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왕, 통제, 그리고 코딜리어의 침묵

by 너부리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인간의 권력, 감정, 가족관계가 맞물린 복잡한 심리의 비극이자, 오늘날 우리 사회를 비추는 날카로운 거울이다. 특히 '통제(control)'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이 작품을 읽는다면, 현대 사회의 도덕적 갈등과 인간관계의 긴장 구조에 대해 깊은 통찰을 얻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리어왕이라는 인물과 그의 딸 코딜리어(Cordelia)를 대비하며, 통제를 넘어선 '존중(respect)'의 윤리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묻게 된다.


리어왕은 왕권을 나누기 전에 세 딸에게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말로 표현하라고 요구한다. 이는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 타인의 사랑조차 자신의 방식으로 통제하고자 하는 권력자의 욕망을 드러낸다. 고너릴과 리건은 아첨으로 그 기대에 부응하고 보상을 얻지만, 막내딸 코딜리어는 진실한 감정은 말로 강요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침묵한다. 리어는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그녀를 추방하지만, 결국 통제의 욕망이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해석은 여러 철학자들에 의해 심화되었다. 해겔(Hegel)은 『리어왕』을 윤리 질서의 충돌로 보았다. 그는 리어가 자연적 애정(가족의 사랑)과 정치적 권위(왕권)를 구분하지 못하고, 감정을 권력의 언어로 통제하려 했기에 비극이 시작되었다고 분석한다. 라캉(Jacques Lacan)은 리어가 코딜리어의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Nothing)"라는 대답에서 언어와 상징계의 결핍을 마주했다고 본다. 그는 이를 통해 리어의 욕망이 좌절되며, 상징 질서의 무너짐 속에서 리어의 광기가 시작된다고 해석한다. 또한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코딜리어의 침묵과 용서 속에서 윤리의 가능성을 본다. 그는 리어가 타자의 얼굴(코딜리어)을 다시 만남으로써 통제에서 해방된 존재로 회복된다고 보며, 타인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 윤리적 전환을 강조한다.


오늘날 우리는 이와 유사한 장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목격한다. SNS에서의 도덕적 분노,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름 아래 타인의 언행을 재단하고 고쳐주려는 문화, 혹은 사적인 관계 속에서조차 나의 가치관과 감정의 언어로 타인을 규정하려는 욕망은 매우 만연하다. 겉으로는 정의와 사랑이라는 이름이 붙지만, 그 속에는 내가 옳다는 확신에 기반한 통제의 충동이 자리잡고 있다. 이는 결국 타인의 자율성을 억누르고, 관계의 긴장과 파열을 유발한다.


이 지점에서 코딜리어의 침묵은 강력한 윤리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녀는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증명하라는 요구 자체가 부당하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침묵함으로써, 자신이 진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증명하지 않으면서도 지킨다. 이는 타인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려는 통제를 거부하고, 대신 그 사람의 오해와 실수를 '기다림'으로 감싸는 방식의 존중이다.



코딜리어의 사랑은 말보다 깊고, 반응보다 선한 신뢰에 기반한다. 그녀는 복수하지 않고, 리어가 변화할 수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은 실제로 리어의 내면을 변화시키며, 통제와 오만을 내려놓은 인간으로 회복시키는 힘이 된다. 이는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덕목인 '기다림'과 '인정'의 윤리, 즉 타자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함께 존재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 될 수 있다.


결국 『리어왕』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사랑을 말하면서도 통제를 욕망하고 있지는 않은가? 타인을 존중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그를 나의 기준에 맞추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코딜리어의 침묵과 기다림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고요하지만 단단한 윤리적 대안을 제시한다. 타인을 통제하지 않을 때 비로소 가능한 깊은 관계, 그것이 이 비극의 마지막에 남는 유일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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