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영아리오름, 비오는 날의 제주

by 제주소년
물영아리오름

제주의 오름은 다양한 모습과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변 픙경이 멋지게 보이는 오름, 우거진 숲이 매력적인 오름,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오름 등등...


오늘 제가 오른 물영아리오름은 조금 더 특별한데, 비 오는날에 오르면 정말 멋진 오름이랍니다.


보통 제주도는 비가 온다 하면 수많은 여행계획들이 물거품이 되버리곤 하는데요,

물영아리오름은 제주에 비가 내릴 때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죠.

정상 굼부리에 습지가 형성되어 있어, 비가 오면 습지가 호수처럼 물로 가득 찬다고 합니다.

람사르 습지 보호구역으로도 선정이 된 물영아리 오름을 한번 구경해볼까요


입구에 있는 수망리 마을소개입니다.

수망리 라는 이름은 본래 마을이름인 '물보라마을'을 한자로 표기한 이름이라고 합니다.

물을 담고있는 물영아리오름과 굉장히 잘 어울리는 마을이름 같습니다.


갑자기 심장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이 귀여운 생물체가 찰나에 제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귀여움입니다.


사실 오름이 뭐가 중요합니까...

람사르 습지가 뭐가 중요하겠어요...

이렇게 귀여운 고양이가 있는데!!!

물영아리오름 따위에 오르는 것보다 1초라도 더 고양이를 바라보는게 저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정신없이 고양이를 촬영하고 바라보고 귀여워해주고 재롱부리고 놀아주다보니 입구에서만 1시간을 머물게 됩니다.


이 고양이는 제가 물영아리를 들릴 때마다 보이는 것을 보니, 이 동네의 터줏대감 고양이인 것 같습니다.


물영아리 오름 초원

오름 입구에 들어서니 초원의 풀을 뜯고 있는 귀여운 송아지가 저를 반겨줍니다.

드넓은 초원 뒤로 물영아리오름의 모습이 보입니다.


비오는 날의 오름은 굉장히 어둡습니다.

특히 물영아리오름은 삼나무가 굉장히 빽빽히 자라있어서, 어두컴컴하고 으스스합니다.

마치 선로처럼 깔려있는 나무발판이 저를 어둠의 지하던전으로 인도하는 듯합니다.

쪼렙인 저는 천천히 조심스레 걸음을 옮깁니다.


삼나무 숲

마치 전설의 고향에 나올 것만 같은 으스스한 삼나무숲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삼나무 숲이 참 좋습니다.

고요하고 듬직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삼나무숲들...

숲을 지나가는 바람소리만이 귓가를 스치며, 인적없는 삼나무숲 사이에서 저는 묵묵히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갑자기 물영아리오름의 정상부까지 정말 미친 난이도의 지옥의 계단이 쭉 펼쳐집니다.

드문드문 만나는 오름꾼들의 거친 숨소리에서 동질감이 느껴집니다.


중간중간에 설치되어있는 나무벤치에서 휴식을 취하며, 오름꾼들끼리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응원을 해줍니다.


와 드디어 다 온 것인가!

지옥의 계단을 뚫고 마침내 습지대에 도착한 듯합니다!!

두근두근두근...


물영아리 오름 정상부 습지

마침내 도착한 정상부 습지대!

근데... 근데 이건....

기대보다 너무 별로였습니다!!!!!


뭔가 백록담이나 사라오름의 호수같은 이미지를 상상했는데...

정말 악어때가 나올 것 같은 탁한 습지대였습니다.

뭐야 흙탕물이자나... (근데 생각해보니 습지대는 탁한 흙탕물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속상합니다...


옆에서 같이 오르던 커플은 영 실망하는 눈치입니다.

저도 의문이 듭니다.

왜 제주전문가들은 물영아리오름을 그렇게 추천했을까?


노루, 개구리 등 다양한 동식물 생태가 있는 물영아리 오름


이런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양한 동물들이 습지대에서 놀고 있습니다.

귀여운 노루 커플, 자그마한 개구리, 이름모를 새들이 마음껏 놀고있는 것을 바라보며 인간의 기준에서만 오름이 이쁘지 않다고 불평한 저를 반성하게 됩니다.

뛰노는 동물들을 보며, 람사르 습지인 물영아리오름은 자연적으로 정말 희소성있고 소중히 보호해야 할 곳임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습지대를 벗어나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은,

올라올때 지옥의 계단과는 다른 아주 완만한 둘레길입니다.

저는 물영아리오름을 걸으며 습지대보다 이 삼나무숲에서 정말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고요하고 조용한 삼나무숲은 제주 자연의 속살을 어김없이 보여줍니다.

자연의 풍미를 듬뿍 들이마시며 기분좋게 걸음을 옮깁니다.


정상에서 내려오며 걷는 둘레길은 경치도 참 좋습니다.

나무 틈새로 보이는 넓은 초원과 풍차는 제 가슴을 벅차게 만듭니다.


제주 어니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산'

제주의 오름에 간다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묘입니다.

흔히 벌초를 하러 갈 때 '산에 간다'고 표현을 하는데, 묘를 산이라 부르는 건지, 정말 산에 있는 묘에 가서 그런건지 정확한 뜻은 모르겠습니다.

돌담으로 둘러쌓인 묘를 보니 묘하게 오름과 참 닮았습니다.


숨어있는 노루 찾기.

노루야~ 어디를 가는거니?


오름에 들어올 때에는 귀여운 송아지 한마리만 만났는데, 나갈 때에는 어느새 송아지 가족이 모두 모여 풀을 뜯고 있습니다.

자연의 향기(=송아지 응아냄새)가 코를 스윽 훑고 지나갑니다.

흐읍... 저에게는 익숙한 향기지만 여행객들에게는 썩 유쾌하지 못한 향기입니다.


이렇게 물영아리오름 방문을 마무리하고 다시 입구의 버스정류장으로 돌아갑니다.

버스 배차간격이 1시간 정도나 되어서, 꼼짝없이 40분이나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배고프고 목이 말랐는데, 이때 마신 2천원짜리 콜라의 맛을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단언코 20만원어치 가치의 꿀맛이었습니다ㅎㅎ




총 트레킹 시간 : 약 4시간

걸은 거리 : 6.5km

이동 수단 : 대중교통(제주버스터미널 - 물영아리 / 231번,232번)



-총평-

저는 솔직히 여행객들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르는 난이도가 꽤 높고, 물영아리오름은 올랐을 때 주변 경치가 보이지 않는 오름이기 때문입니다. 옆에서 함께 올랐던 여행객커플이 다소 아쉬워하는 것을 보며, 괜히 제 마음이 더 미안해졌습니다.

물영아리오름은 분명 자연적으로, 지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희소성있고 가치있는 오름이지만, 여행장소로써는 다소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주변에 난이도도 훨씬 낮고, 경치도 아주 멋있게 볼 수 있는 오름을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바로 근처에 있는 아부오름과 따라비오름을 추천합니다!

반대로 제주도민들에게는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다른 오름들과는 차별성이 있는 특별한 오름이고, 둘레길의 삼나무숲의 분위기가 정말 아름답습니다.
양갈래로 나뉘는 둘레길만 한 바퀴 걸어도 참 좋은 곳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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