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자유라는 가면, 제국의 변호인이라는 진짜 얼굴

by 너부리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박유하 교수에게 출판공로상을 안기려 했다가 사회적 역풍에 밀려 취소한 사건은, 한국판 블랙코미디의 절정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협회는 자유의 수호자를 자처했지만, 그들이 무대 위에 올려놓은 것은 자유가 아니라 자기 기만의 희극이었다. 상을 건네려던 손길은 피해자의 상처 위에 무대용 꽃다발을 던지며 “이건 학문적 성취”라 포장했고, 그 모습은 장례식장에서 “오늘은 축제의 날”이라 외치는 광대와 다르지 않았다. 법원이 무죄 도장을 찍었다는 이유로 윤리적 면죄부까지 확보했다고 착각한 순간, 그들은 이미 역사적 파산선언서를 들고 춤추고 있었다.


문제의 본질은 박 교수의 책 자체가 채택한 연극적 장치에 있다. 이 책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다시 무대에 불러내지만, 캐릭터를 완전히 바꿔치기한다. 일본군은 ‘전우’, 피해자는 ‘매춘부’라는 새로운 배역을 부여받는다. 학문적 탐구라는 무대 위에서 피해자의 강제와 폭력의 경험은 ‘동지적 관계’와 ‘선택지’라는 화려한 조명에 묻히고, 역사적 비극은 순식간에 복잡한 사회극으로 치환된다. 그러나 이는 진실을 향한 도전이 아니라, 범죄자의 대사를 대필해주는 2류 각본에 지나지 않는다. “학문적 의견”이라는 표지를 붙였다고 해서, 그 내용이 제국의 변호문으로 기능하는 순간부터 이미 연구가 아니라 변론이 된다. 법은 이 연극의 무대 사용료를 합법이라고 보증했지만, 인류 보편적 윤리는 객석에서 야유를 퍼붓는다. “이건 새로운 해석이 아니라 범죄의 리바이벌 쇼”라는 야유 말이다.


이 모든 희극적 광경은 국제사회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간단하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에게 역사학 공로상을 수여하는 해프닝과 다를 바 없다. 독일이라면 사회적 매장과 법적 처벌이 동시에 따라올 일을, 한국의 출판협회는 자유의 승리라며 환호했다. 그들은 피해자의 존엄을 짓밟는 서사에 메달을 걸어주려 했고, 그 순간 학문적 탐구는 인류 보편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전쟁 범죄의 기억을 지우려는 이데올로기적 시도에 국가 문화기관이 스스로 화환을 보내준 셈이니, 더 이상 학문 논쟁이 아니라 윤리적 자해극이다.


그럼에도 협회는 황당한 논리를 내세웠다. 11년 동안 소송을 버텨낸 끈기, 그것이 공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마치 범죄자에게 자기 죄가 아니라고 끝까지 우겼다고 해서 “인권 투사”라며 훈장을 달아주는 것과 같다. 끈기와 절차적 합법성은 인정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내용이 피해자의 존엄을 훼손하고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순간, 그것은 투쟁이 아니라 기만이 된다. 협회가 존중한 것은 학문의 자유가 아니라, 학문이라는 껍데기를 쓴 역사 부정의 뻔뻔함이었다.


결국 협회는 스스로를 자유의 수호자로 연출했지만, 무대 위에서 드러난 정체는 역사의 광대였다. 피해자와 시민사회가 쏟아낸 분노와 야유는 단순한 감정적 반발이 아니었다. 그것은 보편적 가치가 내린 최종 심판이었다. 자유는 법이 지켜줄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유가 인류 보편적 기억을 파괴하는 순간, 책임은 인류 전체가 묻는다. 협회는 그 단순한 문법조차 무시한 채, 자기 얼굴에 침을 뱉고 그 침을 “자유의 성수”라 착각했다.


이 희극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 문턱을 넘나드는지 보여주었다. 한 발만 더 내디뎠다면, 전쟁 범죄를 희석하는 논리에 국가적 권위를 부여하는 참사가 벌어질 뻔했다. 다행히도 마지막 순간, 시민사회의 야유와 분노가 커튼콜을 막아섰다. 그러나 이 막간극이 남긴 교훈은 냉혹하다. 법은 발언의 권리를 지켜줄 수 있지만, 역사는 그 발언이 남기는 상처까지 면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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