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단절, 그 1km의 공백에서

by 너부리


애틀란타 다운타운 한복판, 과거 CNN센터로 알려진 건물의 호텔에 머물며 도시를 걸었다. 관광지도, 대중교통 안내도, 지도 앱 모두 나를 중심에 두고 있었다. 나는 도심 한가운데에 있다고 믿었고, 그것은 당연한 사실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중심은 이상하게도 비어 있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신선한 과일이나 간단한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편의점을 찾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반경 1킬로미터. 대도시 한복판에서 이 정도 거리 안에 식료품을 구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결국 가장 가까운 마트까지 가려면, 신선한 식료품을 얻기 위해선 차량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호텔 안의 스낵숍은 있었지만, 가격은 터무니없었고, 품목은 제한적이었다. 이 사소하지만 당황스러운 경험은 나를 낯선 감각으로 이끌었다. 이 도시는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움직이기 위해서’ 설계된 공간이었다.


도시는 물리적으로 분절되어 있었다. 건물과 거리는 있지만 삶은 흩어져 있었다. 마이크 데이비스가 말한 ‘요새화된 도시’의 실체를 나는 걷는 대신 차를 타야만 확인할 수 있었다. 도심 호텔은 관광객과 컨퍼런스 참석자들을 위한 섬 같은 공간이었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 풍경 속에 없었다. 거리에는 가로등과 인도, 고층 빌딩이 있었지만, 감자 한 봉지를 사러 걸어갈 수는 없었다. 도시 구조는 나에게 끊임없이 이렇게 속삭였다. 이곳은 당신이 살 곳이 아니라, 잠깐 머무는 곳이거나, 지나쳐야 할 곳이라고.


공간은 분절되었고, 그 사이를 차량이라는 사적 공간이 메우고 있었다. 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었다. 이 도시에서 차는 ‘안전’ 그 자체였다. 차량 내부에서만 느껴지는 사적인 안온함, 그리고 창밖의 세계는 어쩐지 불편하고 위험하게 느껴졌다. 공공 공간은 존재했지만, 그것은 공공의 목적을 위해 쓰이지 않았다. 공원과 광장은 있었지만, 만남과 상호작용을 위한 것이 아니라 통과되기 위한 풍경이 되었다. 차가 없으면, 도시와의 접속은 끊어진다. 그것이 애틀란타 다운타운이 내게 던진 말 없는 구조적 선언이었다.


나는 이 도시의 일부가 아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도시의 일부가 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도시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왜 이 도시는 거주자의 삶이 아닌, ‘이동자의 동선’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가. 왜 이 도시는 ‘차가 있는 사람’에게만 생활이 가능하도록 작동하는가. 그리고 이 구조는 누구를 환영하고, 누구를 배제하는가.


이러한 구조는 ‘식료품 사막’이라는 말로 구체화된다. 애틀란타 시가 자체 보고서에서 인정했듯, 도심의 식품 접근성은 지역마다 심각하게 불균형하다. 대형 슈퍼마켓은 차량 이동이 전제되고, 저소득층 지역에는 신선 식품을 구입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이는 단지 불편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건강, 교육, 고용, 삶의 질에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주는 문제다. 이 도시에서 차량이 없다는 것은 곧 삶의 기본 요소들에 접근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것은 가난한 사람, 젊은 사람, 이방인을 먼저 밀어낸다.



이 도시에서 누군가는 커뮤니티 안에 있으며, 또 누군가는 커뮤니티 밖으로 밀려나 있다. 로버트 퍼트넘이 말한 ‘사회적 자본의 붕괴’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도시의 인프라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상점의 부재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사회적 인프라—공원, 도서관, 지역 카페—는 단지 휴식의 공간이 아니라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다. 에릭 클리넨버그는 이를 ‘사람들을 위한 궁전’이라 불렀다. 애틀란타의 경우, 그러한 궁전은 차량 이동 경로 바깥에 있었다. 벨트라인 프로젝트와 같은 재생 노력은 분명 존재하지만, 도시는 여전히 연결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혼자였다.


나는 이 단절이 도시의 우연한 결함이 아니라 구조적 결과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자동차 의존, 기능별 분리, 민간 투자에 의존한 인프라 공급 방식. 모두가 도시에 틈을 만들고, 누군가는 그 틈에 빠진다. 애틀란타는 마치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는 잠시 이 안에 있을 수 있지만, 이 도시가 너를 위해 설계된 것은 아니야.”


한국의 도시들—서울과 부산—도 완벽하진 않다. 하지만 최소한 편의점 하나쯤은 어디든 있고, 걸어서 식료품을 살 수 있는 거리 내에 항상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단지 상업적인 밀도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구성하는 요소를 기본 단위로 놓은 도시 설계의 결과다. 도시가 시민의 일상을 고려할 때, 식품 접근성은 자연스럽게 형평성을 가진다. 한국 도시의 골목마다 편의점, 시장, 노점상이 있는 풍경은 인간 중심적 도시가 가능하다는 한 가지 증거일지도 모른다.



애틀란타에서의 나의 경험은 도시를 사유하는 새로운 질문으로 이어졌다. 도시란 누구의 공간인가?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배제되고 있는가? 그리고 커뮤니티란 무엇으로부터 형성되고, 무엇으로 인해 무너지는가? 나는 아직도 그 1km의 공백을 기억한다. 그곳은 단지 마트가 없는 지역이 아니라, 삶의 가능성이 끊긴 도시의 단면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