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로는 보이지 않는 인공지능의 진짜 가치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의 일상과 경제를 바꾸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사용하는 ‘GDP’라는 전통적인 잣대는 그 변화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GDP는 공장에서 찍어낸 자동차나 건설 현장의 건물 같은 유형의 생산물에는 강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AI가 만들어내는 무형의 가치, 무료로 쓰이는 서비스, 그리고 장기적인 파급력은 이 수치 안에서 종종 사라진다.
새로운 연구들은 AI의 영향력을 측정하기 위해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 문제는 무형 자산의 과소평가다. 기업들이 수십억 달러를 데이터, 알고리즘, 소프트웨어에 쏟아붓지만, 회계장부에서는 여전히 단순한 ‘비용’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건물이나 기계와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자산들은 사실상 미래 성장을 지탱하는 기둥임에도 불구하고, GDP 통계에선 공백으로 남는다. 이를 메우기 위해 국제기구들은 ‘국민계정체계(SNA 2025)’ 개정을 추진하며, AI 관련 투자를 자본으로 정식 인정하려 한다.
이 점은 산업화 시대와 크게 대비된다. 19세기 영국을 떠올려보자. 굴뚝에서 연기가 솟는 방직공장, 철도가 국토를 가로지르는 풍경은 곧장 GDP 통계로 이어졌다. 건물이 세워지고 철로가 늘어날수록 경제 성장 수치가 분명히 드러났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굴뚝도, 철도도 보이지 않는다. 데이터센터라는 물리적 기반이 있긴 하지만, 진짜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속에 숨어 있다. 그렇기에 GDP 지표에는 잘 잡히지 않는다. 이는 전기의 사례와도 닮았다. 전기가 발명됐을 때 초기에는 생산성 지표에 변화가 거의 없었지만, 공장과 가정에 전기가 스며든 후에야 경제 전체가 도약했다. 인터넷 역시 초창기에는 “효율성이 오르지 않는다”는 의심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전자상거래와 클라우드 컴퓨팅이 성장의 동력이 되었다. AI 또한 같은 궤적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두 번째 문제는 소비자 후생의 누락이다. ChatGPT 같은 생성형 AI는 무료로 혹은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되지만, 그 가치가 ‘0’으로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들은 시간을 절약하고, 새로운 지식을 얻고, 일상의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며 삶의 질을 높인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러한 서비스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기꺼이 돈을 낼 의향이 있으며, 이것이 바로 경제학에서 말하는 ‘소비자 잉여’다. 스탠퍼드 연구진은 시간을 가치로 환산했을 때, 인터넷의 복지 효과가 화폐 지출로 계산한 값보다 무려 10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AI 역시 같은 궤적을 따른다.
세 번째는 생산성 역설이다.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즉각적인 성과로 나타나지 않는다. 전기와 인터넷이 그랬듯, AI 역시 기업의 업무 구조가 바뀌고 노동자가 학습하는 시간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지는 ‘워크슬롭(Workslop)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초기의 비용과 혼란은 장기적 보상을 위한 통과의례에 가깝다. 이미 일부 선도 기업에서는 AI 투자로 수익과 효율성이 급격히 높아지는 조짐이 관찰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세계 GDP를 7% 이상 끌어올릴 잠재력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마지막으로, AI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 의료에서의 생명 연장, 행정 서비스에서의 접근성 향상, 그리고 사회적 신뢰 같은 요소는 GDP와 무관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다. 오히려 사람들의 삶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전문가들은 이제 ‘GDP 너머(Beyond GDP)’의 지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웰빙, 포용성, 지속가능성 같은 개념이 AI 시대의 국가 역량 평가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산업화 시대의 성장은 공장과 철도로 눈앞에 드러났지만, AI 시대의 성장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토대 위에서 조용히 쌓여간다. 그렇다고 해서 그 가치가 작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삶의 질, 사회적 신뢰, 포용성 같은 숫자로 환산하기 어려운 영역까지 넓게 스며들고 있다. 인공지능의 진짜 발자국을 읽어내려면 이제 GDP라는 숫자 너머를 바라봐야 한다. AI의 성장은 굴뚝의 연기가 아닌, 우리 삶과 선택 속에서 이미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