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파적 분류가 초래한 시스템적 위험

디지털 전환과 민주주의의 위기

by 너부리


디지털 전환은 민주주의의 진화를 가속화하는 동시에 그 근간을 잠식하고 있다. 오늘날의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정치적 의사소통과 여론 형성의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새로운 인프라로 기능한다. 특히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이 결합된 플랫폼 환경은 정서적 양극화(affective polarization)와 당파적 분류(partisan sorting)를 촉진하며,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약화시킨다. MIT의 경제학자 Daron Acemoglu (2025)는 AI 기반 추천 시스템이 “참여율 극대화를 위해 감정적으로 자극적인 콘텐츠를 증폭시킴으로써 정치적 온건성을 경제적으로 불리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디지털 경제의 수익 구조가 민주주의의 규범적 기반을 갉아먹는 시대에, 기술은 단순한 중립적 매개체가 아니라 정치적 행위자로 등장했다.


디지털 미디어는 정보 접근을 민주화하는 동시에, 감정적 공명(emotional resonance)을 증폭시켜 분노·혐오·도덕적 분개와 같은 정서를 끊임없이 확산시킨다. Angelova (2025)는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감정 반응을 지표로 콘텐츠를 선별하며, 그 결과 사회는 더 분열되고 감정적으로 반응적인 공동체로 재편된다”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알고리즘은 ‘참여’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자에게 더 강한 자극을 주는 정보를 선별적으로 제공하며, 사회적 신뢰와 합의의 공간은 점차 축소된다.


사회학자 Petter Törnberg (2022)는 이러한 정서적 양극화가 단순한 의견 대립이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가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결속(social cohesion)을 해체하는 ‘메타 위기(metacrisis)’라고 규정했다. 그는 “디지털 미디어는 고립을 낳지 않는다. 오히려 차이를 분류(sorting of differences)함으로써 사회를 구조적으로 재편한다”고 주장한다. 즉, 오늘날의 양극화는 반대 의견에 노출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알고리즘이 반대 의견을 정서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조작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 ‘분류’의 메커니즘은 시민들을 점차 두 개의 거대 정당(mega-parties)으로 재편하며, 사회의 교차 갈등(cross-cutting cleavages)을 약화시켜 타협의 가능성을 제거한다.


이러한 구조적 분류가 초래하는 결과는 치명적이다. 민주주의의 제도적 정당성(institutional legitimacy)은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와 상호 인정에 기반하지만, 정서적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제도에 대한 신뢰는 급격히 하락한다. 정치학자 Aslam (2025)은 현대 민주주의의 후퇴가 “더 이상 쿠데타나 선거 조작 같은 전통적 형태로 나타나지 않고, 기술 매개적 신뢰 침식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시민들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감정을 공유하기 시작하면,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은 권위주의적 대안(authoritarian alternatives)이나 극단주의 세력이다.


디지털 전환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이유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움직이는 경제적 인센티브의 구조에 있다. Acemoglu et al.(2025)은 AI 기반 플랫폼이 필터 버블과 표적 광고의 이중 경로를 통해 저신뢰 콘텐츠를 증폭시킨다고 분석했다. 이 메커니즘은 “정당들이 온건화를 추구할 유인을 약화시키고, 유권자들을 더 쉽게 조작 가능한 대상으로 전락시킨다”고 지적한다. 결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플랫폼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다.


이에 대한 대응은 단순한 규제나 콘텐츠 검열로는 불충분하다. 플랫폼의 수익 모델과 알고리즘 설계의 원리를 민주적 가치와 일치시키는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동시에 시민 사회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적 접근이 병행되어야 한다. 보고서는 “모든 학생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며, 시민을 ‘최전선 행위자(frontline actors)’로 참여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허위정보에 대한 사후적 대응(fact-checking)을 넘어, 확산 전에 논리를 무력화하는 사전 반박(prebunking) 전략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또한, 유럽연합의 EU AI Act는 기술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시스템적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가장 진보된 규범적 시도다. 이 법은 AI 시스템을 위험 수준별로 규제하며, 선거 과정의 무결성을 위협할 수 있는 AI를 ‘고위험 시스템’으로 분류하여 엄격한 감독을 요구한다. 그러나 보고서가 지적하듯이, 국경을 초월한 정보 생태계 속에서 민주적 가치 연합(coalition of purpose) 없이는 이러한 규제의 실효성이 제한적이다.


결국 디지털 시대의 민주주의는 ‘정보의 양’이 아니라 ‘신뢰의 질’ 위에서 유지된다. AI와 플랫폼이 만들어내는 합성 현실(synthetic reality)이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수록, 민주주의의 생명선인 공적 담론의 진실성은 더욱 위태로워진다. 그러므로 오늘날 민주주의의 과제는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의 판단과 공존할 수 있도록 새로운 민주적 질서를 설계하는 일이다. 디지털 전환이 불러온 당파적 분류의 시대에 민주주의가 생존하려면, 우리는 기술의 언어가 아닌 가치의 언어로 다시 민주주의를 설계해야 한다.


참고문헌 (References)


1. Aslam, M. (2025). *Democratic Backsliding and the Role of Technology. SSRN. [https://papers.ssrn.com/sol3/papers.cfm?abstract_id=5083385](https://papers.ssrn.com/sol3/papers.cfm?abstract_id=5083385)

2. Angelova, C. (2025). Role of Echo Chambers in the Polarization of Society.* Athens Journal of Politics. [https://www.athensjournals.gr/.../2025-6435-AJPIA-CBC...](https://www.athensjournals.gr/.../2025-6435-AJPIA-CBC...)

3. Acemoglu, D., Restrepo, P., & Johnson, S. (2025). AI and Social Media: A Political Economy Perspective.* MIT Department of Economics Working Paper. [https://economics.mit.edu/.../AI%20and%20Social%20Media...](https://economics.mit.edu/.../AI%20and%20Social%20Media...)

4. Törnberg, P. (2022). How Digital Media Drive Affective Polarization Through Partisan Sorting.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PNAS), 119(35). [https://www.pnas.org/doi/10.1073/pnas.2207159119](https://www.pnas.org/doi/10.1073/pnas.2207159119)

5. SHAPEDEM-EU. (2025). Digital Transformation as a Double-Edged Sword for Democracy. CIDOB Policy Report. [https://www.cidob.org/.../SHAPEDEM-EU_Publication_5...](https://www.cidob.org/.../SHAPEDEM-EU_Publication_5...)

6. European Partnership for Democracy (EPD). (2025). The EU’s Artificial Intelligence Act and Its Impact on Electoral Processes: A Human Rights-Based Approach. [https://epd.eu/.../the-eus-artificial-intelligence-act.../](https://epd.eu/.../the-eus-artificial-intelligence-act.../)

7. Westminster Foundation for Democracy (WFD). (2025). Using Digital Technology for Democratic Resilience, Transformation and Impact. [https://www.wfd.org/.../using-digital-technology...](https://www.wfd.org/.../using-digital-tech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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