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셀로를 통해 본 믿음의 의미
현대는 정보의 과잉이 곧 신뢰의 결핍으로 이어지는 시대다. 우리는 너무 많은 사실을 알지만, 그래서 더욱 서로를 믿지 못한다. 정치와 언론, 이웃과 공동체 안에서조차 타인에 대한 의심이 공격으로 치닫고, 상처는 연대 대신 단절을 낳는다.
이런 시대에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는 한 편의 오래된 연극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를 정면으로 마주보는 거울처럼 읽힌다.
『오셀로』는 간단한 이야기다. 무어 장군 오델로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사랑한다. 그러나 간교한 부하 이아고는 그 사랑 사이에 작은 의심 하나를 심는다. 그것은 데스데모나가 카시오라는 장교와 바람을 피운다는 의혹이었다. 오델로는 확실한 증거 없이 점점 마음을 닫아가고, 끝내는 그 의심을 ‘진실’로 오해한 채 아내를 죽인다.
이 작품이 전하는 공포는 단지 한 남자의 질투심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의심’이 어떻게 관계 전체를 붕괴시키고, 더 나아가 공동체를 해체시키는가에 대한 철저한 해부다.
그 시작은 미세한 불안이었다. 데스데모나가 카시오를 돕는다는 사실. 오델로는 처음엔 웃고 넘기지만, 이아고는 질문을 던진다.
“정말 그녀를 믿습니까?”
이 말은 강력하다. 그것은 오델로에게 진실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믿음의 ‘근거 없음’을 자각시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믿음을 사랑이나 논리, 도덕 위에 세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믿음은 언제나 근거 이전의 감각이며 결단이다.
그렇다면, 이 희곡은 우리에게 어떤 대답을 주는가?
비극은 데스데모나의 죽음으로 끝나지만, 셰익스피어는 그 안에 조용한 희망을 남긴다.
바로 데스데모나 자신이다. 그녀는 오델로의 모욕에도, 의심에도 끝까지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 심지어 죽음 직전, 오델로가 자신을 죽인 것을 알면서도 “그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많은 독자에게 답답하고 심지어 분노를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품위이자 용기다.
믿음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한 낙관도, 맹목적인 신뢰도 아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믿음을 "불합리한 것에 대한 합리적인 헌신"이라 했다. 다시 말해, 믿음은 증명할 수 없음에도 감행하는 실존의 도약이다. 우리는 타인의 진심을 끝내 알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조차도, 함께 일하는 동료조차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믿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불확실성의 심연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걸고 관계를 선택하는 실존적 결단을 내리는 셈이다.
이 결단은 논리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보호 본능을 잠시 내려놓고, 상처받을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선택이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결과가 아니라 태도이고, 완성된 안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회의와 상처 가능성 속에서 갱신되는 윤리적 자세에 가깝다. 그것은 타인에게 나를 맡긴다는 뜻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삶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선언이다.
우리는 공동체가 무너지는 순간마다 ‘배신’을 문제 삼지만, 정작 공동체를 유지하게 만드는 것은 ‘믿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정의 지속성이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여는 순간 — 그것이야말로 실존적 용기이자, 오늘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덕목이 아닐까.
정치는 신뢰를 잃었고, 사회는 혐오로 가득 차 있으며, 일상의 관계마저도 불신 속에서 위태롭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 조심스럽게, 더 용기 있게 믿음을 선택해야 할 시간이다.
다시말해 믿음은 완성된 사실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태도이며 선택이다.
『오셀로』는 말한다. 의심은 우리를 찢지만, 믿음은 그래도 함께 살아보려는 사람의 품위를 지킨다고.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무너지는 세계를 다시 시작하게 할 가장 작은 불씨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