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아논에서 서부지법까지
디지털 연결이 공적 담론과 사적 생활의 리듬을 규정짓는 시대에, 기술과 민주주의의 관계는 갈수록 긴장에 차 있다. 주변부 음모론이 정치 운동으로 성장하고, 온라인 동원이 폭력적 물리행동으로 전환되는 사건들을 통해 디지털 환경은 단순한 반영 수준을 넘어 정치 현실을 직접 재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의 큐아논(QAnon) 운동과 2025년 1월 발생한 서울서부지방법원 난동 사건은 이 같은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두 사례는, 알고리즘이 분열적 서사를 증폭하고 인공지능이 민주적 규범의 침식을 가속화하는, 정치적 취약성의 새로운 지형을 여실히 드러낸다[1].
큐아논은 원래 4chan, 8kun 같은 익명 게시판에 뿌리를 둔 변두리 음모론이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엘리트 아동 성범죄 조직과 싸우는 구원자'라는 서사는 도덕적 공포와 반엘리트 정서, 유사 종교적 신념과 결합하며 빠르게 확산되었다[2]. 참여자들은 익명의 'Q'가 남긴 암호문을 해독하며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베이킹(baking)'에 몰두했고, 참여 그 자체가 신념을 강화하는 구조를 형성했다[3].
디지털 플랫폼의 알고리즘 구조는 이 과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은 사용자의 '참여'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었고, 이는 본질적으로 충격적이고 감정적인 콘텐츠를 더 널리 확산시켰다[4]. 그 결과 사용자들은 점점 더 폐쇄된 에코 챔버 속으로 몰리게 되었고, 공론장의 사실 기반은 점점 약화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단지 사회적 신뢰를 허물었을 뿐만 아니라, 큐아논이 공화당과의 상호 보완적 관계를 통해 주류 정치의 일부로 자리잡는 데까지 이어졌다[5].
반면 한국의 서울서부지방법원 난동 사건은 정치적 격변이 어떻게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조직되고 오프라인으로 폭발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 발부에 반발한 지지자들은 디시인사이드, 일베 등 커뮤니티를 통해 경찰 배치 정보와 법원 진입 동선을 공유하며 난입을 계획했고, 극우 유튜버들은 실시간 방송으로 군중을 선동했다[6]. 물리적 충돌은 짧은 시간 내에 수십 명의 부상자와 대규모 체포로 이어졌다[7].
놀랍게도, 사전에 이루어진 온라인 조정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찰은 난동을 '우발적'이라 규정하고,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선동에 대해 형사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이 같은 법적 공백은 디지털 시대의 집단행동이 얼마나 분산되고 즉흥적으로 보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전통적인 법 제도가 이런 유형의 선동과 책임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두고 깊은 고민을 던진다[8].
이러한 현상에 인공지능이 더해지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생성형 AI는 고도로 사실적인 가짜 콘텐츠를 대량 생산할 수 있으며, 딥페이크 영상, 음성 복제, AI 챗봇 등은 정치인을 모방하거나 조작된 메시지를 대중에 유포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9]. 특히 추천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취향을 분석해 분열적인 콘텐츠를 반복 추천하며, 점진적인 급진화를 유도하는 '알고리즘적 토끼굴'을 생성한다[10]. AI 기반 소셜 봇은 콘텐츠의 인기도를 조작하여 더 많은 허위 정보가 사용자에게 도달하도록 할 수 있다[11].
AI는 사실 확인과 허위 정보 탐지 등 긍정적인 기능도 갖고 있지만, 그 이중적 특성은 규제의 복잡성을 키운다. 과도한 통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고, 무분별한 방치는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12]. 게다가 AI만을 문제의 핵심으로 간주하면, 유권자 권리 박탈, 불공정한 선거 환경, 언론인에 대한 공격과 같은 더 근본적인 구조적 위협에서 주의를 빼앗길 수 있다[13].
결국, 기술 그 자체가 위협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기술을 어떻게 설계하고 사용하는가가 민주주의의 운명을 좌우한다. 민주주의의 회복력은 단순히 악성 정보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비판적 사고와 공동의 현실에 기반한 논의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공론장의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 달려 있다[14].
참고문헌
[1]: How QAnon Developed from a Fringe Group to a Digital Surrogate, Oxford University Press.
[2]: Fernandez, Alyssa. QAnon: How a Conspiracy Theory can Impact a Country, SUNY Empire State College.
[3]: The Social Science of QAn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4]: Farid, Hany. "On Algorithmic Amplification", Inference Review.
[5]: Study explores how QAnon went from fringe to mainstream on Twitter, University at Buffalo News.
[6]: ‘서부지법 난동 사태 사전 모의 정황’, MBC, 2025.01.26.
[7]: ‘서부지법 난동 가담자 2명에 첫 징역형’, 조선일보, 2025.05.15.
[8]: ‘서부지법 선동 혐의 커뮤니티 운영진 불송치’, 연합뉴스, 2025.05.19.
[9]: AI Threats to Politics, Elections, and Democracy, MDPI Open Access.
[10]: AI-driven Disinformation: Policy Recommendations for Democratic Resilience, Frontiers in Artificial Intelligence, 2025.
[11]: AI-Enabled Influence Operations: Safeguarding Future Elections, The Alan Turing Institute.
[12]: Nissenbaum, Helen. Algorithmic Displacement of Social Trust, Cornell Tech.
[13]: An Agenda to Strengthen U.S. Democracy in the Age of AI, Brennan Center for Justice.
[14]: AI/Democracy Initiative, German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DG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