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모키어의 아이디어, 아세모글루–로빈슨의 권력, 아기온–하위트의 엔진

by 너부리

2025년 노벨 경제학상이 조엘 모키어, 필립 아기온, 피터 하위트에게 돌아가자 산업혁명과 현대 성장의 핵심 동력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경제사학의 가장 오래된 논쟁이 다시 한 번 중심으로 소환됐다. 모키어가 역사적·문화적 전제조건을, 아기온–하위트가 ‘창조적 파괴’의 분석적 메커니즘을 제공해 장기 성장을 설명한다는 시상위원회의 평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종합적 명제를 이룬다. 곧, 성장은 기술·정책·제도·문화가 맞물릴 때 비로소 ‘하키 스틱’처럼 궤적을 바꾼다는 것이다. 이 연쇄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은 모키어가 밝힌 ‘아이디어의 공급면’이다. 그의 작업은 기술 진보를 떠받친 지식의 구조를 ‘명제적 지식(왜 작동하는가에 대한 과학적 설명)’과 ‘규범적 지식(어떻게 만드는가에 대한 레시피)’으로 엄밀히 나눠 보여준다. 산업혁명 이전의 세계에서 기술은 대개 시행착오로 축적된 레시피의 모음이었다. 그 때문에 혁신은 산발적이었고 누적성이 약했다. 모키어의 주장에 따르면, 18세기 유럽에서 과학적 방법이 공학과 제조의 현장으로 스며들면서 ‘왜’와 ‘어떻게’의 교차점이 생겼고, 그때부터 비로소 혁신이 자기-지속적 과정으로 전환됐다. 이 해석은 《아테나의 선물》에서 정식화된 그의 ‘유용한 지식’ 도식에 뿌리를 둔다. (JSTOR)


그러나 지식의 구조만으로 궤도 수정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모키어의 두 번째 기여는 그 구조를 가능하게 한 ‘성장의 문화’에 대한 설명이다. 그가 말하는 ‘지식의 공화국’—편지, 인쇄물, 우편과 학회 네트워크로 얽힌 초국가적 공동체—은 공개과학 규범과 상호비판을 통해 아이디어에 경쟁과 선택을 도입했다. 결정적으로 유럽의 정치적 분절은 억압을 받는 사상가들에게 ‘탈출구’를 제공해, 한 나라에서 배척된 아이디어가 다른 데서 살아남아 경쟁할 수 있게 했다. 다시 말해 분절은 아이디어 시장의 보험이었다. 이는 《A Culture of Growth》의 핵심 주장으로, 정치적 분절과 지적 네트워크의 결합이 근대의 지적 대전환을 촉발했다는 진단이다. (De Gruyter Brill)


하지만 문화가 인과의 ‘첫 번째 원인’이라면, 그 문화는 어디서 나왔는가? 비판자들은 이 지점에서 내생성 문제를 제기한다. 엔리코 스폴라오레는 「자연을 지배하려면 자연에 복종하라」라는 의미심장한 표제의 비평에서, 모키어가 설득력 있게 문화의 역할을 복원했지만 여전히 기업가적 윤리·사회규범·제도적 토대와의 상호작용을 더 치밀하게 통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가 강조하는 요지는 분명하다. 과학적 태도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아이디어가 경쟁하고 확산되는 규범과, 그것이 시장에서 시험대에 오르는 인센티브 구조가 함께 필요하다는 것이다. (American Economic Association)


현장 사례는 이 문제의 섬세함을 일깨운다. 피터 M. 존스의 버밍엄·웨스트미들랜즈 연구는 볼턴–와트, ‘루너 소사이어티’ 같은 상징적 사례 뒤에 가려진 현실을 보여준다. 그는 계몽과 과학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한 선구자들이 지역 산업 전체를 대표했다기보다 ‘유성 같은 별’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종교적 관용과 국제적 교류가 약화되자 지역의 과학문화는 쉽게 취약해졌고, ‘산업 계몽주의’의 황금기는 짧게 끝났다. 즉, 열린 지식문화는 강력하지만 동시에 쉽게 훼손될 수 있는 균형이었다. (Cambridge University Press & Assessment)


물질주의적 설명들과의 대결은 모키어의 강점과 한계를 더 분명히 드러낸다. 로버트 앨런은 산업혁명의 영국적 기원을 ‘고임금–저에너지비’라는 요인가격 구조에서 찾는다. 이 시각에서 기업가들은 노동절약 기술을 채택하도록 유인받았다. 그러나 모건 켈리–모키어–오그라다가 영국 41~42개 카운티 자료로 검증한 바에 따르면, 초기 산업화는 오히려 저임금·고기술 숙련(특히 기계기술)이 결합된 지역에서 더 활발했고, 석탄 접근성이나 문자해독·금융 접근성은 설명력이 미약했다. 여성·아동 방적 임금이 높지 않았다는 험프리스–슈나이더의 반론도 ‘고임금 유인’ 가설의 범위를 좁힌다. 수요측 가격신호가 혁신의 방향을 규정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움직일 수 있는 지식·숙련의 공급면이 전제돼야 했다는 반증이다. (EconPapers)


