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eeding (3)
주말을 합쳐 삼일 반의 휴식은 어쩌면 파멸의 나날을 위한 폭풍전야였는지도 모른다. 출근과 함께 쏟아지던 비난섞인 눈총에서 나는 곤란한 폭풍의 냄새를 맡고 말았다.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마주치는 사람마다 나를 흘끗대기 바빴기 때문이었다. 가볍게는 호기심 어린 눈초리부터 짜증 섞인 비난을 담은 눈초리까지 다양했지만 거기에서 느껴지는 의도는 똑같았다. 유난이 심하네. 그 누구도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 어떤 인삿말보다 커다랗게 들렸다.
인사를 하고 내 자리에 앉았을 때도 파티션 위로 빼꼼 올라오는 내 정수리로 꽂히는 시선때문에 두피가 따끔따끔한 기분이었다. 이런 월요일 아침을 보내고 일주일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이었다. 당장 오전 중 흡연장에서 돌아온 부장이 나를 불렀다.
“몸은 괜찮아?”
“네. 그 날은……”
“타이밍 안좋았으면 계약도 망칠 뻔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네. 그런데 너 그렇게 가버리고 팀원들이 고생 많이 했어.”
웬일로 내 안부를 묻나 싶었는데, 역시나 내 말을 끊어가면서까지 하고싶었던 말은 따로 있었다. 이상하게 그 날은 심한 생리통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고, 병원에서도 특별한 이상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설명하려던 내 생각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이제는 아픈 것도 내 잘못인가 싶다.
“……네.”
“다음 계약건은 더 신경써. 만회하고 대리 달아야지.”
만회. 턱 근육에 힘이 들어가고 눈가가 화끈하다. 이번 계약을 준비하면서 내가 실수한 부분이 있는지 생각해봤지만 딱히 실수는 없었다. 중간에 동현씨가 예비군 훈련에 가야 한다며 빠지는 바람에 그 일을 다 떠맡느라 예정에 없었던 야근을 며칠 한 적은 있었지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고막이 심장처럼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몸소 느끼며 청각도 시각도 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두근두근 울리는 소리는 점점 커져 이제 귀가 아프기까지 했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보려고 허우적대고 있는데 부장은 내가 대답하지 않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나를 부른다.
“최지현 사원.”
“……네.”
“내 말에 별로 동의가 안 되나봐?”
순간 부장에게 하고싶은 말을 마구 퍼붓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네. 저는 전혀 동의도 안 되고 억울해 죽겠는데요. 안그래도 몇 주 전부터 그놈의 계약 때문에 야근을 밥먹듯이 했는데, 김동현씨 예비군 때문에 제가 사흘이나 야근을 더 했다고요. 우리 팀에서 대리님 다음으로 일 많이 하는 사람이 저거든요. 근데 월급은 제가 제일 조금 받아요. 이게 말이 되냐고요.
이런 말을 한다면 어떻게든 나는 당장 잘리고 말겠지. 사원 주제에 부장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닐 거다.
“아닙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럼 가 봐.”
나는 전혀 납득되지 않은 얼굴로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정신을 꽉 붙들지 않고서는 눈물이 후드득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기를 쓰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눈물이 차오르지 못하게 눈을 깜빡거리면서 복도 바로 옆의 내 자리로 돌아가는데 모여있던 팀 사람들이 동시에 나를 홱 돌아보았다. 조금 당황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은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어설프게 눈을 피하고 의자를 빼는데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던 동현씨가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흘끗 쳐다보고는 말했다.
“사람이 아플 때도 있고 그런거죠.”
그는 대충 허허 웃더니 내 눈치를 살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옆자리에서 풍겨오는 담배 찌든내 때문에 안그래도 아픈 머리가 더 지독하게 지끈거린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가방을 뒤져 진통제를 찾아냈다. 이러려고 가져온 약은 아니었는데.
“선배, 그 날은 집에 잘 들어갔어요?”
텀블러에 있는 물로 진통제 두 알을 삼키자마자 동현씨의 은근한 목소리가 들렸다. 평소 목소리도 썩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억지로 꾸며내는 목소리로 친절한척 이야기하는 게 너무 불쾌하게 느껴졌다. 온몸에서 풍기는 담배냄새만 아니었더라도 조금 덜 불쾌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직 괜찮아지지 않은 두통만 해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데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는 은근한 목소리까지 거들자 어쩔 수 없이 머릿속에 있던 짜증이 조금 새어나갔다.
“네. 왜요?”
“……아니에요.”
내 입에서 나가는 날카로운 목소리를 듣는 건 처음이었는지 동현씨는 주춤대면서 얼른 꼬리를 내렸다. 자꾸만 반갑지 않은 참견을 일삼는 동현씨가 짜증스러웠다. 차라리 가만히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성가신 사람의 눈치없는 관심이란 늘 반갑지 않은 법이다.
팀원들끼리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며 내게도 권하는 김대리님을 그냥 보내고 점심은 혼자서 먹었다. 간단한 샌드위치와 커피 한 잔을 시켜 테이블에 앉아있자니, 오늘 처음으로 갖는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잔뜩 긴장됐던 몸을 소파에 잠시 기대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독가스처럼 쌓인 화가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볕을 그대로 받으며 눈을 살며시 감는다. 응달 아래 고드름처럼 딱딱하고 뾰족했던 마음에 온기가 드는 것 같다. 이 기분을 틈타 쇳덩이 같이 딱딱한 어깨를 살살 주물러보지만 이건 역부족이다. 삼 일의 휴식이 무색하게 출근한지 세 시간 만에 온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 같아 허탈하다.
명상하듯 최대한 조용한 점심시간을 보내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간다던 팀원들 자리는 텅 비어있다. 점심시간이 끝나도 사무실에는 나 혼자였다. 평소에는 팀원들 사이에 잘 끼지 않는 과장도 함께 간 모양이다. 무슨 얘기가 그렇게도 재밌을까 구시렁대다가 그 얘기가 내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순간 아찔하다.
한 시 반이 되어서야 줄지어 복귀한 팀원들은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내 생각이 억측이라고 증명이라도 하듯 그 누구도 내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침보다는 좀 낫다 싶으면서도 언제 가라앉을지 모르는 망망대해의 조각배에 올라탄 것처럼 아슬아슬한 기분이었다. 머리 위에는 당장이라도 폭풍우가 몰아칠듯 어둑한 하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 그랬다.
하지만 폭풍우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부터 불어왔다.
“저기, 할 말이 있어요.”
퇴근을 준비하고 있는데 동현씨가 갑자기 목소리를 깔고 나를 불러냈다. 바로 옆자리면서 따로 불러내는 게 수상했지만 오늘 사내 소문의 주인공으로서 또 다른 잡음을 내지 않기 위해 순순히 따라나갔다. 앞장서는 동현씨는 자꾸 나를 돌아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호칭만 선배일 뿐, 이 년이나 먼저 입사한 내게도 수시로 강짜를 부리기 일쑤인 인물이라 이런 태도는 아주 낯설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저기, 선배.”
회사 옥상정원에서 가장 사람이 없고 구석진 자리로 나를 안내한 동현씨는 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알기는 하는건지 혼자 복잡한 얼굴로 나를 마주보았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우리 사귈래요?”
지나치게 갑작스러운 폭풍우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