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2010년에 결혼했다. 우리 나이로 내가 서른넷, 아내가 서른이었다. 결혼 당시 우리는 둘 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결혼 1주년 기념일에는 우리 둘 다 직장을 그만둔 상태가 되었다. 플로리스트였던 아내는 언젠가는 해야 할 본인의 샵을 시작하기 위해 직장을 나왔고 사회 복지사로 일했던 나는 그동안에 쌓여왔던 건강과 비전에 관한 문제들로 인해 사표를 썼다.
그 후 10년이 지났고, 우리는 서울 모처에서 카페를 함께 하고 있었다. 우리의 업장은 처음에는 [꽃집]이었다가 [플라워 카페]가 되었고 [플라워 + 소품 카페]가 되었다. 카페 손님들이나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은 결혼하고 10년 이 되었다고 하면 아이는 어떻게 되냐고 묻는다. 아이가 몇 살인지 아들딸 몇 명인지를 묻는 질문에 우리는 '없다'라고 대답했다. 처음에는 '아직 없다'였다가 '없다'가 된 지 도 시간이 꽤 지났다. 아이를 낳게 해주는 용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기도 했지만 나는 뭔가 마음에 별로 내키지 않아서 검사 후 한두 번 더 가다가 그만두었다. 아이를 잘 키우기 너무 어려운 세상이기도 하고, 주변에 동지(?)들이 많기도 하고, 지금도 행복하다 생각하기도 하고... 결혼한 지도 10년 차가 되었으니 '아직 없다' 보다는 '없다'가 맞는 듯했다. 예전에는 아이가 없다고 하면 다들 걱정하면서 자신이 아는 비법을 이야기해 주거나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 중 결혼 이후 최장기간 아이가 없다가 부모가 된 사람 이야기를 해주며 용기를 주려고 하였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일부러 안 가지시는 거예요?" 하고 조심스럽게 묻곤 한다. 우리의 대답은 기독교인에겐 "하나님이 계획이 있으시겠죠!"였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 반반이에요."였다. 그러면 기독교인 여부와 상관없이 "애 있으면 힘들어요. 어려도 힘들고 커도 힘들고..."라고 하거 나 "요즘은 없이도 행복하게 잘 살더라고요."라고 말해준다.
어떤 손님은 애도 없이 부부간에 무슨 이야기를 하냐 고 부부간에 재미있는 건 이제 다 해봤으니 애가 있어야 삶이 재미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를 비롯 한 많은 부부들이 아이 없이도 재미있게 살아가는 것이 요즘이다. 가끔씩은 우리 둘 중에 나중에 죽는 사람은 지켜봐 주는 사람도 없이 외롭게 죽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나 죽는 거 지켜보라고 아이를 낳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어쨌거나 아이 없는 삶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생활의 모든 것을 둘만의 생활에 맞춰서 살고 있었다. 단둘이 살 기 딱 좋은 시내의 오피스텔에서 편리한 생활을 만끽하던 어느 날이었다. 주일이었는데 교회 가려고 준비하던 아내 가 이가 아프다고 했다.
그럼 내일 치과 가야겠네!
이가 튼튼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 때문에 누구보다 열 심히 치아관리를 하는 아내인데, 오랜만에 이가 아프다고 한다. 주말이라 교회 갔다 와서 맛있는 걸 먹으려고 했는 데 이에 부담이 없는 걸로 먹어야겠다 생각을 했다. 교회 오가는 길에 운전을 하는데 며칠 전 생각이 났다. 같이 차를 타고 가는데 개념 없이 우리 앞으로 끼어드는 차가 있었다. 평소라면 '운전을 왜 저렇게 해, 진짜!' 하고 서로 맞장구 치고 말 것을 아내가 정식으로 화를 내었다. 물론 문 열고 내려서 시비가 붙은 건 아니지만 평소보다 길게 역정을 내셨다. 그 일도 그렇고 이도 갑자기 아프다고 하고, 몸이 어디가 안 좋거나 요새 많이 피곤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저녁때 불현듯 몇 년 동안 수납장안에 묵혀 두었던 임신 테스터를 찾아내 사용을 했고 흐릿한 두 줄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10년 차 부부다. 섣불리 기뻐하거나 서두르지 않는다. 임신이라면 과연 몇 주 차일까 차분히 계산을 해 본 후 내일은 치과만 가기로 했다. 가서 임신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 후 치료를 받기로 한다. 산부인과는 아직 안 간다. 너무 이른 주차에 가면 착 상이 되었는지는 알 수 있지만 아이가 너무 작아 아이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게 한정적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미 나이도 많고 테스터도 오래되었고, 변 수가 많기 때문에 차분하게 일을 진행하자고 서로를 진정시켰다. 산부인과는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는 9주로 추정되는 시기까지 기다렸다 가기로 했다. 우리는 무 리하거나 충격을 가하거나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매사에 조심하면서도 평소와 똑같이 생활하였다. 어쩔 수 없이 아이에 대한 대화가 나오게 되었지만 대화의 마무리는 "아니라고 해도 너무 실망하지 말자."였다. 지금 와서 이렇게 쓰자니 갑자기 애틋해진다.
그리고 드디어 산부인과에 갔다. 우리는 10년 차 부부로서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평일 낮 시간은 매장 영업시간이라 나는 일을 하고 아내 혼자 병원에 갔다. 같이 일하는 친구에게는 그냥 병원에 간다고 했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아가의 심장소리를 들려주셨는데 아내가 그 소리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선생님은 깜짝 놀라서 "왜? 왜? 원하지 않는 임신이에요?"라고 물어보셨다고... 2~3주 동안 조심스럽게 기뻐하던 마음이 한꺼번에 풀려서 눈물이 나왔나 보다. 인생은 이렇게 참 '뜻하지 않게'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