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품 산업이 잃어버린 경쟁력
미국 자동차 부품 산업은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빠져들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여전히 세계적 혁신의 본거지로 남아 있지만, 그 바탕을 떠받치던 공급망과 제조 기반은 이미 오래전부터 균열을 보이고 있었다. 전기차, 자율주행,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기술 전환의 파도 속에서 미국은 ‘혁신의 나라’라는 명성을 유지하려 애쓰지만, 그 이면에는 ‘제조의 공백’이라는 구조적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부품 산업은 자립을 말하기조차 어려운 수준의 대외 의존 구조에 묶여 있다. 2024년 기준, 미국은 멕시코로부터 825억 달러 규모의 자동차 부품을 수입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USMCA)으로 긴밀히 엮인 이 관계는 사실상 하나의 생산 생태계로 작동하지만, 그 균형은 관세라는 정치적 변수 앞에서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멕시코산 차량에 100~200%의 관세를, 중국산 부품에는 최대 60%의 관세를 제안했다. 이는 단순한 정책 리스크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체를 뒤흔드는 지정학적 지진이다.
미국의 완성차 제조사들은 이미 이 충격을 온몸으로 받고 있다. 제너럴 모터스(GM)는 2025년 2분기에만 11억 달러, 연간으로는 최대 50억 달러의 관세 손실을 보고할 것으로 전망된다. 토요타는 약 95억 달러, 마쯔다 역시 10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경고했다. 부품 산업 전체로 보면, 관세로 인한 누적 비용은 첫 해에 410억 달러, 3년 차에는 520억 달러로 불어난다. 이는 일시적 정책이 아니라 산업 구조의 ‘고정비’로 굳어지고 있으며, 소비자 가격을 끌어올리고, 공급업체의 유동성을 말려들게 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미국이 직면한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기술과 제조의 괴리다. 미국은 여전히 LiDAR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같은 핵심 기술의 R&D에서 선두에 서 있다. 그러나 이 기술을 실제 차량용 부품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은 독일의 Continental, 캐나다의 Magna, 일본의 Denso 등 외국계 기업이 쥐고 있다. 혁신의 씨앗은 미국에서 자라지만, 그 열매는 해외에서 맺히는 셈이다. 이 구조적 모순은 ‘미국 제조업 르네상스’라는 정치적 구호가 얼마나 공허한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미국은 이제 ‘자립(Self-sufficiency)’이 아니라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즉, 완전한 독립이 아니라, 충격을 흡수하고 빠르게 복구할 수 있는 유연한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미 다수의 글로벌 기업들은 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Daimler, Volvo 같은 제조사들은 멕시코 내 생산 거점을 확대해 고율 관세를 회피하며, 미국·멕시코·캐나다를 아우르는 지역화 전략으로 리스크를 분산하고 있다. 부품업체들은 공급망의 종단 간 가시성을 높이고, 데이터 기반 예측 분석을 도입해 물류 중단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미국 부품 산업의 본질적 위기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제조의 기반이 무너진 곳에서 기술만으로는 산업의 체온을 유지할 수 없다. 관세로 인한 비용 부담은 단순한 세금이 아니라 ‘강제된 자본 투자’로 작용하며, 기업들은 효율보다 정치 리스크 회피를 위해 비합리적 투자를 강요받는다. 이 과정에서 산업의 경쟁력은 점점 잠식되고, 소비자는 더 비싼 차를 사야 하며, 혁신은 더디게 진행된다.
산업의 위기는 언제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로부터 시작된다. 지금 미국 부품 산업이 맞닥뜨린 위기는 바로 그 시스템의 붕괴다. R&D에서 제조로, 기술에서 공급망으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가 약화되면서, 미국은 점점 ‘기술 강국이지만 제조 취약국’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은 기업만이 아니다. 산업 전체, 더 나아가 글로벌 시장의 균형이 함께 흔들리고 있다.
이제 미국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보호무역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관세는 단기적으로 표를 얻을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산업의 경쟁력을 잃게 만드는 자해적 처방이다. 미국이 진정한 산업 강국으로 남고 싶다면, 개방과 효율, 그리고 신뢰 가능한 지역 협력을 통해 새로운 제조 생태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 기술 혁신은 여전히 미국의 강점이지만, 그 혁신이 지속가능하려면 다시 ‘만드는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그 상실된 능력을 되찾을 마지막 경고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