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전선

캄보디아와 중국이 빚은 21세기 범죄 실험실

by 너부리


캄보디아 남부의 항구 도시 시아누크빌. 중국 자본이 몰려들며 “동남아의 마카오”로 불리던 이곳은 이제 국제 범죄 네트워크의 심장부로 지목된다. 카지노와 리조트의 네온 불빛은 강제 감금, 사이버 사기, 인신매매가 얽힌 지하 제국의 그림자를 감추고 있을 뿐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은 항만 개발과 대규모 인프라 건설을 통해 시아누크빌을 성장시켰다. 그러나 이 자본은 곧 캄보디아의 만성적 정치 불안과 결합했다. 훈센 총리가 30년 넘게 권좌를 지켜온 권위주의적 통치는 체제 안정을 보장했지만 동시에 뿌리 깊은 부패와 권력 집중을 낳았다. 토지 소유권은 정권과 연결된 소수 엘리트에게 집중되었고, 사유 재산은 언제든 정치적 폭력으로 무너질 수 있었다. 공권력은 범죄 세력과 얽혀 보호비를 수익화했고, 관리비라는 명목의 거래는 곧 정치적 비호였다. 군경은 사설 경호원으로 고용되어 범죄 단지를 지켰으며, 국가의 권위는 범죄의 방패로 전락했다.


시아누크빌은 2016년 이후 중국계 온라인 도박 조직 ‘왕토우(网投)’의 본거지로 급부상했다. 30만 명에 달하는 인력이 몰려들고, 단일 플랫폼이 매달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2019년 정부의 온라인 도박 금지 조치는 상황을 뒤흔들었다. 카지노들이 문을 닫자 범죄 조직들은 더 은밀하고 더 폭력적인 사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합법의 가면이 벗겨진 자리에는 무력과 기만이 지배하는 “사기 공장”이 남았다.


노동자 모집 광고는 고액 연봉을 약속했지만, 도착한 순간 여권은 압수당하고 감금이 시작되었다. 피해자들은 사기의 가해자로 강제로 전락했다. 실적을 내지 못하면 폭행과 재판매가 뒤따랐고, 일부는 ‘피의 노예(血奴)’로까지 불렸다. 범죄 단지는 더 이상 직장이 아니라 철저히 통제된 감옥이었다.


시아누크빌에서 밀려난 범죄 네트워크는 메콩강 유역 전역으로 번졌다. 미얀마의 슈웨 코꼬, 라오스의 골든 트라이앵글 특별경제구역, 필리핀의 불법 POGO 단지까지 범죄 지도는 확장되고 있다. 라오스 GTSEZ에서는 중국 삼합회 연계 기업이 운영권을 장악했고, 세제 혜택과 규제 공백을 무기 삼아 국제 인신매매와 암호화폐 사기의 허브가 되었다. 최근 단속에서 15개국 출신 771명이 구출되었는데, 한국인과 아프리카·남미 국적자들이 포함돼 있었다. 범죄는 이미 글로벌 네트워크로 자리 잡았다.


첨단 기술은 범죄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다. ‘돼지 도축 사기’로 불리는 암호화폐 투자 사기는 인공지능과 딥페이크 기술을 결합해 피해자의 신뢰를 구축한다. 2023~2024년 사이 이 방식은 암호화폐 사기 피해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인공지능은 수천 건의 개별화된 사기 대화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게 했고, 딥페이크는 경영진의 얼굴과 목소리를 정교하게 재현해 고액 송금을 유도했다. 이제 이 범죄는 단순히 개인의 탐욕과 외로움을 노리는 것을 넘어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신뢰 자체를 무너뜨리고 있다.


중국은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2019년 프놈펜에 해외 경찰 협력 센터를 설치하고 수천 명을 체포·송환했다. 그러나 범죄는 사라지지 않았다. 단속은 오히려 압력솥 효과를 낳아, 범죄 세력이 더 은밀하고 취약한 지역으로 흩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불길은 꺼지지 않고, 단속이 거세질수록 주변으로 번져 나갔다.


이 모든 과정에서 캄보디아 내부의 정치 불안은 범죄 생태계의 비료 역할을 했다. 훈센 총리의 장기 집권 체제는 안정처럼 보였지만, 권력 유지에 필요한 정치적 거래 속에서 범죄 세력은 오히려 제도화됐다. 권력층과 결탁한 범죄 구조는 경찰 개혁을 무력화했고, 사법 체계는 권력자의 의지에 종속됐다. 내부 반대 세력은 약화되거나 축출되었고, 민주주의 제도는 껍데기만 남았다. 이 불안정은 범죄가 번성할 토양을 제공했다.


그러나 서방 정보기관들이 주목하는 것은 캄보디아의 취약성만이 아니다. 중국 정부의 태도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베이징은 본토에서 범죄를 억제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결과 범죄 세력이 국경을 넘어 확산되도록 방치했다. 중국의 대규모 자본 유입은 감시 체계나 법적 책임 없이 캄보디아에 쏟아졌고, 피해가 커지자 뒤늦게 경찰 협력 사무소를 설치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중국인 보호를 위한 것이었다. CIA 보고서는 이를 “문제의 원인을 외주화한 뒤, 결과만 통제하려는 무책임한 행위”라 평가한다. 유럽 정보기관 역시 “중국은 불법 자본과 범죄 네트워크가 해외에서 번성할 수 있는 구조를 조장했고, 피해는 동남아와 세계가 떠안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NSA의 한 분석가는 이 현상을 “국경 없는 범죄 플랫폼”이라고 부른다. 그는 “이 구조는 마약 카르텔의 폭력, 테러 조직의 은밀함,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기술을 동시에 품고 있다. 단일 도시의 붕괴가 아니라, 세계 질서를 재편할 수 있는 새로운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정보기관 보고서의 결론은 냉혹하다. 캄보디아의 범죄 생태계는 부패한 정치 체제와 맞물린 국제 범죄, 그리고 중국의 무책임한 자본 유입이 만들어낸 21세기형 안보 위기다. 이 위기는 금융 시스템과 인권, 민주주의 사회의 신뢰를 동시에 위협하며, 보이지 않는 전선을 따라 전 세계로 번져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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