으니까요.


오늘따라 오렌지자스민이 참 아름답게 느껴지고, 파릇이의 머리카락도, 봉언니의 표정도, 그리고 심오의 눈빛도 모두 특별하게 빛나는 것 같아요. 눈과 마음의 창을 깨끗이 닦으면, 보이지 않던 것들까지 깊숙이 스며드는 걸 느껴요. 오래된 기억, 소소한 일상, 작은 웃음들… 그것들이 눈 속에 차곡차곡 쌓여서 나를 살게 해요.


그렇게 바라봄과 비움 속에서, 나는 오늘도 천천히 내 세상을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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