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국가를 잘 안다고 착각하는 이유
며칠 전, 택시기사와의 대화 중이었다. “정치인들은 다 똑같지. 세금만 올리고, 아무 일도 안 하잖아.” 그는 TV 뉴스에서 본 정책 하나를 언급하며 “그딴 건 필요 없어”라고 잘라 말했다. 그의 말은 흔하고 강력하다. 실제로 많은 시민이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 단순한 문장 뒤에는 하나의 커다란 착각이 숨어 있다. 우리는 국가를 안다고 믿지만, 실은 국가라는 시스템을 이해하기에는 인간의 뇌가 너무 작다.
현대 국가는 수천만 명이 상호작용하고, 서로 다른 가치와 목표를 가진 조직들이 복잡하게 얽혀 움직이는 초대형 복잡계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본디 사냥-채집 사회에서, 150명 정도의 공동체 안에서 기능하도록 진화했다. 이는 ‘던바의 수(Dunbar’s number)’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 제한된 뇌가, 수백만 명이 얽힌 제도, 이해관계, 피드백 루프를 어떻게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까? 대답은 명확하다. 거의 불가능하다.
정치는 TV에서 보는 드라마처럼 명확하지 않다. 어떤 정책이 좋은지 나쁜지를 단번에 알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은 거의 없다. 오히려 사람들은 ‘지금 내 삶이 힘든가?’ 혹은 ‘최근 뉴스에서 본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는가?’ 같은 단기적이고 감정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 전체를 평가한다. 이것이 바로 인지 편향의 작동 방식이다. 최근에 범죄 뉴스가 많았다면, 우리는 마치 범죄율이 급증한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실제 통계는 정반대일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정보를 충분히 갖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뇌가 필터링한 파편들만 가지고 판단한다. 확증 편향은 이 과정을 더욱 악화시킨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우리 신념과 비슷한 콘텐츠만 보여주고, 뉴스 헤드라인은 감정을 자극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정보에 밝은 시민’이라 여기지만, 실상은 자극적인 조각 퍼즐만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그리고 이 한계는 비단 일반 시민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 안에서 일하는 공무원들,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사람들 역시 동일한 인간 인지 구조를 가진 존재들이다. 그들도 정보의 과부하 속에 있고, 휴리스틱과 편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정책 결정은 제한된 시간, 압박,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이뤄진다. 공무원이 ‘무책임하다’는 말은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에서 제한된 인지 능력으로 책임을 지고 있다는 말로도 바꿔 읽을 수 있다.
실제로 정부 조직 내부에는 수많은 지시와 보고, 일정과 회의가 뒤엉켜 있고, 이는 일종의 인지적 피로와 집단적 자동반응을 야기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의사결정 피로(decision fatigue)’라 부른다. 하루에도 수십 번의 판단을 내려야 하는 관료는 결국 빠르고 단순한 판단 도식에 의존하게 되며, 그 결과는 때로 비효율 혹은 정책 실패로 이어진다. ‘왜 저런 결정이 내려졌을까’라는 질문 뒤에는 종종 이처럼 복잡성과 인간 인지 사이의 불일치가 놓여 있다.
예를 들어, 근로시간 단축 같은 구조적 정책이 단기간 내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책임자들이 현실을 몰라서 그렇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책임자들 역시 복잡한 이해관계와 정무적 판단, 제한된 정보 속에서 '충분히 괜찮은'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결정이 시간이 지나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있다. 이는 그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그 누구도 완벽히 예측할 수 없는 복잡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에서, 정부가 모든 것을 예측하고 통제하려 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도로 확장 정책이 교통 혼잡을 더 악화시키는 것처럼, 선한 의도가 복잡계 내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이는 ‘정부의 실패’라기보다, 인간 인지의 한계와 시스템의 비선형성이 만들어낸 구조적 모순이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시야가 필요하다. 국가는 기계가 아니며, 정밀한 입력이 정밀한 출력을 보장하지 않는다. 시스템은 자율적이며, 결과는 창발적이다. 이런 조건에서 정부의 역할은 더 이상 ‘모든 것을 아는 존재’가 아니라, ‘창발을 유도하는 조건’을 설계하는 메타-거버넌스 디자이너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판단을 의심해야 한다. 언론에서 본 단편적 사건, 내 주변의 몇몇 목소리, 감정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를 단정짓는 것은 150명 단위의 뇌로 5천만 명짜리 시스템을 해석하려는 것과 같다. 뇌가 할 수 있는 일을 인정하고, 할 수 없는 일은 시스템에 위임할 줄 아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인간의 인지를 고려한 시스템 설계, 편향을 상쇄하는 정책 절차, 적응을 허용하는 애자일 거버넌스, 데이터와 AI를 통한 보조 판단 체계. 이 모두는 인간이 국가를 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와 인간이 함께 적응하기 위한 ‘공진화의 전략’이다.
우리는 국가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해하려는 방식은 더 나아질 수 있다. 국가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끼는 감정 자체는 중요하다. 다만 그 원인을 단순하게 보기보다, 복잡성과 인지의 교차점에서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사고의 시작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