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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빈 Oct 05. 2022

무지성 망나니로 살기 1일 차

가장 작은 단위로 '바로' 시작하고 환경을 바꿔버린다.

 나는 작업실과 20초 거리인 편의점이 가기 귀찮아서 16시간을 굶을 정도로 미친 듯이 잘 미루는 사람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강하게 느끼고 있다. 미루는 습관이 내 인생을 개떡같이 만들어버리고 있다는 걸.

대체 왜 미룰까. 그놈의 준비 때문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갖추고 시작해야 한다'는 거지 같은 완벽주의 때문에 진작 행동했으면 열댓 번은 했을 것도 과도한 고민 끝에 준비 과정이 길어지고 완벽한 타이밍을 찾느라 제대로 된 한 번의 시도도 못했다. 그 결과는 말만 번지르르하고 완결 짓지 못한 애매한 목표들만 쌓인, 답답한 삶이었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예민하고 속이 탔다. 이렇게 지내다가는 애매하게 살다가 애매하게 죽을 것 같은 끔찍한 미래가 그려져서 팔자 한 번 고쳐보고자 뭐든지 떠오르면 무지성으로 액션을 취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무지성 망나니로 살기' 프로젝트다.


나는 지금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쓸데없는 것에서도 미루는 사람이라 아주 작은 일들부터 떠올리면 바로 행동하는 연습을 해야 했다. 가장 첫 번째로 한 건 치실, 스킨, 로션, 렌즈를 가지러 가기도 귀찮아서 미니멀하게 꾸며놨던 인테리어를 박살내고 화장실 거울 앞에 몽땅 갖다 놓은 일이다. 즐겨보던 유튜브에서 욕망을 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거라고 했다. 이걸 역으로 이용해봤다. 눈앞에 갖다 두면 훨씬 편하고 자주 쓰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 내 세면대 위 선반에는 치약, 칫솔, 치실, 폼클렌징, 스킨, 로션, 렌즈, 렌즈액이 올려져 있다. 귀찮게 가지러 갈 필요 없이 한큐에 모든 행동을 취할 수 있다.


핑계도 대지 않기로 했다. 나는 복싱장을 가지 않는 날에는 집 앞 불광천에서 한강까지 러닝하고 줄넘기를 하는데, 피곤하다고 안 나가고 비가 온다고 안 나가면 안 피곤 한 날엔 날이 좋으니까 창문 열어놓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넷플릭스 봐야지~하면서 안나가게 될 걸 알기 때문에 '운동해볼까?'라고 떠올리면 시간이 늦었든 몸이 피곤하든 내일 출근을 해야 하든 그냥 줄넘기를 들고나간다. 나는 오늘 입력하면 바로 실행되는 로봇처럼 지냈다. 당근마켓에 책을 파는 것도 은근히 부차적인 작업 (사진찍기, 가격정하기 등등)이 요구되기 때문에 귀찮아서 생각만 하고 계속 미뤘는데 줄넘기를 들고 나가던 차에 갑자기 생각이 나서 바로 책장에서 팔 책을 골라서 사진찍고 업로드했다. 그리고 다시 출발.


지금도 하루하루 내가 생각 안 하고 바로 액션을 취한 것들에 대해 기록해놓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브런치를 켜고 일단 쓰고 있는 중이다. 첫날에 느낀 점은 일단 행동을 하면 귀찮고 어렵고 힘들 것 같던 일이 별 거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다는 거다. 생각하고 움직이기보다 움직이고 생각하고 고쳐나가는 편이 삶을 나아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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