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경이 집에서 도망친 것은 분노가 한계치를 훌쩍 넘어 자신의 몸을 조각낼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 쯤이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후, 인경의 세상은 달라졌다. 무덤덤하던 마음에 분노가 스며들어 거친 파동을 그렸다. 몸으로만 느끼던 아픔이 마음에 비수로 꽂혔다. 성인이 될 날을 손으로 꼽아가며 마음을 다독이지 않았더라면 금방 세상을 등지고 떠났을 거라고, 인경은 지금도 종종 생각했다.
성인이 될 날을 기약했던 것은 하루라도 빨리 집에서 나가기 위함이었다. 결론을 내자마자 그는 하지 않던 공부를 시작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인경은 잠을 아껴가며 공부를 했다. 기초가 없어 기초부터 하려니 속도가 느렸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공부가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었다. 폭군이 주먹을 휘두른 날에도 인경은 퉁퉁 부은 광대뼈를 붙잡고 책상앞에 앉았다. 눈물이 줄줄 흐르는데도 이를 악물고 풀었던 문제가 몇개인지 셀 수가 없었다. 서른 명 남짓한 교실에서 이십등을 겨우 하던 성적은, 결국 1년 반만에 최상위로 올라갔다.
합격한 대학 중 장학금을 주겠다는 딱 하나, 학교는 집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인경은 망설이지 않았다.
“인경아, 이렇게 나가면 어떻게 해.”
“저 이제 다시는 안 돌아올 거예요. 찾지 마세요.”
궁상맞게도 눈이 오는 날이었다. 인경은 커다란 이민가방을 끌고 함박눈 사이로 자유를 찾아 떠났다. 여인은 인경이 떠난 자리에 한참을 서서 지나온 인생의 무게 만큼 무거운 눈발을 가만히 맞았다.
인경은 10년이 넘도록 그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일 년에 두어 번, 여인에게서 오는 전화에 성의 없이 잘 지낸다는 안부를 전했을 뿐. 차마 여인의 전화를 매정하게 뿌리치지 못했던 것은, 어떤 날 밤, 여인이 대학 원서를 사라며 꺼냈던 비상금 오십만 원 때문이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늘어진 옷을 쓸어담아 옷장에 던져넣는 인경의 뒤로 긴장되어 어쩔 줄 모르는 여인이 현관에 서서 집 안을 두리번거렸다.
“들어오세요.”
아직 정리가 다 끝나지 않아 어수선한 집은 올 해 초 겨우 이사한 투룸이었다. 집을 떠난지 십 년이 넘어서야 겨우 얻은 투룸 월세에 얼마나 감개무량했던지. 이삿날 밤, 인경은 맥주에 오징어를 씹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현관에서 어물대는 여인을 물끄러미 보던 인경은 오늘을 위해 이사를 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온 여인은 싱크대 앞 부엌 한켠에 엉덩이를 살짝 대고 앉았다. 느릿느릿 겉옷을 벗는 모습이 집 밖으로 처음 나와보는 사람처럼 어색해 보였다. 인경은 연신 어쩔 줄 모르는 여인이 답답해졌다. 왜 저렇게 살까.
“방으로 들어와요.”
인경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여인은 머뭇대다가 마지못해 문지방을 넘어 방으로 들어왔다.
“너 사는 거 보니까 그래도 안심이 좀 된다.”
한참만에 꺼낸 여인의 말은 인경을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본인 걱정이나 하세요.”
“…….”
여인의 표정이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처음 오는 딸의 집에 대한 한 줌의 호기심과 설렘은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미안하다. 이런 식으로 너를 보고 싶지는 않았어.”
“저도요. 그 대단하신 분은 늘 제 상상을 뛰어넘네요.”
인경은 이죽이며 소파에 털썩 앉아 팔짱을 꼈다. 여인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내 참았던 눈물이 이제서야 터지는 것 같았다. 인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인이 울게 놔둘 생각이었다.
한참동안 말없이 흐느끼기만 하던 여인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인경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충혈되어 빨갛게 변한 눈이 무섭기도, 처연하기도 했다. 인경은 한숨을 쉬었고, 여인은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아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결혼 전에는 네 아빠도 다정한 사람이었어. 결혼하고 얼마 안 있어서 네 오빠를 임신하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 변하기 시작하더라고. 나는 다정한 모습이 본 모습이라고 믿었어. 그래서 버텼어. 본 모습이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었으니까.”
인경은 여종이 이렇게 길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늘 일상적인 짧은 말이 대화의 전부였다. 자신의 이야기를 한 적도, 속마음을 털어놓은 적도 없었다. 자기 마음을 혼자 삭이느라 씨근대는 숨을 꾹꾹 짓누르며 가슴을 치는 모습만이 익숙했다.
인경은 창문 밖으로 두었던 시선을 방안으로 가져왔다. 수척한 얼굴을 눈물로 씻어내는 여인의 이야기가 좀 더 듣고 싶었다.
“왜 그랬어요?”
“믿고 싶지 않았으니까.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어. 나를 위해서도, 너희들을 위해서도.”
여종은 말을 하면서도 계속 숨을 가다듬었다. 울음의 여운이 그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 같았다. 인경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로 여종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너를 낳고 나서 크게 다퉜는데, 처음 뺨을 맞았어. 너무 아픈데 공포가 먼저 내 심장을 꽉 붙드는 것 같았어. 그 다음부터는 점점 심하게 소리치고 때리는데, 나는 한 마디도 못했어. 너무 무서워서. 욕하는 대로 듣고 때리는 대로 맞았어. 동네 여자들이 다들 도망치라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 내가 도망가면 너희를 죽이겠다고 협박했거든. 그때 알았지. 아, 나는 이제 갇혔구나.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겠구나.”