케네스 포메란츠의 ‘거대한 분기’ 논쟁은 한 걸음 더 나간다. 그는 1800년 전후 영국의 도약을 ‘지질학적 복권’(석탄)과 ‘대서양의 행운’(신대륙 자원)이라는 생태적 횡재가 가능케 했다고 본다. 모키어의 반론은 여기서도 아이디어의 공급면으로 돌아간다. 같은 석탄이라도 그 효율을 꾸준히 높이고, 기계를 미세개량하며, 지식의 오류를 수정해가는 문화—명제적 지식과 규범적 지식의 피드백—가 없다면, 자원은 단기간의 우위를 넘어 지속성장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물질적 제약을 ‘돌파’한 것은 자원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학습·개선하는 지적 구조였다. (De Gruyter Brill)


그렇다면 아이디어의 공급만으로 충분한가.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이 다론 아세모글루·사이먼 존슨·제임스 로빈슨에게 돌아간 사실은 성장의 ‘수요·활용’ 측면을 상기시킨다. 이들의 제도론은 포괄적 제도가 넓은 참여·재산권·법치를 통해 혁신의 기대수익을 보장하고, 반대로 착취적 제도는 혁신의 유인을 질식시킨다는 점을 보여줬다. 더 핵심적인 기여는 ‘정치적 패배자 가설’이다. 새로운 기술을 가로막는 것은 경제적 지대를 잃는 집단이 아니라, 혁신으로 인해 권력의 기반이 약화될 기존 엘리트라는 통찰이다. 이때 권력경쟁이 치열할수록, 혹은 완전히 고착화됐을수록 저지는 약하고, 제한적 경쟁 아래서 권력 상실 위험이 클 때 저지 유인이 가장 강해진다. 모키어가 분절과 지식 네트워크를 통해 아이디어의 탈출로를 설명했다면, A&R은 왜 어떤 사회가 그 아이디어를 ‘채택(adoption)’하지 않는지에 대한 권력의 메커니즘을 제공한다. 두 설명은 층위를 달리하지만 서로 맞물린다. (NobelPrize.org)


여기에 아기온–하위트가 더한다. 그들의 1992년 모형은 혁신이 기존 기술과 기업의 지대를 끊임없이 파괴하는 ‘수직적’ 경쟁을 통해 성장의 속도를 만든다는 점을 엄밀히 보여줬다. 이 관점에서 정책은 특허·경쟁정책·R&D 인센티브를 조율해 혁신의 유인을 높이되, 과도한 집중과 진입장벽이 ‘영속 기업’의 방패막이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모키어의 역사분석을 여기에 끼워 맞추면 그림이 선다. ‘산업 계몽주의’가 아이디어의 공급을 항구적으로 재생산하는 점화스위치라면, 창조적 파괴는 그 에너지를 경제 전체로 순환시키는 엔진이다. 아이디어가 줄어들면 엔진은 공회전하고, 엔진을 조일 제도·정책이 부실하면 아이디어는 사장된다. 두 축이 동시에 움직일 때만 ‘하키 스틱’은 유지된다. (JSTOR)


정치경제학적 결론은 분명하다. 첫째, 모키어가 말한 ‘유용한 지식’의 토대를 위해 기초과학과 개방적 지식공유의 규범을 지켜야 한다. 대학과 연구기관의 학문자유, 국제적 협업과 데이터 개방,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신뢰는 아이디어의 공급망이다. 둘째, A&R의 언어로 말하면 포괄적 제도의 지속적 강화가 필요하다. 독점의 성향이 강한 디지털·AI·그린테크 시장에서 경쟁을 보호하고, 이해관계 집단의 ‘정치적 저지’가 제도 안에서 조정되도록 견제와 균형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켈리–모키어–오그라다가 강조하듯 숙련의 질—기계적 역량과 현장 문제해결 능력—을 뒷받침하는 직업교육·견습·현장 학습이 혁신의 마지막 마일이다. 이 셋은 서로 대체가 아니라 보완재다. 한 축이 무너지면 나머지 둘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EconPapers)


이 연결고리는 오늘의 정책 현안에도 곧바로 걸린다. 보호주의와 탈세계화는 시장의 크기를 줄여 혁신의 기대수익을 깎고(수요측 약화), 국경을 넘는 아이디어의 흐름을 막아 공급측을 말린다. 노벨상 수상 직후 아기온과 하위트가 재차 경고했듯, 경쟁을 훼손하는 산업정책이나 과점의 고착은 ‘창조적 파괴’의 순환을 끊는다. 반대로, 공정경쟁·R&D 세제·인력 재배치 지원은 파괴의 비용을 사회적으로 분산시켜 ‘정치적 패배자’의 저지 유인을 약화시킨다. 유럽의 분절이 아이디어의 보험이었듯, 오늘날의 ‘개방과 다원성’이야말로 21세기판 보험이다. (The Guardian)


결국 모키어의 공헌은 성장의 미스터리를 ‘아이디어의 공급’이라는 잊힌 축으로 되돌려 놓았다는 데 있다. ‘문화’는 경제의 부차 항목이 아니라, 명제적·규범적 지식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운영체제다. 2024년 제도론(아세모글루·존슨·로빈슨)과 2025년 혁신론(모키어·아기온·하위트)이 연이어 인정받은 것은, 산업혁명 연구의 난제가 단일 원인으로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확인해 준다. 성장은 우연히 얻은 하향식 선물도, 자동으로 작동하는 상향식 본능도 아니다. 열린 지식문화(공급), 포괄적 제도와 권력분산(활용), 숙련과 역량(집행)이 함께 맞물릴 때만, 우리는 다음 세대에도 하키 스틱의 상승부를 지킬 수 있다. 그 메시지가 바로 올해 노벨상의 진짜 뉴스다. (NobelPriz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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