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서구 사회는 신의 그늘 아래 완벽히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죽음, 병과 기쁨, 왕의 권위와 하층민의 운명까지도 교회의 해석에 따라 수긍해야만 했다. 그 중심에는 원죄라는 개념이 있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죄인이라는 전제가 사회의 구조를 이뤘다. 이는 단지 신학적 주장에 그치지 않았다. 신 앞에서의 비천함은 왕 앞에서의 복종을 강제했고, 사제의 말은 성경보다 우선되었으며, 여성의 몸은 유혹의 근원으로 단죄되었다. 삶의 모든 장면은 구원의 도식 아래 배치되었고, 교회는 인간 존재 전체를 감시하고 설명하는 초월적 기구였다.
그러나 그런 세계에도 금은 서서히 가기 시작했다. 마르틴 루터가 면죄부에 반박문을 써 붙인 것은 한 수도사가 느낀 신학적 불편함에서 비롯됐지만, 그것이 촉발한 파장은 문명 전체를 재조직하는 계기가 되었다. 교회의 권위는 금이 갔고, 성경이 민중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설교가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로 울려 퍼졌다. 만인제사장설은 모든 이가 신 앞에서 평등하다는 선언이었고, 신과 인간 사이의 거대한 중개기관은 그 절대성을 잃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신 앞의 평등’이 세속적 자유와 평등의 씨앗이 될 줄은 루터조차 몰랐을 것이다. 신을 더 순수하게 믿고자 했던 개혁은, 종국에는 종교가 정치권력에 종속되고, 더 나아가 사적 영역으로 밀려나게 만든 장본인이 되었다.
이어진 과학혁명은 우주의 중심에서 인간을 내쫓았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하늘을 들여다본 순간, 교회는 우주의 설계도를 빼앗겼다. 뉴턴의 법칙은 신이 직접 세계를 굴리지 않아도 된다는 수학적 증명이었다. 신은 필요하지만, 당장 내일 날씨를 예측하거나 배를 설계할 때는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신의 자리는 법칙이 차지했고, 신비는 논증으로 대체되었으며, 하늘은 더 이상 ‘천국’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는 여기서도 반복된다. 과학은 신을 몰아냈지만, 이성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과학주의’라는 신념 체계를 낳았다. 탈신화화가 재신화화를 낳은 것이다. 마치 신을 부정하는 순간, 이성이라는 또 다른 신을 만드는 인간의 본능처럼.
산업혁명은 이 모든 흐름에 현실의 무게를 얹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가 중심인 마을에 살지 않았다. 도시로 몰려들었고, 기계 앞에 앉았고, 같은 설교를 들을 공동체도 사라졌다. 교회는 삶의 중심에서 벗어나 점차 선택 사항이 되었다. 종교는 전통과 위로의 언어를 계속 읊조렸지만, 노동자의 삶은 더 냉혹하고 무의미해졌고, 종교는 점차 그 설명력을 잃었다. 흥미롭게도 이 시기 종교는 생존을 위해 시장의 논리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기업가형 목회자’가 등장하고, 교회는 확장을 위한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목회는 선교가 아니라 마케팅의 언어로 대체되었고, 신도는 영혼이 아니라 고객으로 불렸다. 신앙은 점점 사적 선택이 되었고, 종교는 더 이상 사회의 구조를 설명하지도, 구성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근대 이후 등장한 사상들은 종교에 마지막 결정타를 가했다. 마르크스는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 일갈했다. 그것은 고통을 마비시키는 진통제였고, 착취에 대한 항의를 무디게 하는 장치였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동시에 종교가 현실의 고통에 대한 저항일 수 있음을 보았다. 그래서 어떤 종교는 해방의 종교로, 민중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반면 불교는 서구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신화도 계시도 거부하는 그 가르침은, 오히려 세속화된 서구 사회에 더욱 잘 맞았다. 명상은 상담 기법이 되었고, ‘공’은 언어 철학과 접속되었으며, 불교는 삶의 방식, 마음챙김의 기술, 실용적인 철학으로 재해석되었다. 불교는 신을 믿으라 하지 않았고, 대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했다. 그 침묵은 시끄러운 설교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마침내, 과학의 최전선에서도 다시금 설명되지 않는 세계가 나타났다. 양자역학은 관찰이 없으면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결정론의 세계에 불확실성을 들이밀었다. 이는 종교의 영역으로부터 도망치던 과학이 다시금 존재와 인식, 의미의 질문을 마주하게 만든 계기였다. 그러나 종교적 의미가 그 안에서 부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양자이론은 인간 이성의 한계를 낯설게 비추었고, 지식의 경계 바깥에서조차 종교는 예전의 자리를 회복하지 못했다.
이처럼 종교는 중세의 지배자로부터 근대의 잔상으로, 그리고 오늘날의 내면의 목소리로 형태를 바꾸며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삶을 조직하고 해석하는 주체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종교를 사회적 고통의 부산물로 규정했고, 불교는 전통적인 교리를 벗은 채 심리학과 자기계발의 언어로 수용되었다. 양자역학은 존재의 조건과 인식의 경계에 대한 낯선 질문을 제기했지만, 그것은 종교적 신념을 복권시키기보다는 인간 이성의 불확실성과 인식론적 불안정성을 드러내는 데 그쳤다. 종교는 더 이상 세계를 설명하거나 바꾸는 힘이 아니다. 그것은 설명 체계로서의 위상을 잃었고, 그 공백은 과학과 기술, 경제, 심리학 같은 제도화된 지식 체계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종교는 그렇게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다. 공적 공간에서 축출되고 이성적 담론의 문턱 밖으로 밀려난 종교는, 오히려 그 주변부에서 새로운 역할을 획득하고 있다. 오늘날 종교는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인 것으로 치부되지만, 동시에 제도권 지식에서 소외된 이들, 언어와 권력의 경계 바깥에 있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자기 존재를 정당화하고 세계를 해석하는 중요한 도구로 기능한다. 그것은 계급으로 설명되지 않는 불평등,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 고통, 제도로 수용되지 않는 갈망을 말하고, 위로하고, 형상화한다. 즉, 종교는 더 이상 ‘진리의 보루’는 아닐지라도, ‘믿음의 언어’를 통해 배제된 자들에게 자신들의 삶과 신념을 성취할 가능성을 제공하는 잠재적 공간으로 남아 있다. 믿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 믿음을 어떻게 사회적 언어로 번역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만이 더 절박해졌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