인경은 목이 타는 것 같았다. 목 뿐 아니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몸 속에서 번개같은 것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인경은 벌떡 일어나 냉장고로 갔다. 냉장고 문 맨 밑칸에 넣어둔 얼음장 같은 생수를 꺼내 병째 벌컥벌컥 들이켰다. 가는 물줄기가 인경의 턱을 타고 연파랑 티셔츠 위로 뚝뚝 떨어졌다. 물방울이 떨어진 대로 새파란 자욱이 빠짐없이 피어올랐다.
인경은 차가운 물을 넉넉한 머그에 가득 따랐다. 그는 퉁명스러운 걸음으로 여인에게 다가가 컵을 내밀었다. 여인은 순순히 컵을 받아들고 물을 급하게 마셨다. 큰 컵에 든 물을 반이나 마신 여인은 컵을 바닥에 내려두고 다시 인경을 보았다. 인경은 가만히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네 아빠가 너를 처음 때렸을 때, 정말이지 죽고 싶었어. 나로도 모자라 네게 손을 댈 줄은 몰랐거든. 그래서 네가 스무 살이 되자마자 집을 나가겠다고 했을 때, 말리면서도 한편으론 차라리 잘 됐다 싶었어. 너라도 그사람한테서 좀 벗어났으면 해서.”
“이혼 하실 거죠?”
인경이 확인하듯 힘주어 물었다. 여인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몇 번이나 망설인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될까?”
여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이었다. 인경은 이 가여운 사람이 좀 더 자유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돌로 지어진 건물은 서늘한 냉기를 거침없이 뿜어냈다. 아스팔트를 무섭게 달구는 한여름의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슨 한이라도 있는 것처럼. 검은 구두굽이 돌 바닥을 두드릴 때마다 울리는 발소리는 찬 공기를 가르고 건물 구석구석 퍼졌다. 새카만 구두를 신은 이의 느린 발걸음은 구석자리 선반까지 가서야 멈췄다. 정사각형으로 나누어진 선반의 칸마다 유리문이 하나씩 달려있었고, 그 안에는 희끄무레한 납골함이 하나씩 들어있었다.
쪼그려 앉아 가장 낮고 값싼 칸을 바라보는 인경의 눈에 아무래도 낯이 익지 않는 이름 세 글자가 보였다. 이선화. 평생 그 이름대로 착하게만 살다가 허무하게 떠나버린 사람. 불쌍한 여인. 엄마.
“엄마.”
목구멍에서 나오는 거친 소리가 어색해서 인경은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얼굴이 떠올라 유리창을 어루만졌다. 죽어서도 남들 아래에서 웅크리고 있는 엄마가 가련했다.
“엄마. 미안해. 최선을 다 했는데……. 4년밖에 못 받았어. 정말 미안해.”
인경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푹 숙인 얼굴에서 서러운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얼음장 같은 돌바닥 위로 뚝뚝 떨어져 내리는 슬픔을 모른척하며 인경은 이를 꽉 물었다.
선화씨가 죽은 것은 벌써 일 년이 지난 일이었다. 무사히 이혼을 하고 막 십오 개월에 접어들던 무렵이었다. 인경이 말리는데도 굳이 보탬이 되어야 마음이 편하겠다며, 작은 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두 달이 지났을 그때. 이른 출근 탓에 늘 깜깜할 때 집을 나서는 선화씨를, 죽음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너 내가 영영 못찾을 거라고 생각했어?”
선화씨의 사망 소식을 듣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달려온 인경의 앞에서 뻔뻔한 얼굴로 그가 말했다. 인경은 치가 떨렸다. 선화씨의 삼십오 년을 끔찍하게 짓밟은 폭군은 결국 그가 처음 가져본 짧고 연약한 자유를 잔인하게 빼앗았다. 악에 받친 인경이 고래고래 욕을 하며 달려들었다. 가만히 들을 리 없는 폭군이 벌떡 일어나 손을 치켜들었다. 그 사이를 막은 것은 경찰들이었다. 엉겨붙으려는 인경과 폭군을 각각 떨어뜨린 경찰은 인경에게 간단한 것들을 몇가지 묻더니 폭군을 어딘가로 데려갔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가만히 앉아있는 인경에게 다가온 경찰 한 명이 메마른 어조로 사건을 설명했다.
두 번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원경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1심 재판의 판결이 나오는 날 법정에 얼굴을 비췄고, 2심의 첫 공판이 시작되기 전날 인경을 찾아왔다. 원경은 마음이 아프지만 별로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모든 것은 폭군의 잘못이라고도 했다. 결국 재판은 오롯이 인경의 투쟁이 되었다.
첫 재판에서 겨우 3년형이 선고된 것이 억울해 인경은 검사를 설득해 항소했다. 그렇게 1년에 걸쳐 얻어낸 것이 고작 4년형이었다. 2심 재판이 끝나고, 법정에서 나오던 담당 검사는 인경이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상고 계획이 없다고 딱잘라 말했다. 이런 우발적인 상해치사 사건에서 사 년이나마 받아낸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인경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은 것도, 폭군이 겨우 4년의 징역형을 받은 것도. 검사는 익숙하다는 듯 한숨을 쉬어 보이곤 바쁜 걸음으로 사라졌다. 재판은 그렇게 끝났다.
납골당 밖은 뜨거웠다. 피부를 감싸고 있던 냉기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오 분도 채 걷지 못해 이마에 땀이 맺혔다. 인경은 다음달 만기인 적금이 나오면 엄마의 납골당 자리를 조금 더 위쪽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