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에디터의 우울과 농담

by 너부리


내 첫 사전은 얇은 성경책처럼 바스락거렸다. 페이지 끝은 손가락 땀에 닳아 종잇조각 같았고, 단어 하나를 찾을 때마다 나는 두 언어 사이의 좁고 깊은 강을 건너는 기분이었다. 그 시절 번역은 느리고 고된 노동이었지만, 단어를 옮길 때마다 문화와 감정을 함께 옮긴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이제 사전 대신 신경망이 돌아가는 서버실 어딘가에서 문장이 쏟아져 나온다. 몇 주가 걸리던 원고가 몇 초 만에 뚝딱 번역된다. 의뢰인은 환호하고, 기업은 비용 절감 효과를 자랑한다. 그러나 그 기계 번역의 매끈함 속에서 나는 종종 낯선 공포를 느낀다. 이대로라면 번역가라는 존재는 금세 무대에서 퇴장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말이다.


하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기계의 번역이 허술한 구멍을 드러내기까지는. “김칫국부터 마신다”가 “Drink kimchi soup first”로 번역된 순간, 나는 다시 불려나왔다. 소설 속 은유는 사라지고, 인물들의 대사는 세 페이지쯤 지나면 성격이 뒤바뀌었다. 그 틈새야말로 내가 설 자리가 되었다.


나는 더 이상 홀로 모든 문장을 새로 쓰는 창작자가 아니다. 기계의 초벌 번역 위에서 망가진 유머를 고치고, 사라진 뉘앙스를 복원하고, 문화적 차이를 다듬는 구원자가 되었다. 동시에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고, 로컬라이제이션 전문가가 되고, 윤리의 마지막 보증인이 되었다. 예전에는 내 이름만이 번역물에 걸려 있었지만, 이제는 AI와 나, 둘 다의 이름이 걸려 있다. 그러나 책임은 여전히 인간인 내 몫이다.


아이러니한 건 돈은 줄었는데 일거리는 더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단가는 계속 내려가지만, 세상은 번역할 콘텐츠를 눈덩이처럼 굴려온다. 과거에는 번역비 부담에 포기했던 회사들까지 이제는 제품 설명서부터 광고 문구까지 모조리 번역을 원한다. 싸고 빠른 번역의 시대가 오히려 나를 더 바쁘게 만든 셈이다.


윤리적 책임은 더 무겁다. AI는 여전히 모든 사람을 “그(he)”라 부르고, 데이터에 묻은 편견을 그대로 옮겨 적는다. 잘못된 번역으로 발생한 모든 책임은 결국 인간 번역가가 져야 한다. 나는 단순히 언어를 옮기는 사람을 넘어, 기계의 실수와 사회적 불공정을 걸러내는 마지막 필터가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번역가가 아니다. 기계가 문장을 번역한다면, 나는 그 문장의 영혼을 번역한다. 사전의 바스락거림을 그리워하는 밤이 여전히 있지만, 향수는 월세를 내주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프롬프트를 다듬고, AI의 번역癖을 교정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기계는 효율을 번역하지만, 인간만이 의심과 농담, 그리고 한숨 섞인 웃음을 번역한다.


주: 이 글은 가상의 번역가의 시점에서 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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