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짓기의 연기 속에서

잃어버린 실천의 이름으로

by 너부리


정치적 신념이 취향의 한 갈래처럼 소비되는 시대에 우리는 이상한 풍경을 마주한다. 사람들은 무엇을 변화시켜야 하는가라는 질문 대신,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 정치적 입장은 더 이상 현실을 바꾸기 위한 실천의 지도가 아니라, 자신을 설명하는 문화적 장신구가 된다. 마치 특정 음악을 좋아하고, 특정 커피 브랜드를 고집하는 것처럼, 특정한 정치적 구호를 말하고 특정한 태도를 취하는 일이 개인 정체성의 상징이 된다. 부르디외가 말한 구분짓기는 계급의 문턱을 넘어 이제 정치 취향의 장에서도 우아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문제는 이러한 구분짓기가 현실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모색하기보다, 누가 더 올바른 사람인가를 겨루는 도덕적 경기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게 만든다는 점이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올바름’에 대한 욕망이 실천으로 이어지기보다, 휘발성의 언어로 서로를 재단하는 방식으로 소비된다. 정치적 태도는 더 이상 행동의 출발점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인격의 증명처럼 다뤄진다. 특정한 용어를 사용하고 특정한 문제에 분노하는 것이 곧 정치적 존재의 조건이 되며, 그 기준에 미달하는 사람들은 미숙하거나 게으르거나 무지한 존재로 치부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묘하게도, 세상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를 묻는 대신, 상대가 지금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에만 민감해진다. 말은 날카롭고 표정은 단호하지만, 행동은 흐릿한 윤곽만 남는다.


레닌이 “혁명적 이론 없이는 혁명적 운동도 없다”고 말했을 때, 그는 지식을 통해 상대를 공격하라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론이 실천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구조적 방향타가 되어야 한다는 뜻에 가까웠다. 하지만 오늘의 정치적 언어는 실천을 조직하기보다는, 스스로가 옳다는 감각을 강화하는 데 쓰이기 쉽다. 이론은 공격의 무기가 되고, 비판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장치가 되며, 현실의 복잡함은 흑백의 도덕적 구도로 단순화된다. 목표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옳은 사람으로 남는 것이다.


오스트롭스키의 소설 속 파벨 코르차긴은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강철이 어떻게 단련되는지 깨닫는다. 그가 강철 같은 의지를 갖게 된 이유는 남에게 강요받아서가 아니라, 자신이 견딘 고난과 선택한 실천의 결과였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타인에게 ‘강철 같은 태도’를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은 위험이 적은 자리에서 도덕적 청결함을 지키는 데만 몰두한다. 행동의 무게를 몸으로 감당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설정한 이상을 기준 삼아 타인의 불충분함을 쉽게 판단한다. 마치 실존적 고난 없이도 강철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이런 풍경 속에서 가장 크게 사라진 질문은 어쩌면 가장 단순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더 나아가,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의 정치적 풍토에서는 ‘어떻게’라는 물음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대신 ‘너는 어떤 사람인가?’, ‘왜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같은 정체성의 질문만이 크게 울린다. 이 질문들은 당장은 도덕적으로 단호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회를 실제로 움직이는 힘과는 거리가 멀다. 변화는 옳은 사람들의 경쟁에서 나오지 않는다. 변화는 무거운 현실과 부딪치고, 불완전한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고, 때로는 실패를 감수하며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단단한 언어나 더 정교한 구분짓기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행동을 향한 질문이다. 이론은 구분짓기의 무기가 아니라 실천의 도구가 되어야 하고, 비판은 상대를 배제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함께 나아가기 위한 길을 찾는 과정이어야 한다. 우리는 강철 같은 인간을 타인에게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강철은 스스로 단련되는 것이지, 타인에게 강요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구분짓기가 더 촘촘해지고 더 정교해질수록, 실천의 자리는 오히려 좁아진다. 하지만 우리의 언어가 아무리 세련되어도, 구호가 아무리 의롭다 해도, 세상은 말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옳음을 증명하려는 몸짓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함께 움직이기 위한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다시 묻자.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가를. 그리고—어떻게 할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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