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역사

(1)

by 정서정



인경은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그는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흔하고도 충격적인 사실에 반쯤은 얼이 빠진 얼굴로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다. 충격으로 벌어진 입술은 조금 떨리는 것도 같았다.



“인경아. 김인경?”



핸드폰 스피커로 새나오는 원경의 목소리가 인경을 찾았다. 인경은 다른 손으로 관자놀이 움푹한 데를 쿵쿵 쳤다. 어떻게든 정신을 좀 차려보려는 작은 노력이었다. 그럴리가 없어. 어떻게 그렇게까지.



“정말이야?”


“그래.”



몇 년만에 듣는 원경의 목소리는 화가 난 것 같기도, 체념한 것 같기도 했다. 이미 현실을 인정하고 불가피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제스처였다. 인경은 그의 미지근한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시작된 분노의 불길이 자신의 가슴과 머리를 태우는 데 걸린 시간은 기껏해야 3초 남짓이었다. 그 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처럼 가슴팍을 활활 태우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카맣게 재가 될 것만 같았다.


그 사실을 안지 겨우 하루밖에 안 된 원경은 그것을 이미 반쯤은 받아들인 것 같았다. 체념한 듯 평온한 목소리가 그렇게 들렸다. 이 불길이 겨우 하루, 아니 열 여덟시간 반만에 사그라들 수 있는 것일까? 인경은 묵혀두었던 짜증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저녁에 집으로 갈게.”



인경의 목소리가 분노로 미세하게 떨렸다. 원경은 그 목소리의 의미를 짐작한 듯 한숨을 쉬었다.



“그래. 이따가 보자.”



인경은 원경의 목소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통화종료 버튼을 거칠게 눌렀다. 오랜만에 전화해서 겨우 이런 소식을 전한 원경이 원망스러웠다. 원래도 꼴보기 싫은 얼굴이지만 목소리마저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선택의 여지 없이 가족이라는 이유로 알 수밖에 없었던 끔찍한 사실은 족쇄가 되어 인경의 전신을 꽁꽁 조이는 것 같았다. 발목부터 무릎, 배, 가슴을 차례로 옥죈 시커먼 족쇄가 인경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목 안쪽에서부터 기침이 났다. 기침은 이내 헛구역질로 변했다.


이런 상황까지 감내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누군가에게 시달려야 하는 걸까. 인경은 이제 인생의 대부분을 괴로움으로 얼룩지게 만들었던 그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흐릿해질 때 쯤 어떻게든 다시 떠오르곤 하는 기억이 하나 있다. 인경이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이었다. 형형색색의 커다란 사탕을 들고 다른 손에는 곰인형을 안고 입이 찢어져라 웃고있는 오빠 원경과, 원경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인자하게 웃고 있는 할머니, 그리고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 액자처럼 박제된 불쾌한 기억은 32년 내내 인경의 목줄을 쥐고 틈이 날 때마다 그를 괴롭혀댔다.


할머니의 아들은 언제나 폭군 같았다. 집에만 오면 말로 가족들을 부리듯 일을 시켰다. 물 떠와라, 밥 차려라, 청소 똑바로 못하냐. 그의 말은 늘 명령조였다.


말은 심심찮게 행동으로 바뀌었다. 몽둥이처럼 둔탁하고 아픈 그의 말처럼 그의 행동도 늘 남을 아프게 만들었다. 그것은 때때로 그의 여종이었고, 인경이었다. 여종도 인경도 몸 어딘가에 검붉은 멍을 달고 살았다. 그래서 인경은 열 넷이 될 때까지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폭군은 텔레비전 연속극을 볼때마다 주문을 외듯 하는 말이 있었다. 그는 텔레비전에 자상한 부모의 모습이 나올때마다 인경에게, 또 원경에게 말했다.



“저건 가짜야.”



인경은 그의 말을 믿었다. 현실이 이렇게 지옥같으니 가짜라도 보고 환상을 갖는 거겠지. 인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던 것으로 인경은 기억한다. 할머니가 죽고 폭군의 패악질이 극에 달하던 어느 날이었다. 여종이 하나 사라져서인지 폭군은 두 주가 넘게 화에 미쳐있었다. 그는 하루에 서너 병씩 소주를 마시고 눈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던지고 부쉈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경은 팔에도 다리에도 붉은 매자국이 낙서처럼 불규칙하게 남았다.



“잠깐만. 복도로 나와.”



쉬는시간이었다. 옆자리인 짝꿍이 인경을 불렀다. 인경은 이제 막 친해진 친구들과 공기놀이를 하다 말고 복도로 나갔다.



