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파: 파시즘에 맞선 현대의 반(反)운동

by 너부리

미국은 다시금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다. 이번엔 총과 깃발이 아니라, ‘이념’이 무기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9월, ‘안티파(Antifa)’를 국내 테러 조직(Domestic Terrorist Organization)으로 공식 지정했다. 행정명령은 이들을 “군국주의적, 아나키스트적 기업”이라 규정하며, “연방 정부의 전복을 꾀하는 조직적 폭력 집단”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그 실체는 훨씬 더 복잡하다. 연방수사국(FBI)과 의회조사국(CRS)은 안티파를 조직이 아니라 이념적 네트워크, 혹은 분산형 운동으로 정의한다. 지도자도, 중앙 명령 체계도 없는 이 느슨한 연합체는, 바로 그 모호함 때문에 미국 사회의 분열을 투사하는 거울이 되고 있다.


안티파는 1920년대 유럽에서 파시즘이 떠오르던 시기에 탄생한 반파시즘 운동의 현대적 후손이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저항의 전통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명맥을 이어왔다. 1980년대 독일에서는 신나치주의의 부활에 맞서 펑크 문화 속에서 새로운 반파시스트 그룹들이 생겨났고, 그것이 곧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의 첫 공식적 안티파 조직은 2007년 포틀랜드에서 결성된 로즈 시티 안티파(Rose City Antifa)였다. 이들은 극우의 백인우월주의 운동과 맞서 싸웠고,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이들의 활동에 폭발적인 정치적 동력을 제공했다.


이 운동의 구성원들은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급진적 자유주의자까지 아우른다. 그들의 공통된 신념은 하나다 — “파시즘은 자유 발언이 아니다.” 따라서 파시스트의 발언 기회를 차단하고,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집회를 방해하며, 때로는 디지털 공간에서 ‘독싱(Doxing)’이라 불리는 신상공개를 통해 혐오의 전파를 저지한다. 이른바 ‘노 플랫폼(No-Platforming)’ 전술이다. 이 철학은 2017년 샬러츠빌에서의 폭력사태 이후 더욱 강한 정당성을 얻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국가는 파시즘을 막지 못했고, 시민이 스스로 막아야 했다.”


그러나 논란의 핵심은 여전히 ‘폭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보수 논객 찰리 커크(Charlie Kirk)가 피살된 사건 이후 안티파를 ‘국가 전복 세력’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연방 수사 결과, 범인은 안티파와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부는 이를 빌미로 안티파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했다. 이 조치는 법적 근거가 희박할 뿐 아니라, 수정헌법 제1조(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행정부는 “전국적 폭력 캠페인”을 이유로 내세운다. 그러나 객관적인 데이터는 그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2001년 이후 미국 내에서 발생한 국내 테러 관련 사망자의 약 75~80%는 극우 극단주의에 의해 발생했으며, 무정부주의나 환경 운동을 포함한 좌익 극단주의 사건은 전체 사망자의 5% 미만을 차지했다. 학술 기관인 CSIS와 국토안보부조차도 “안티파가 야기한 사망 사건은 거의 전무하다”고 명시한다.


이는 곧, 안티파의 폭력이 존재하더라도 그 규모와 빈도는 극우 폭력에 비해 극도로 제한적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안티파 시위는 재산 손괴나 경미한 충돌 수준에서 그치며, 중앙에서 조직적으로 계획된 무장 테러 행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FBI는 “안티파는 전통적 의미의 조직이 아니라 느슨한 이념적 운동”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한다. 즉, 트럼프 행정부의 ‘테러 조직’ 지정은 통계적 현실보다 정치적 메시지를 우선시한 조치에 가깝다.


안티파 내부의 폭력 사용에 대해서도, 연구자들은 “상당한 자제력”이 존재한다고 분석한다. 로즈 시티 안티파를 추적한 ICCT 보고서는 “대부분의 활동은 지역 방어와 혐오 발언 대응에 한정되며, 조직적으로 계획된 공격 행위는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폭력적 좌익’이라는 이미지와 실제 행동 사이에는 뚜렷한 괴리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안티파의 직접행동은 극우 세력의 대중 동원력을 억제하는 데 일정한 효과를 보였다. 리처드 스펜서와 같은 백인민족주의자들의 대학 강연이 취소되고, 샬러츠빌 사태 이후 극우 단체들이 법적 제재에 직면한 배경에는 이들의 ‘노 플랫폼’ 전술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성공은 대가를 동반했다. 정부의 단속 강화, 경찰의 폭력적 진압, 그리고 언론이 만들어낸 “양쪽 모두 폭력적이다”라는 도덕적 등가 프레임이 그것이다.


결국 2025년 트럼프 행정부의 행정명령은 한 운동의 행동이 아니라, 이념 자체를 범죄화하려는 시도로 남게 되었다. “폭력”의 수치가 아니라 “정치적 상징”이 정책의 기준이 된 것이다. 미국이 직면한 질문은 이제 단순하다. “자유의 이름으로, 우리는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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