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딩

bleeding (2)

by 정서정




열한 시부터 시작한다던 미팅이 시작된 것은 결국 열한 시 반이었다. 열두 시쯤 약국에 가려던 나의 계획은 당연히도 무산되고 말았다. 미팅 전에는 사원급은 참석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니, 결국은 호출받고 회의실에 불려갔기 때문이었다. 대리님과 동현씨 사이에 앉아 부장의 짧은 마지막 PT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아랫배에서 깊숙하게 찌르듯 느껴지는 통증에 헉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선배, 왜 그래요?”



달갑지 않은 동현씨의 소곤대는 소리가 들렸다. 제 딴에는 걱정해주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거기에 대답해줄 여유가 조금도 없었다.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강한 통증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개를 두어 번 가로저었다.


칼로 찌르는 것처럼 날카로운 통증이 아랫배를 쿡 찔렀다 사라졌다. 끝났나 싶으면 다시 쿡 찌르고, 제발 멈췄으면 좋겠다고 빌어도 소용없었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릴 때 쯤에는 부장이 PT를 마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미리 약을 먹었어야 했는데. 후회는 잠시뿐이었다. 아랫배에 집중되어 몰려오는 통증 때문에 비명을 참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표와 거래처 임원이 계약 일정을 조율하고 악수를 나눌 때에도 나는 배를 붙잡고 어쩔 줄 몰라했다. 미팅이 끝나도 약국까지 갈 수나 있을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선배, 진짜 오늘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배가 좀.”


“이제 인사하고 마칠 거 같은데 조금만 참아요.”



이제 내 얼굴은 땀범벅이었다. 동현씨가 몇마디 덧붙여 말했지만 나는 이제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회의실의 모든 목소리들이 알아들을 수 없게 뭉개졌다. 차가운 손끝이 덜덜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더라. 정신이 조금 흐려지는 것 같다. 흐릿한 시야로 모두가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나도 일어나야 하는데.



“지현씨. 지현씨, 뭐 해?”



아마도 이 목소리는 대리님이었던 것 같다. 나를 내려다보는 옆자리의 대리님 얼굴이 둥실 떠오르듯 나타나는 것 같았다. 대리님 그게요.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아랫배 한가운데가 칼에 푹 찔려 구멍이 나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눈앞이 이지러졌기 때문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앞으로 고꾸라졌던 것 같다. 내 한쪽 어깨를 잡고 흔드는 대리님과 동현씨의 목소리가 개미소리처럼 작게 들렸다.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누워있으면 안 되는데. 이러다 새면 어떡하지?








정신을 잃어 기억나지는 않지만, 병원에서 병상 옆에 앉아있던 동현씨가 구급차에 실려왔다고 말해주었다. 병원의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러 눈을 뜨긴 했지만 확인을 받고 나니 정말 많이 아팠구나 싶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아팠던 건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아침을 먹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뭔가 다른 병이 있기라도 한 걸까.


동현씨는 병원에 있는 내내 내 옆에 있었다. 내가 정신을 차렸는데도 회사에 복귀하기가 싫은 건지 병상 옆에 앉아서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의사가 와서 내 생리통에 대해 설명해야 했을 때에도 계속 그렇게 앉아있었다. 부탁할 데가 없어 직접 생리대를 사러 편의점에 갈 때도. 눈치가 없는 건지 모르는척 하는건지 알 길 없는 나는 산부인과로 가서 몇가지 검사를 한 후 병원을 나섰다. 동현씨는 계속 내 뒤를 쫄래쫄래 쫓아왔다.



“회사로 갈 거에요?”



병원에서 막 나온 나에게 묻는 질문이 황당하기 짝이 없다. 사람이 기절할 정도로 아팠으면 빈말이라도 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속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까 과장님이랑 통화하고 반차 썼어요. 동현씨는 회사로 복귀해요.”

“아. 그럼 저는 갈게요.”



나를 남겨두고 뒤돌아 걷는 동현씨의 뒷모습이 짜증난다. 내일도 저 얼굴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내가 생리통으로 기절한 거라고 직원들이랑 신나게 뒷담화를 할지도 모른다. 다시 한숨을 푹 내쉰다.

그 날 저녁에는 대리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내 상태를 잘 살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못내 서운한 생각이 좀 들기는 했지만 중요한 미팅 중이었으니 괜찮다고 대답했다.



“병원에서는 뭐래요? 왜 그런 거래요?”


“아. 사실은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 기절한 거예요. 병원에서는 초음파 하고 왔는데 특별한 건 없대요.”


“산부인과는 꼭 그러더라.”



대리님은 공감한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면서 내일까지 연차로 처리할 테니 푹 쉬라고 했다. 그날 밤은 내내 기분이 좋았다. 뭐가 어찌됐든 다음날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충분히 행복할만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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