“왜 불렀어?”



인경이 묻자, 짝꿍은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아까 체육시간에 옷 갈아입을 때 팔에 멍든 거 봤어. 너 누구한테 맞았니?”


“뭐?”



인경은 당황했다. 저도 모르게 흰 블라우스로 가려진 팔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아래 숨겨진 자신의 팔을 떠올렸다. 뱀이 지나간 자국처럼 붉은 멍이 기다랗게 기어가는 가느다란 팔.



“맞은 거 맞지?”


“아, 아닌데?”


인경은 본능적으로 부정했다. 인경에게 맞는 게 부당한 일이라고 말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사실대로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짝꿍은 무슨 큰일이라도 난 듯 심각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누군데? 말해 봐. 대체 어떤 미친 놈이야?”


“그런 거 아니라니까!”



계속되는 추궁에 인경은 소리를 꽥 질렀다. 그리고 손에 들고있던 공기알 몇 개를 짝꿍에게 세게 던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돌아섰다. 뒤에서 짝꿍이 뭐라고 소리쳤지만 인경의 귀에는 커다랗게 웅웅대는 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인경은 난생 처음으로 맞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집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우중충했다. 아파트 건물은 창백한 낯으로 을씨년스럽게 인경을 반겼다. 색은 변했지만 감옥처럼 느껴지는 삭막함은 지난번 이 집을 나갈 때와 똑같았다. 인경은 건물 입구에 서서 숨을 몇 번 크게 쉬고 나서야 겨우 안으로 들어갔다.


딩동. 두 명만 타도 가득 찰 것 같은 조그만 엘리베이터가 몸을 덜덜 떨며 11층에 멈췄다. 좁은 복도를 지나 1101호 앞에 선 인경은 천천히 초인종을 눌렀다. 집 안쪽으로 초인종이 길게 소리를 내며 울었다. 벨소리의 여운이 끝나기 무섭게 안에서 문이 열렸다. 문에서 나는 철컥 소리가 인경의 마음을 아래로 툭 떨어뜨렸다. 두터운 철문 뒤에서 나타난 사람은 한층 더 수척해진 여종이었다.


부엌과 연결된 작은 거실겸 방에는 원경과 폭군이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벌써 이십년이 넘게 쓴 낡은 접이식 탁상을 사이에 두고 앉은 둘은 말이 없었다.


인경은 잠시 말문이 막혀 가만히 서 있었다. 십년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징그러워서 도망쳤던 야차와도 같던 얼굴. 많이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인경은 이제 폭군이 그때만큼 무섭지는 않았다.



“저 왔어요.”



폭군은 인경을 흘끗 쳐다보더니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몸을 일으킨 원경이 들어오는 인경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왔니?”


“응.”



인경은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을 잠시 뒤로하고 탁상의 한 쪽 옆에 앉았다. 여종은 따라 들어와 인경의 옆에 애매하게 앉았다. 침묵에 잠식되어 가는 공기를 깬 것은 인경이었다.



“오빠가 설명해.”



원경은 탁자 위에 자기 핸드폰을 올려놓았다. 밝게 떠오른 화면에는 두 남녀가 얼굴을 맞대고 찍은 너절한 사진이 보였다. 인경은 미간을 팍 찡그리고 원경의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어릴적 시장 생선가게에서 맡았던 역겨운 생선 피비린내가 뱃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헛구역질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아버지 핸드폰 뒤져보니 증거는 더 찾을 것도 없어. 그 아주머니랑은 벌써 20년이나 만나셨단다.”



인경은 혐오스러운 벌레라도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폭군을 보았다. 폭군은 잔뜩 찡그린 못마땅한 얼굴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인경의 옆에서 밭은 숨소리가 났다. 여종의 끊어질 듯 가늘게 이어지는 숨소리였다. 안에서부터 푹 썩어버린 숨은 독가스처럼 해로워보였다. 인경은 고개를 돌려 여종을 쳐다보았다.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윗옷의 가슴어림만 꽉 붙잡고 있는 여종의 손은 뼈가 튀어나올 듯 마른 채였다. 인경은 명치에 커다란 말뚝이 박힌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졌다. 여종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 때문이었다.



“네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거나 노름을 하는 건 아니잖니.”



순진하게 폭군을 믿으려 했던 여종은 너무나도 어리석고 가엾었다. 어쩌면 여종도 알고있었을지 모른다.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여종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나쁜짓이란 폭군에게는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쉬운, 숨쉬기와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인경은 눈물이 날 것처럼 코끝이 찡하게 울리는 것을 느끼고 얼른 눈길을 돌렸다.



