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에서 맥베스, 그리고 현대의 리더십의 정당성

폭력과 인정 욕구의 정치

by 너부리

현대 사회에서도 일부 정치 지도자들은 특정 집단의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고, 그 외 구성원들의 요구나 권리를 무시하거나 억압하는 형태의 권력을 행사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외형적 합법성을 갖추고 있을지라도, 그 권력의 내면에는 종종 인정 욕구의 과잉, 불안, 그리고 통제를 위한 폭력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정치 행태는 단지 제도적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리더 개인의 심리와 권위의 정당화 방식이라는 보다 깊은 차원에서 분석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출발점으로, 막스 베버, 한나 아렌트, 안토니오 그람시의 정치 이론을 따라가며,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라는 극적 비유를 통해 오늘날의 정치 리더십 문제를 조명하고자 한다.



마키아벨리: 권력을 위해 악해질 용기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랑보다 공포를 택해야 하며, 때로는 도덕을 넘는 결단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폭력이나 기만도 정권 유지를 위한 전략이 될 수 있으며, 문제는 수단이 아니라 그 결과에 있다는 것이다. 그의 시각에서 보면, 강력한 일부 지지층의 충성을 확보하고 나머지를 억압하는 것은 효과적인 통치 전략일 수 있다.


그럼에도 마키아벨리는 "증오를 사지 말라"고도 충고한다. 지배를 위한 공포는 필요할 수 있으나, 그것이 구성원의 전반적 정당성 기반을 잃게 만들 경우, 결국 정권은 붕괴한다고 보았다. 이 균형을 잃은 대표적인 캐릭터가 바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다.



맥베스: 인정받지 못한 왕의 불안과 폭력


맥베스는 예언과 개인적 야망에 따라 덩컨을 살해하고 왕이 된다. 그러나 그는 왕위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정당한 군주라고 믿지 못하며, 타인의 인정 없이 불안 속에 시달린다. 이 불안은 다시 폭력으로 이어지고, 뱅코와 맥더프의 가족 등 정치적 위협이 될 수 있는 인물들을 제거하는 데 집착한다.


그의 권력은 결국 폭력과 불신의 악순환 속에서 붕괴하며, 셰익스피어는 이를 통해 정당성 없는 권력의 허약함과 자기파괴성을 드러낸다. 맥베스의 심리는 오늘날 강한 통제를 통해 존재를 확인하려는 일부 권력자의 불안 심리와 닮아 있다.




베버: 정당성 없는 권력은 권위가 아니다


막스 베버는 권력을 세 가지 정당성 유형으로 구분한다: 전통적, 카리스마적, 법적-합리적 권위다. 그러나 어떤 유형이든 중요한 것은 구성원이 해당 권위를 '정당하다'고 믿는가이다. 단지 법적 제도나 절차로 확보한 권력이라도, 구성원의 묵시적 동의 없이 행사된다면 그것은 '강제력'이지 '권위'가 아니다.


맥베스는 왕으로서 법적 지위를 가졌지만, 구성원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기에 통치의 권위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는 오늘날 일부 정치 지도자가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해도, 국민의 광범위한 동의 없이 일부만을 대표하며 폭력적으로 통치할 경우, 권력은 허약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렌트: 권력은 폭력의 대척점이다


한나 아렌트는 『폭력의 본질에 대하여』에서 폭력과 권력을 명확히 구분한다. 그녀에 따르면, 진정한 권력은 타인의 협력과 동의에 의해 성립하며, 폭력은 오히려 권력이 약하다는 증거다. 폭력은 설득이 실패했을 때 등장하며, 지속가능한 정치 질서를 만들지 못한다.


맥베스가 보여주는 건 바로 폭력에 의존할수록 권력이 붕괴되는 아이러니이다. 그는 자신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제거하지만, 더 많은 공포와 반감을 키울 뿐, 누구도 자발적으로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오늘날 억압적 통치 방식 또한 일시적 성과는 낼 수 있어도 지속적인 통치 안정성과 도덕적 정당성은 확보할 수 없다.



그람시: 정당성은 동의의 문화적 축적


안토니오 그람시는 물리적 억압보다 중요한 것이 "헤게모니(hegemony)", 즉 구성원들의 자발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문화적 주도권이라고 말했다. 권력은 총칼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옳다고 믿는 질서를 통해 가장 오래 유지된다.


맥베스는 헤게모니를 전혀 형성하지 못한 인물이다. 그의 정권은 공포에 의해 유지되며, 누구도 그의 통치에 내면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반면 죽은 뱅코의 계보가 왕권을 이어가는 결말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당성 있는 권위가 결국 복원된다는 그람시적 시각과도 맞닿아 있다.



인정 욕구와 폭력의 결합은 권력을 허약하게 만든다


현대 정치에서도 우리는 맥베스의 유령을 본다. 특정 지지층에 의존해 폭력적, 강압적으로 타인의 요구를 억누르는 정치 지도자는 단기적으로는 권력을 강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인정받고자 하는 불안과 폭력이 결합할 때, 그 권력은 자칫 스스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구성원들과의 관계를 파괴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악해질 수 있다고 말했지만, 베버는 정당성 없는 권력은 권위가 아니며, 아렌트는 폭력은 권력의 실패라고 했고, 그람시는 동의 없는 권력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맥베스』는 이 모든 이론을 하나의 인물 안에 응축시켜, 우리가 어떤 정치를 지향해야 하는지를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나가며: 향수로도 피의 냄새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 서사의 마지막에서 눈여겨볼 인물은 레이디 맥베스다. 그녀는 맥베스보다 먼저 욕망을 선언하고, 살인을 부추기며, 권력의 길을 실현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살인을 통해 목표가 달성된 후, 그녀는 점차 인간 관계에서 고립되고, 죄책감과 의미 상실 속에서 무너져간다. '손에 묻은 피는 씻을 수 있다'고 말하던 이는 결국 '향수로도 이 피의 냄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절규 속에서 자살한다.


레이디 맥베스의 서사는 인간이 사회적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아를 구성하고, 의미를 경험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녀가 끝내 삶을 지속하지 못한 것은 살인의 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권력 욕망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타인과 맺는 관계, 나 자신과 맺는 도덕적 연결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의미는 고립된 주체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의미는 관계 속에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기 선택과 책임의 과정 속에서, 그리고 자아를 넘는 어떤 가치나 공동체에 접속할 때 형성된다. 정치의 정당성 역시 그러하다. 정치권력은 타인을 억압하여 의미를 창출하지 못한다. 관계의 균형, 구성원의 동의, 책임 있는 실천을 통해서만 권력은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정치가 그 의미를 회복하는 길은 결국 관계로 돌아가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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