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절된 기억의 박물관

마드리드 국립고고학박물관에서

by 너부리

마드리드 국립고고학박물관(Museo Arqueológico Nacional, MAN)을 걷다 보면, 전시물보다 먼저 하나의 감각이 찾아온다. 이곳의 역사는 이어지지 않는다. 층위는 분명한데, 실은 서로를 부르지 않는다.



선사 이베리아의 조각과 토기, 그 다음 방에서 만나는 그리스와 이집트, 이어지는 로마. 그리고 중세로 넘어가면, 북부의 기독교 왕국들이 전면에 등장한다. 그런데 이베리아 역사에서 가장 길고, 가장 깊은 층위 중 하나였던 알안달루스—이슬람 통치기의 이베리아—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는다기보다, 연결되지 않는다는 인상이 더 정확하다.



이 박물관은 고고학적 연대기를 보여주는 공간이 아니라, 스페인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정의해왔는지를 드러내는 장소다.


◆ 분절된 역사, 늦게 만들어진 국가


이베리아 반도의 고대 문화는 로마 이전에도 풍부했지만, 그것이 중세 스페인의 자기 이해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로마화는 강력했고, 이후 서고트 왕국은 짧고 불안정했다. 결정적으로 8세기 이후의 이슬람 정복은 정치·종교·도시 질서를 전면적으로 재편했다.



중요한 점은, 이 변화들이 단순한 “외래 영향”이 아니라 지배 엘리트와 기억의 주체 자체를 교체했다는 데 있다. 그 결과, 선사 이베리아는 ‘조상’이 아니라 ‘발굴 대상’이 되었고, 로마는 계승된 전통이라기보다 참조되는 고전이 되었으며, 알안달루스는 역사이되 정체성의 계보에서는 배제된 층위로 남았다.


MAN의 전시 동선은 이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정직하게 드러낸다. 스페인의 역사는 축적이라기보다, 선별된 재조합에 가깝다는 것을.


◆ 1492년이라는 정의


이 박물관에서 근대는 사실상 1492년부터 시작된다.

그라나다의 함락, 콜럼버스의 항해, 유대인 추방이 겹친 해. 영토적 통일, 종교적 단일화, 세계적 팽창이 동시에 일어난 순간이다.


이전의 모든 역사는 준비기처럼 배치되고, 이 시점 이후가 비로소 ‘스페인’으로 호출된다. 그래서 MAN은 식민 제국의 역사도 거의 다루지 않는다. 식민지는 국가 형성 이후의 확장이 아니라, 국가가 응고되기 전에 벌어진 사건처럼 취급된다. 영광이자 부담인 이 기억은, 핵심 정체성 서사 밖으로 밀려난다.


◆ 왕실박물관에서 확인한 또 하나의 단절


이 분절감은 왕실박물관(Galería de las Colecciones Reales)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왕실의 계보를 따라가다 보면, 스페인 국가 형성의 결정적 순간에 카스티야 내부의 후계자가 아니라, 외래 왕조들이 지배층을 차지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카스티야의 합법적 계승자였던 후아나 1세(후아나 데 로카)는, 이 서사에서 유독 불편한 존재다. 그녀는 정신적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배제되고, 그 자리를 합스부르크 가문이 채운다. 이후 스페인의 왕실은 다시 부르봉 왕조로 넘어간다. 왕실박물관에 전시된 초상화와 의례용 유물들은, 이 전환이 예외가 아니라 스페인 근대의 정상 상태였음을 보여준다.



국가 정체성의 기원은 카스티야 중세에서 찾으면서도, 실제 지배층의 혈통은 유럽 왕조 정치의 흐름 속에서 외부에서 유입되었다는 점. 이 불일치는 스페인 국가 서사의 또 다른 균열이다. 후아나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개인의 비극 때문만이 아니라, 스페인이 자기 내부에서 지배층을 재생산하지 못했던 순간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 한반도와의 대비


이 지점에서 한반도의 역사와 비교하면 대비는 더욱 분명해진다. 한반도에서는 고대 국가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외래 문명—특히 중화 문명—을 지속적으로 번역하고 내재화해 왔다. 왕조는 바뀌어도 언어, 문자 엘리트, 역사 인식의 연속성은 유지되었다. 경주, 부여, 서울은 서로 공명한다.


반면 이베리아의 도시들은 각기 다른 문명의 산물처럼 보인다. 코르도바, 톨레도, 바르셀로나, 마드리드는 같은 국가 안에 있지만 같은 시간에 속해 있지 않다. 스페인의 민족 정체성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축적된 감각이라기보다, 단절을 봉합하기 위해 만들어진 서사에 가깝다.


◆ 프랑스라는 대비항


그래서 유럽 안에서 프랑스는 유난히 이질적으로 보인다.

프랑스는 그리스·로마라는 문명 코어 옆에서 그것을 흡수했지만, 기억의 주체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왕조와 체제가 바뀌어도 “프랑스는 프랑스다”라는 문장은 무너지지 않았다. 국가가 문명처럼 작동한 드문 사례다.


한국과 프랑스가 각자의 문명권에서 비슷한 안정감을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력한 외부 문명을 참조하면서도, 그것을 자기 서사 안에 지속적으로 통합해온 경험.


◆ 말해지지 않는 것들의 역사


MAN과 왕실박물관을 함께 보고 나면, 스페인의 박물관들은 무엇을 보여주느냐보다 무엇을 연결하지 않는가로 더 많은 말을 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알안달루스, 식민지, 그리고 내부 왕조의 단절은 부정되지 않지만, 중심 서사로도 편입되지 않는다.


그래서 마드리드의 이 박물관들은 찬란하지만 어딘가 비어 있다. 그 공백은 결핍이 아니라, 스페인이 아직도 답하고 있는 질문의 자리다. 우리는 언제부터 우리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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