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의 금융 질서는 겉보기에는 평온하다. 그러나 그 내부에서는 ‘디지털 달러’라 불릴 새로운 화폐 혁명이 서서히 현실화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역설적인 발명품 ― 안정성과 탈중앙화를 동시에 약속하는 통화, 스테이블 코인(Stablecoin) 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스테이블 코인은 암호화폐 거래자들의 유동성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은 3,000억 달러 규모의 신흥 결제 인프라로 성장했으며, 비자(Visa), 블랙록(BlackRock) 등 글로벌 금융 대기업들이 이미 실험 단계에 들어섰다. 하지만 급성장하는 이 시장의 이면에는 기하급수적 제도화의 기회와 구조적 취약성, 그리고 거시경제적 위협이 동시에 자리하고 있다.
씨티(Citi) 연구소는 스테이블 코인 시장이 2025년 2,820억 달러에서 2030년 최대 4조 달러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불과 5년 만에 14배 성장이다. 코인베이스(Coinbase)와 스탠다드차타드(Standard Chartered)도 각각 1.2조 달러, 2조 달러 수준의 전망을 내놓으며, ‘수조 달러 규모의 신금융 생태계’가 형성될 것이라는 예측에 힘을 보탠다.
이 성장의 핵심은 바로 전통 자산의 토큰화(Tokenization) 다. 씨티는 2030년까지 미국 달러 예금과 현금의 디지털 전환이 6,480억 달러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스테이블 코인이 단순한 암호화폐 거래 수단을 넘어 ‘그림자 디지털 달러 시스템’으로 진화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스테이블 코인은 더 이상 주변적 실험이 아니다. 이제 그것은 전통 금융(TradFi)과 탈중앙 금융(DeFi)을 연결하는 핵심 유동성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비자(Visa Direct)가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한 ‘선지급(prefunding)’ 결제 파일럿을 발표했을 때, 이는 단순한 기술적 테스트가 아니었다. 느리고 비효율적인 기존의 SWIFT 결제 시스템을 대체할 차세대 결제 네트워크의 출현 신호였다. 스테이블 코인 결제는 은행 간 송금 시간을 하루에서 몇 분으로 단축시킨다. 분석가들은 2030년 이전에 스테이블 코인 회랑(Corridor)이 글로벌 송금 거래량에서 SWIFT를 추월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기업 입장에서는 복잡한 다국적 결제 시스템 대신, 언제든지 접근 가능한 디지털 달러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유럽연합의 MiCA 규제와 미국의 GENIUS Act는 스테이블 코인을 금융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첫 번째 대서사다. 두 규제 모두 1:1 준비금 의무, 법적 파산 보호 계좌, 액면가 상환권 보장 등을 강제한다. 특히 GENIUS Act는 한층 더 보수적이다. 은행이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려면 핵심 업무와 분리된 별도 법인을 설립해야 하고, 장기채권을 준비금으로 보유할 수 없다. 이는 은행 리스크의 전이를 차단하기 위한 ‘방화벽(Firewall)’ 규제로, 시장 신뢰를 제도적으로 구축하려는 조치다. 결국, 시장은 “코드의 실험”에서 “제도의 금융”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제도화의 이면에는 여전히 취약성이 존재한다. 알고리즘형 스테이블 코인은 탈중앙화의 이상을 구현하려 하지만, 시장이 불안정할수록 페그(고정가치)를 유지하는 데 실패하는 경향이 강하다. 테라USD 붕괴는 그 상징적 사례다. 보고서가 지적하듯,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은 안정성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실패한다”. 결국 시장 신뢰가 끊어지면 코드가 아닌 인간의 공포가 시장을 지배한다. 이러한 한계는 스테이블 코인이 ‘안정성-탈중앙화-자율성’ 트릴레마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기관투자자들은 점점 완전 담보형(fully collateralized) 모델로 이동하고 있다 — 신뢰는 이상보다 강력하다.
페그가 무너지는 순간, 즉 $1 이하로 떨어지는 디페깅(depegging) 현상은 시장 신뢰를 송두리째 흔든다. 단일 코인의 붕괴가 암호화폐 유동성 전반을 마비시키고, 나아가 전통 금융시장으로 위험을 전이(Contagion)시킬 가능성도 있다. 이는 일종의 ‘디지털 머니마켓 런’으로, 중앙은행의 구제 장치가 없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현재 유통 중인 스테이블 코인의 99%가 달러에 연동되어 있다. 스탠다드차타타드는 향후 3년간 최대 1조 달러의 예금이 터키, 인도, 파키스탄 등 신흥국 은행에서 스테이블 코인 지갑으로 유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현상은 단순한 투자 이동이 아니라, 불안정한 경제권에서 “자본 수익(Return on Capital)”보다 “자본 보존(Return of Capital)”이 더 중요해진 결과다. 그러나 이런 ‘디지털 달러화’는 해당 국가의 통화 주권과 금융 안정성을 위협하며, 신흥국 경제의 달러 의존도를 심화시킨다.
이에 대응해 전 세계 중앙은행의 91%가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CBDC는 스테이블 코인과의 경쟁이 아니라 공존의 전략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CBDC가 공공 결제를 담당한다면, 스테이블 코인은 토큰화된 자산 시장의 엔진이 될 수 있다.
스테이블 코인의 미래는 장밋빛 전망과 함께 냉정한 현실을 안고 있다. 시장은 급팽창하겠지만, 그 과실은 규제되고 투명한 담보형 코인에 집중될 것이다. 반면, 탈중앙화의 이상만을 좇는 실험적 모델은 시장 신뢰의 벽을 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스테이블 코인의 진화는 “안정성 > 분산성”이라는 현실적 순위를 따르게 될 것이다. 이제 이 생태계를 이끄는 것은 개발자가 아니라 중앙은행, 기관, 그리고 규제 당국이다.
“2030년의 가장 성공적인 스테이블 코인은,
탈중앙화보다 지속가능성을 택한 —
다시 말해, ‘암호화폐처럼 보이지 않는 화폐’가 될 것이다.”
스테이블 코인은 더 이상 실험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글로벌 금융의 기반 인프라로 자리했다. 하지만 제도권으로 편입되는 순간, 스스로가 대체하려 했던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까지 함께 물려받는다. 그들의 성공 여부를 가를 마지막 변수는 단 하나 — '신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