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너머의 검은 함선

19세기 미국 대전략의 지정학과 기술 속에서 본 페리 제독의 일본 원정

by 너부리


1853년, 매튜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국 해군의 ‘검은 함선’이 일본 에도만에 진입하면서 동아시아 질서는 급격한 방향 전환을 맞게 되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200년 넘게 유지된 쇄국 체제가 외세에 의해 일방적으로 무너진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미국의 관점에서 이는 단순한 외교적 돌파구가 아니라, 철저한 지정학적 계산과 기술적 한계를 고려한 전략적 행동이었다. 페리 원정은 미국이 태평양을 전략 공간으로 상정하고 그 안에서 영향력을 구축해나가기 위한 포석이었다.


19세기 중반 미국은 대륙 횡단을 완료하며 태평양 연안에 도달했고,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국가 이념은 육지를 넘어 해양으로 확장되었다. 캘리포니아와 태평양 항구의 확보는 단지 지리적 확장을 넘어, 아시아 시장과의 직접 연결이라는 경제적·전략적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태평양은 단순한 수역이 아니었다. 광대한 해역, 미개발된 항로, 제한된 연료 기술은 미국의 해양 전략 수행에 구조적 제약을 가했다. 증기선은 항해 속도와 예측 가능성을 개선했지만, 막대한 석탄 소비량으로 인해 일정 간격의 보급 기지가 없으면 장거리 항해가 불가능했다. 이는 미국 해군력의 투사 범위를 기술적으로 제한하는 결정적 요소였다.


이러한 조건 아래에서 일본은 태평양 횡단 항로에서 지리적·전략적으로 핵심적인 거점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중국 남부와 동아시아 항구로 향하는 항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일본은, 증기선 항속 거리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필수적 중간 기착지였다. 일본이 개항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태평양 횡단 항로를 통한 미국의 상업 및 군사 활동이 구조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항구는 석탄, 식수, 식량 등 재보급뿐 아니라, 조난 선원 구조, 기상 회피, 기항 수리 등 실질적인 해상 운항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미국의 태평양 전략이 하나의 연속된 해양 공급망(chain of steam navigation)을 전제로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의 폐쇄성은 단순한 외교적 장벽이 아니라 전략적 병목(bottleneck)으로 작용했다.


주목할 점은 페리 함대가 하와이를 경유하지 않고 아프리카와 인도양을 우회하는 항로를 택한 이유다. 하와이는 지리적으로 태평양 한가운데에 위치했지만, 1853년 당시 독립왕국으로서 미국이 전면적 군사·외교 통제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반면 아프리카-아시아 연안 항로는 유럽 식민지 네트워크를 통해 기항과 보급이 가능한 안정적인 체계였다. 이는 기술적 제약과 지정학적 통제력의 결합이 전략적 항로 선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일본이 이 네트워크에 통합되지 않는 한, 미국의 아시아 진출은 물류적·전략적으로 비효율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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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질서 또한 미국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유럽 열강은 크림 전쟁(1853–1856)으로 인해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과 자원을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미국은 이 틈을 타 독자적으로 일본과의 협상에 나설 수 있었다. 기존에 러시아나 프랑스가 시도했으나 실패한 일본 개항 문제를 미국이 기술적 우위와 전략적 환경을 활용해 돌파한 것이다. 페리 제독의 증기선 함대는 단순한 위협 수단이 아니라, 기술력과 군사력이 결합된 외교 자산이었다.


동시에, 캘리포니아 골드러시로 인해 태평양 연안 인구와 교역 수요가 급증하면서, 미국 동부-서부-아시아를 잇는 해상 네트워크의 구축은 더 이상 장기적 과제가 아니라 시급한 국가적 필요로 부상했다. 파나마 지협은 질병과 열대 우림이라는 환경적 위험 때문에 안정적인 통로가 될 수 없었고, 대륙횡단 철도는 아직 미완성이었다. 따라서 태평양을 직접 건너는 항로의 실현 가능성은 일본의 항구 개방 여부에 실질적으로 달려 있었다.


미국은 유럽의 식민지 지배 방식과는 차별화된 노선을 강조했지만, 페리 원정은 상업적·군사적 통제를 확보하기 위한 실용주의적 외교의 전형이었다. ‘자유무역’이라는 명분과 달리, 그 실행은 함대를 통한 직접적인 압박이었고, 일본의 전략적 지위를 미 해군 전개망에 통합하기 위한 외교적-군사적 작전이었다. 일본의 개항은 미국이 태평양에서 단절 없는 보급망을 확보하고, 아시아와의 교역과 영향력을 본격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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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페리 제독의 일본 원정은 미국이 해양 제국으로 전환하는 데 있어 지정학적 거점을 확보하려는 필연적인 전략이었다. 일본은 단순한 교역 상대국이 아니라, 태평양 횡단을 실현 가능한 전략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열쇠였다. 기술적 제약과 지정학적 현실 속에서 미국은 일본이라는 연결고리를 확보함으로써 태평양 전역에 걸친 장기 전략의 토대를 구축했다. 이후 미국이 태평양을 '내해'로 간주하며 영향력을 투사해나가는 구조적 흐름은, 바로 이 원정에서부터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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