“이혼 하실 거예요?”


“…모, 모르겠어……. 나는 이제 어...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종은 밑으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소매끝으로 잡아 훔쳤다. 인경과 원경은 못본 체 폭군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는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원경이 물었지만 폭군은 대답하지 않았다. 폭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인경은 그의 생각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분명히 재수 없게 걸려서 짜증나는 일이 생겼다고 하겠지. 인경의 생각은 반쯤 들어맞았다.


원경이 아버지, 하고 폭군을 다시 불렀을 때에야 그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뭘 어쩌라는 거야?”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냐고요.”


“어쩌긴 뭘 어째. 그냥 살던 대로 살면 되지.”



지금까지 살아온대로, 자기 마음에 내키는 대로 살겠다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여종은 집에 두고 다른 여자는 밖에서 만나겠다고. 인경은 귀를 의심했다. 어쩌면 저렇게까지 뻔뻔할 수가 있을까. 폭군은 늘 인경의 상상 바깥에서 그를 괴롭혔다.


인경은 차갑게 얼어붙은 심장을 조각내 뱉어내듯 날카롭게 말을 냈다.



“됐어요. 어차피 두 분이서 결정 못할 것 같으니까 제가 할게요.”


“뭐라고?”



늘 얻어맞기만 하던 조그만 여자애가 어른이 되어 나타난 현실을 그는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너 따위가 뭔데 결정을 하느냐고 말하는 눈빛은 예나 지금이나 불쾌했다. 인경은 여종을 잠깐 보았다. 여종은 내내 양손을 붙잡고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원경은 폭군의 반응을 알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한숨을 푹 쉬었다. 인경은 말을 이었다.



“둘이서 상의해서 이혼 서류 보낼게요. 소송 하고 싶으시면 그렇게 하셔도 되고요.”


“뭐?”



폭군이 버럭 소리쳤지만 인경은 그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오늘 엄마는 제가 데려갈게요. 더이상 마주치는 일 없도록.”


“이…!”


“오빠는 증거자료 나한테 넘겨.”


“인경아.”



원경이 인경을 불렀다. 인경이 원경을 한 번 노려보았다. 원경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나한테 한마디만 더 해 봐.”


“미안해.”



원경은 순순히 사과했다. 인경이 폭군의 옆에 있던 그의 핸드폰을 잡어들었다.



“증거 삭제하시기 전에 제가 좀 봐야겠어요. 이미 다 지우셨는지 모르겠지만.”


“이리 내 놔!”


“보고 드릴게요.”



인경이 폭군의 핸드폰을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폭군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너는 이제 애미애비도 없냐? 다 네 멋대로야? 네가 뭔데? 너같은 걸 낳아서 키워 줬으면...”



폭군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동안 가만히 앉아있던 인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은 바로 하세요. 언제 저 키워준 적 있으세요? 엄마가 혼자 키웠죠.”



폭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일그러지는 것을 모른체 한 인경이 여종을 돌아보았다. 여종은 아직도 어쩔 줄 모르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일어나세요.”



여종이 고개를 들어 인경의 얼굴을 보았다. 여종의 눈에는 서러운 눈물이 톡 치면 흘러내릴 것처럼 고여있었다. 인경은 짐짓 찡그린 표정을 지어보였다. 다시 고개를 숙인 여종은 대꾸하지 않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폭군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다시 고함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술이라도 마셨는지 주체가 안되는 커다란 목소리였다.



“이것들이 미쳤나? 가긴 어딜 가. 이대로 나가면 내가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다 죽여버릴 거야! 알았어? 알겠냐고!”



인경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안방으로 들어가 여종이 짐을 싸는 것을 도울 뿐이었다.


폭군은 자신의 말에 아무도 대꾸하지 않자 인경의 뒤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갔다. 좀 더 윽박지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는 방 안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년들아! 내 말 안 들어? 아주 오냐오냐 해 주니까 우습게 보이냐?”



두 사람의 뒤로 다가온 폭군이 소싯적 습관대로 손을 번쩍 들었다. 그는 두 사람의 뒤통수를 보고 있었다. 폭군의 뒤를 따라 들어온 원경이 얼른 폭군의 팔을 콱 붙잡았다.



“아버지!”


“이것 놔! 이 자식아!”



폭군은 원경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해 버둥거렸다. 그 사이 대충 짐을 꾸린 인경과 여종은 미련없이 집을 나왔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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