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멋대로 해라

자유를 견디는 용기에 대하여

by 너부리

사랑은 자유를 시험하는 감정이다.
사람은 사랑을 통해 가까워지고 싶어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두려워한다.
사랑은 누군가의 세계에 들어가는 일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경계를 잃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늘 모순적이다.
붙잡으면 사라지고, 놓으면 머문다.


고다르의 『내 멋대로 해라(À Bout de Souffle)』는 바로 그 모순 위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사랑은 열정의 이름이 아니라 불가능을 감내하는 태도다.
서로를 원하지만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함께 있고 싶지만 각자의 자유를 놓칠 수 없다.
그 팽팽한 거리 속에서 인간은 사랑의 진실을 마주한다 —
사랑은 결합이 아니라 공존의 연습이라는 사실을.


사랑이 성숙하려면, 우리는 상대를 바꾸려는 욕망을 멈춰야 한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타인이 자신답게 살아가도록 돕는 일”이라고 했다.
그 말은 곧 상대의 자유를 인정할 만큼 내가 단단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 안의 불안이 강할수록, 우리는 타인을 통제하려 한다.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이렇게 해야 해.”
그러나 그 문장에는 사랑보다 소유의 욕망이 더 많이 섞여 있다.
자유를 두려워하는 사랑은 결국, 스스로를 파괴한다.


진정한 사랑은 단단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단단하다는 것은 냉정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두려움을 숨기지 않고, 그 두려움 속에서도 존중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자유가 내 불안을 자극하더라도,
그 자유를 허락하는 용기 ― 그것이 바로 성숙이다.
고다르의 연인들이 끝내 함께하지 못한 이유는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자유를 견딜 만큼 자신들이 단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비극은 곧, 우리의 일상적 두려움의 비유다.


오늘날 SNS 속 사랑은 비교와 불안으로 오염되어 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 속에서 증명해야 하는 상태가 되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관심을 받을 때만 존재감을 느끼고,
사랑받지 못하는 순간 자신이 무너지는 듯한 공허함에 빠진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보여지는 관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신뢰’다.
사랑은 상대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도 함께할 수 있는 능력이며,
그 능력은 오직 자기 확신 위에서만 자란다.


사랑은 감정의 절정이 아니라 존재의 훈련이다.
서로를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있을 수 있는 법,
그 법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수없이 다투고, 헤어지고, 다시 사랑한다.
결국 사랑의 본질은 타인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유를 견딜 만큼 내면을 단단하게 세우는 일이다.

고다르의 영화는 그것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사랑은 낭만이 아니라 선택이며,
그 선택은 언제나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러나 두려움이 있다고 해서 사랑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두려움을 인식하고도 여전히 사랑을 선택할 때,
그 사랑은 비로소 인간적이고, 고고해진다.


사랑은 서로에게 닿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거리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 거리 속에서 불안을 견디고,
그 불안 속에서도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만이
사랑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사랑이야말로,
비교와 소유의 시대를 넘어

우리의 삶을 다시 ‘인간적인 것’으로 되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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