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 국가를 멈출 때

트럼프 셧다운과 한계점에 다다른 미국

by 너부리


워싱턴의 밤은 불빛보다 침묵이 먼저 떨어진다. 백악관 서쪽, 정지된 국기 아래 공기는 차갑고 건조하다. 연방정부의 셧다운이 37일째를 넘기며 미국은 다시 한 번 자신이 만든 정치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태를 ‘필요한 정화’라 부르지만, 정화의 대상이 국민인지, 정부인지, 혹은 민주주의 자체인지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이번 셧다운은 예산 갈등의 외피를 쓴 권력 재편의 실험이었다. 트럼프는 오바마케어(ACA) 보조금 연장을 ‘재앙의 씨앗’이라 규정하고 이를 없애기 위해 연방정부를 멈췄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재정 논쟁이 아니었다. 백악관 예산관리국은 공공기관들에 ‘정리해고 계획’을 마련하라고 지시했고, 트럼프는 연단 위에서 “우리는 민주당원들을 해고할 것”이라 말했다. 행정은 정권의 적대자를 솎아내는 도구가 되었고, ‘임시적 무급휴직’은 ‘영구적 숙청’으로 변질되었다.


이 셧다운은 과거보다 길고, 깊고, 잔혹했다. 2018~2019년의 35일 기록을 넘어선 2025/2026년의 셧다운은 이미 최장기다. 공항의 관제탑에서는 피로 누적된 관제사들이 교대조를 잃어가고, 하루 수천 편의 항공편이 지연된다. 하늘의 혼란은 곧 경제의 혼란으로 이어진다. 한때 세계 금융의 심장이라 불리던 뉴욕 증시는 하루가 다르게 체온을 잃고, 달러는 강세 속에서도 신뢰를 잃어간다. 연방정부의 지출이 4주 만에 330억 달러 줄었고, 그중 상당 부분은 회복 불가능한 손실로 남았다.


그러나 이 모든 수치보다 더 뚜렷한 것은, 미국이 정치적 신뢰를 스스로 깎아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론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미국인들이 셧다운의 책임을 트럼프와 공화당에 돌리고 있다. 뉴저지와 버지니아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손쉽게 주지사 자리를 차지했을 때, 트럼프는 이를 ‘언론의 왜곡’이라 했지만, 그 패배는 이미 국민이 내린 조용한 판결이었다. 셧다운의 정치적 무기는 결국 발사자 자신을 향해 되돌아왔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금이 가고 있다. 트럼프가 요구한 ‘핵 옵션(Nuclear Option)’—상원의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해 단순 과반으로 법안을 통과시키자는 구상—은 강경파에게는 혁명이지만 제도주의자들에게는 자살이었다. 일부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그것이 “미국 민주주의의 마지막 안전장치를 파괴하는 행위”라며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만약 이 ‘핵 옵션’이 부결된다면, 트럼프는 협상의 장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때는 이미 ‘협상’이 아닌 ‘항복’으로 보일 것이다.


거리의 삶도 멈춰 있다. SNAP 식비 지원으로 살아가는 4,200만 명의 저소득층은 비상 기금으로 연명한다. 공원은 닫혔고, 박물관은 침묵하며, 연방 공무원 수십만 명의 미지급 임금은 쌓여간다. 워싱턴 근교에서 만난 항공안전국 직원은 “우리는 무급으로 일하는 유령”이라 말했다. 그들의 눈동자 속에는 분노보다 피로가 더 깊게 자리했다. 정부가 국민에게 보이지 않는 벽이 되었다면, 그 벽은 이제 안쪽에서도 균열이 나고 있다.


트럼프의 셧다운은 미국 정치의 근본적인 변형을 보여준다. 행정부는 예산을 무기화했고, 의회는 기능을 잃었다. 금융시장은 냉소로 반응했고, 시민들은 일상의 정지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정지는 단순한 ‘일시적 업무정지’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체제의 피로 누적, 민주주의라는 엔진의 경고등이다. 경제적 손실보다 치명적인 것은 제도의 신뢰가 무너지는 소리다.


셧다운의 끝은 아마도 추수감사절 이전, 정치적 책임과 제도적 실패가 맞닿는 지점에서 강제로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끝이 곧 회복을 뜻하지는 않는다. 정부가 다시 문을 열어도, 닫힌 것은 문서가 아니라 마음일 수 있다. 트럼프는 셧다운을 통해 국가를 재편하려 했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자신이 다스리려 한 체제의 균열을 드러냈다.


이제 미국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민주주의를 다시 작동시킬 것인가, 아니면 ‘효율’을 명분으로 한 영구적 비상체제에 익숙해질 것인가. 트럼프 셧다운은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증상이다. 그리고 그 증상은 오랜 시간 동안, 미국이라는 몸 전체를 아프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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