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의 경고와 다카이치의 국가
일본은 지금, 반성과 재무장의 경계에 서 있다. 전후 80주년을 맞아 퇴임을 앞둔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발표한 장문의 개인 메시지는 언뜻 보기에 참회와 성찰의 기록이다. 그는 “왜 일본은 전쟁을 피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으로 서문을 열며, 군부의 폭주가 아니라 “정치와 제도의 실패”를 문제 삼았다. 그러나 그 담화는 전후 일본 정치가 한 세기 가까이 붙들어 온 ‘평화의 문법’을 부드럽게, 그리고 치밀하게 뒤집고 있다.
이시바는 전쟁의 도덕적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패전의 원인을 “통수권의 오용과 문민통제의 무능”으로 돌린다. 즉, 군이 폭주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가 군을 효율적으로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은 전쟁을 멈출 수 없었다는 논리다. 이 진단은 전후 일본이 세운 헌법 9조 체제—군사력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원칙—를 직접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 정신을 실질적으로 해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정치가 자위대를 충분히 이해하고 지휘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그의 문장은, 냉철한 경고처럼 들리지만, 실은 ‘정치가 군사적 결정을 주도해야 한다’는 새로운 통치 철학을 열어젖힌다.
이시바는 담화의 말미에서 “억지력의 현실적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억지론(抑止論)을 부정하지 않으며, “자위와 억지는 민주주의의 책임 있는 기능”이라 선언한다. 그러나 바로 그 선언이 문제의 핵심이다. ‘억지력’이라는 단어는 이제 전후 일본의 방어적 자제 대신, 적극적 군사행동을 합리화하는 기술적 언어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담화는 군국주의의 부활을 외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합리적 군국주의(rational militarism)’의 가능성을, 제도와 이성의 언어로 복원한다.
이 역설적 전환은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의 경제·안보 전략과 맞물릴 때, 일본의 새로운 국가적 패러다임으로 완성된다. 다카이치는 이시바의 후임으로 등장하며, “고압 경제 정책”과 “경제안보 일체화”를 핵심으로 내세운다. 그의 정책은 인플레이션을 용인하고 사회보장 지출을 줄이는 대신, 국가자원을 방위산업과 첨단기술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는 단순한 경제조정이 아니라, 산업의 군사화를 통한 국가의 재조직이다. 다카이치가 추진하는 GOCO(Government-Owned, Contractor-Operated) 모델은 방위산업을 민간의 효율성 아래 통합시키는 제도이며, 무기 수출 규제 철폐는 군수산업을 글로벌 공급망으로 편입시키는 신(新)국가전략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일본의 ‘전후 체제’는 눈에 띄게 재정의되고 있다. 과거의 평화국가 일본은 전쟁의 반성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탱했지만, 오늘의 일본은 반성의 언어를 ‘책임의 언어’로 바꾸며, 다시금 국가의 효율을 이야기한다. 이시바가 제시한 교훈—“제도를 운용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다카이치의 정치에서 “효율성이야말로 안보의 명령”으로 전환된다. 이 둘은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의 연속선 위에서, 도덕적 반성이 제도적 재무장의 전제 조건이 되고 있다.
이시바의 담화는 언뜻 평화주의의 유언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냉정한 구조적 제안이 숨어 있다. “군을 통제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무너진다”는 문장은, 군비 증강을 위한 제도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의 반성은 전쟁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쟁의 ‘비합리성’을 교정하려는 정치적 의지로 읽힌다. 일본이 다시금 전시경제와 안보국가로의 경로를 걷게 될 때, 그것은 과거와 같은 감정적 군국주의가 아니라, 합리성과 제도, 그리고 효율로 무장한 ‘정상국가화된 군국주의’일 것이다.
다카이치의 이념적 기원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어린 시절 ‘교육칙어(敎育勅語)’—충성과 효를 국가윤리로 명시한 메이지 제국의 교육령—을 집안에서 암송하며 자랐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전근대적 교훈은 국가에 대한 충성과 희생을 도덕으로 포장한 문서였다. 그 가치체계가 다시금 정치의 중심에 등장할 때, 일본의 ‘경제안보’ 담론은 단순한 산업정책이 아니라 국민윤리의 재구성으로 기능한다. 경제가 군사화를 통해 정당화되고, 군사화가 경제를 통해 합리화되는 완결된 회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시바와 다카이치의 관계는 단순한 정치적 계승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사상적 변증법이다. 이시바가 남긴 ‘문민통제의 실패’라는 반성은, 다카이치의 손에 들어와 ‘정치의 군사적 책임’으로 바뀐다. 전자는 과거를 반성하는 언어였지만, 후자는 미래를 설계하는 언어다. 두 담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일본은 새로운 국가정체성을 찾고 있다—평화국가에서 ‘통제된 군사국가’로.
물론 일본 내에서도 이 흐름에 대한 비판이 존재한다. 헌법학자와 언론계 인사들은 이시바 담화가 민주주의의 자정능력을 강조하면서도, 정치가 군을 합리화할 수 있는 ‘정당성의 문’을 열었다고 분석한다. 그들은 이것이 “도덕적 언어를 입은 군국주의의 귀환”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일본의 정치담론은 이미 전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잘 통제된 전쟁’을 준비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제 일본은 다시 묻고 있다. “왜 우리는 전쟁을 피하지 못했는가?”
그러나 그 질문은 더 이상 과거를 향하지 않는다. 오늘의 일본 정치가 이 질문을 반복하는 이유는, 전쟁을 피하지 못했던 이유를 반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번에는 전쟁을 ‘통제된 형태로 수행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시바의 담화는 반성의 언어로 시작해, 제도적 재무장의 논리로 끝난다. 다카이치의 정책은 경제의 언어로 출발해, 국가동원의 명령으로 귀결된다. 두 흐름은 서로를 비추며, 일본이 평화국가에서 ‘합리적 군국주의 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을 완성한다.
전후 80년, 일본은 다시 전쟁의 문턱에서 서성인다. 이번에는 총칼 대신 기술과 제도, 그리고 경제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그 변화의 서문은, 반성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