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죽음과 그 후에 남은 것들
그들은 실패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의 모든 기준에서 그렇다. 시의성, 적시성, 공정성, 영향력, 효과성—이 모든 말들은 이젠 거푸집처럼만 느껴진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수익성이다. 한국 언론의 가장 끔찍한 실패는, 더 이상 먹고살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단순한 사실 앞에선 어떤 고상한 논의도 무력하다.
그들은 지금 살아남지 못하고 있다. 아니, 살아있는 척을 하고 있다. 옛 영광의 유물 위에 앉아 그 위엄을 되뇌이는 동안, 유튜브 속 슈카는 열 명 남짓한 팀을 이끌고 고정 수익을 올리고 있고,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어느새 다시 '방송'으로 돌아와 독립을 외치며 안정적인 운영을 유지하고 있다. 이름값은 잃었을지 모르지만, 시스템은 여전히 돈을 만들고 있다. 반면 대다수의 언론은 기사가 아니라 행사를 팔고, 광고와 보도를 버무려 매출을 짜낸다. 과연 언론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 모든 쇠락의 근저에는 디지털 전환에 대한 오판과 무지가 있다. 한때 신문은 금광이었다. 100만 부는 기본이었고, 구독자는 꼬박꼬박 돈을 냈다. 대기업은 광고를 실어달라며 로비했고, 기자들은 사회적 명예와 자율성, 그리고 꽤 괜찮은 연봉을 보장받았다. 그들은 권력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찾아왔고, 독자는 사라졌다. 언론은 당황했고, 선택을 해야 했다. 대부분은 자사 플랫폼에 투자하기보다는 네이버라는 타인의 집에 입주하기로 했다. 대신 전재료를 받았다. 값싼 유혹이었다. 독자는 무료 기사에 길들여졌고, 언론은 무료 기사를 양산하며 스스로를 파괴했다. “이건 우리가 쓴 기사가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항변했지만, 정작 ‘동아일보’의 이름을 단 어뷰징 기사들이 매일 수십 건씩 올라왔다.
독자의 신뢰는 무너졌다. 그리고 기자들은,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정규직 기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진짜 언론”을 만든다고 믿었다. 인턴기자들의 쓰레기 기사와 자신의 ‘명품 기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독자를 욕하면서도, 정작 그런 독자를 만든 시스템의 일부라는 사실엔 침묵했다. 자신들의 월급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런 건 관심 밖이었다.
시간이 흘렀고, 언론사는 더 이상 기사를 팔지 못했다. 대신 이벤트를 기획하고, 포럼을 열고, 유명 연사를 섭외해 기업과 정부 예산을 끌어모았다. 기자들은 영업사원이 되었고, 일부는 아예 회사를 떠났다. 대기업 홍보실로, 창업시장으로, 혹은 자기 이름을 걸고 언론사를 차렸다. 생존의 기술이 필요했다. 그리고 언론은 점점 ‘언론’이 아니게 되었다.
이쯤 되면, 누가 기자가 되고 싶어할까? 남은 건 껍데기뿐이다. 이름 있는 언론사들이 하나둘씩 건설사에 팔렸다. 그들은 더 이상 권력의 감시자가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메신저가 되었다. 그리고 신뢰는 다시 한 번 무너졌다. 더 이상 언론은 신뢰할 대상이 아니었다. 누가 뭐래도 손석희 한 명의 신뢰가 수백 명 기자를 거느린 언론사 전체를 압도했다. 그게 현실이었다.
물론, 아직도 언론이 다시 설 수 있는 길은 있다. 하지만 단 하나뿐이다. 수익 구조의 독립이다. 외부 영향 없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수익 모델 없이는 신뢰는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을 바꿔야 한다. 디지털 친화적 인력 구성, 자체 사이트에서의 데이터 축적, 네이버로부터의 독립. 기사와 광고를 분리하고, 속보성 경쟁에서 벗어나 깊이 있는 콘텐츠를 생산할 역량을 키워야 한다. 기자는 다시 기자가 되어야 한다.
문제는—그 어느 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독자에게 묻는다. 왜 우리를 이해하지 않느냐고. 정작 독자가 궁금한 건, 도대체 지금 당신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그 질문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