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은 사치가 되었는가

시카고대의 선택과 미국 고등교육의 균열

by 너부리

시카고대학교의 한때 자랑이던 인문사회과학대는 지금, 더 이상 새로운 세대를 맞이하지 않는다. 2025년 가을, 이 대학은 주요 인문사회 대학원 과정의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겉으로는 일시적인 예산 절감 조치처럼 보이지만, 그 결정 뒤에는 대학이라는 제도가 직면한 더 거대한 균열이 도사리고 있다. 재정 구조의 위기와 인문학 가치의 추락, 그리고 미국 고등교육 전반의 양극화라는 현상이 시카고대의 교정에서 한꺼번에 드러난 것이다¹.


적자는 빠르게 불어나 2년 만에 네 배로 치솟았고, 부채 상환에 매년 2억 달러가 소요된다. 이는 학부 등록금 수입의 85퍼센트에 해당한다².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같은 대학들이 기금 수익만으로 운영비의 상당 부분을 충당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하버드는 약 5,200억 달러의 기금을 보유해 매년 운영수입의 37퍼센트를 기금 이익으로 채운다. 예일(4,140억 달러), 스탠퍼드(3,760억 달러)도 안정적인 구조를 자랑한다. 반면 시카고대의 기금은 100억 달러 남짓에 불과하며, 63억 달러의 부채가 겹쳐 부채 대비 기금 비율이 65.7퍼센트에 이른다³. 하버드의 부채 비율(13.7퍼센트)에 비해 다섯 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기부금 격차는 단순한 재정적 차이를 넘어, 장학금 지원, 교수진 충원, 연구비 투자 등에서 지속적인 경쟁력의 격차로 이어진다. 결국 부자 대학은 여유롭게 인문학을 유지하고, 재정이 취약한 대학은 가장 먼저 인문학을 잘라내는 그림자가 드리운다.


재정 압박 속에서 시카고대 경영진은 대학을 “세금 면제 기술 인큐베이터”로 정의하기 시작했다⁴. 더 많은 학부생을 받아들이고 교수 수는 늘리지 않음으로써 학생 한 명이 내는 등록금에서 불과 10~20퍼센트만 교육에 쓰고, 나머지는 부채와 다른 지출을 메우는 구조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희생된 것은 인문학이었다. 연구비도, 특허도, 기업 협력도 없는 학문. 이윤을 기준으로 삼는 눈에는 인문학은 가장 손쉬운 삭감 대상이었다.


시카고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웨스트버지니아대학교는 2023년 재정 부족을 이유로 외국어 학과 전체를 없애버렸다. 스탠포드와 USC 역시 수억 달러 규모의 적자와 함께 대규모 인력 감축을 단행했다. 미국 전역에서 영문학과 역사학 전공자는 지난 10년간 30퍼센트 이상 줄었고, 인문학 전체 학사 비율은 9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⁵. 인문학을 전공하는 것은 더 이상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여겨지고, 그 결과 인문학은 ‘가치 없는 학문’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이 모든 과정에 정치가 개입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NIH와 NEH 같은 연방 연구기금 예산을 삭감했고, 이는 곧바로 대학 재정의 불안으로 이어졌다. 국제학생 비자 정책의 불확실성은 유학생 지원자 수를 줄였고, 학자금 대출 축소는 인문학 대학원 진학을 더욱 부담스럽게 만들었다⁶. 내부의 실패와 외부의 압력이 맞물리며, 인문학은 가장 먼저 무너질 수밖에 없는 위치에 서 있었다.


대학원생이 줄면 학부 수업의 질도 떨어진다. TA가 부족해 대형 강의는 더 커지고, 학생과 교수의 교류는 희박해진다. 몇몇 교수들은 “우리가 더 이상 인문학에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라며 자조 섞인 목소리를 냈다⁷. 이렇게 한 세대의 공백이 만들어지면, 그 피해는 수십 년 뒤 학계 전체로 확산된다. 연구자가 줄고, 교수 충원이 끊기며, 특정 학문 분야는 아예 소멸할 위험에 처한다.


애리조나대학은 ‘응용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비즈니스와 보건, 게임학을 인문학과 결합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UC버클리는 AI와 윤리를 함께 가르치며 관심을 끌어낸다⁸. 그러나 이런 실험이 인문학의 본질을 지키면서 재정적 지속 가능성까지 보장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제 미국 대학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은 단순한 직업 훈련소인가, 아니면 지적 성찰의 장인가. 시카고대의 인문사회대학은, 부채와 효율성 논리에 휘둘려 본래의 존재 이유를 잠시 내려놓았다. 그러나 그것은 시카고대만의 선택이 아니라, 미국 고등교육이 직면한 더 넓은 풍경 속 한 장면일 뿐이다. 부자 대학과 가난한 대학, STEM과 인문학 사이의 균열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균열의 끝에서, 인문학은 점점 소수 특권층의 사치재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교양은 가진 자들만의 언어가 되고, 비판적 사고는 점차 공동체 전체가 아닌 일부만의 무기가 된다. 대학이라는 제도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지금 다시 묻지 않는다면, 시카고대의 교정에서 시작된 이 위기는 곧 미국 사회 전체의 그림자가 될 것이다.


1. 시카고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 위기 분석 보고서, p.1

2. 같은 책, p.1

3. 같은 책, p.2

4. 같은 책, p.2

5. 같은 책, p.3

6. 같은 책, p.3–4

7. 같은 책, p.4

8. 같은 책, p.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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