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eeding (5)
가만히 앉아서 일을 하고 있는데도 뒤통수가 따갑다. 누군가 내 옆으로 지나갈 때마다 내 이름을 속삭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눈 앞의 모니터가 무색하게 온 신경이 자꾸만 뒷통수로 향한다. 어제 부장에게 불려갔다 온 다음부터는 계속 이 상태였다. 부장에게 불려가 싫은 소리를 듣는 것은 사흘 전이 처음이었는데, 겨우 이틀만에 다시 불려가게 될 줄이야.
“너 왜 이렇게 분란을 만들고 다녀? 그렇게 안 봤는데 말이야. 자꾸 회사 분위기 흐리고 다니지 마.”
불려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신경이 잔뜩 예민해져 있는데, 저런 힘빠지는 말이라니. 두 번 연속으로 내 잘못이 아닌 일 때문에 질책을 받는 것이 황당하고 억울하다. 신입 때 같았으면 부장 앞에서 엉엉 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화가 치미는 탓인지 눈가가 시큰하긴 했지만 부장 앞에서 울고 싶지는 않았다. 내 눈물을 보면 약해빠졌다고 핀잔할 부장이 꼴보기 싫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이런 인간 앞에서 울면 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분란은 내가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잘못은 김동현에게 있었다.
울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항변하지 못한 것이 걸려서인지 누가 나를 쳐다보기만 해도 속이 뒤틀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부장의 훈시는 불쾌한 여파를 남겼고 하루가 지난 오늘까지도 남아있었다. 모니터에 업무용 메신저의 알림이라도 뜨면, 누가 내 이름을 부르기라도 하면 나는 깜짝 놀라 포식자를 경계하는 미어캣처럼 벌떡 일어났다. 이대로라면 신경쇠약에 걸릴지도 모르겠다.
이제 김대리는 내게 말을 걸거나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를 사수로 삼아 이 회사에서 보냈던 3년의 시간이 덜렁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남자 직원들만 득실대는 회사에서 그나마 나를 챙겨주던 몇 안되는 여자 직원이었는데. 내 잘못도 아닌 김동현의 같잖은 고백 때문에 틀어져버리다니 허무하다. 오랜만에 인간관계의 허무를 곱씹고 있자니 문득 의문이다. 김동현이 나한테 고백한 건 어떻게 안 걸까. 정말로 그 옥상정원에서 모조리 들어버린 건가.
요 며칠 가장 최악이었던 것은 옆자리에서 자꾸 나를 흘끗거리다가 한시간이 멀다하고 뛰쳐나가는 김동현이었다. 돌아올 때는 어김없이 지독한 담배냄새와 함께였다. 그저께 내게 말도 안되는 말을 지껄인 얼굴을 계속 봐야 하는 것이 최악인지, 지독한 담배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픈 것이 최악인지 가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사흘 전 그 헛소리가 없었더라면 적당히 하라고 핀잔이라도 주었겠지만 지금은 말을 걸기도 싫었다. 내 목소리를 타고 김동현에게 있던 더러운 담배냄새가 들어올 것 같은 기분이라 같이 있는 자리에서 입을 열기도 싫었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업무시간에 거의 열 번이나 자리를 비웠던 김동현을 다시 마주친 것은 의외로 우리 동네 지하철역이었다. 지난 번 회식 때 듣기로는 우리집과는 꽤 먼 곳에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왜 하필 여기에서 마주친 건지 황당했다. 번화가도 아닌 동네라 이 근처에서 저녁약속이 있을 리도 없었다. 자리도 오래 비운 주제에 여섯 시가 되자마자 사라진다 했더니만 여기에서 이렇게 만나다니. 재수도 없는 하루다.
“지현씨.”
대충 떨떠름한 표정으로 지나치려고 하는데 김동현이 내 팔을 붙잡으며 내 이름을 불렀다. 아무리 나이가 같아도 내가 2년이나 먼저 입사한 선배인데 지금같이 껄끄러운 상황에서 부를 호칭이 아니었다. 지현씨라니. 나는 팔을 뿌리쳤다. 기분이 더러워서 얼른 옷을 빨고 샤워도 하고 싶다.
“미쳤어요?”
“나는 왜 안되는데요? 그동안 나 좋다고 한 건 뭐였어요?”
사람이 너무 예상치 못한 말을 들으면 머리가 하얘진다고 하더니 그게 딱 내 얘기였다. 나는 생전 처음 듣는 황당한 소리에 머릿속이 순간 멈추는 것 같았다. 내가 좋다고 했다고. 그러니까 담배냄새 나는 최악의 인간 김동현을?
“무슨 헛소리야!”
화가 나 손쓸 새도 없이 반말이 튀어나갔다. 그러니까 그런 거였다. 너무 미친 짓을 하는 사람에게는 나이와 상관없이 반말이 나오게 되는 그런 거. 큰소리가 나자 사람들이 이쪽을 빼꼼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주목받고 싶었던 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사람들이 이쪽을 쳐다보든 말든 김동현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를 꽥꽥 질렀다.
“니가 나 좋다고 웃었잖아! 내가 사주는 커피랑 간식도 다 얻어먹었잖아!”
재미없는 농담을 할 때 내가 웃어주었던 것은 사회생활의 일환이었고, 커피와 간식은 나만 사준 것도 아니었다. 팀 전체에게 쏜다고 몇 번 사온 것을 굳이 거절하는 것도 이상한 상황이었다. 물론 그때는 이렇게까지 이상한 놈인 줄은 몰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남자애들에게는 웃어주지도 말라던 엄마의 말이 번뜩 생각난다. 엄마가 이래서 그런 말을 했었나 봐.
“너는 사회생활도 모르냐? 그리고 그 커피 나만 사줬어? 팀에 돌린 거잖아! 이제와서 무슨 헛소리야!”
“니가 나 안좋아했으면 그 커피 쏘지도 않았어!”
그러니까 자기 혼자 착각을 하고도 결국은 내 탓을 하고싶다는 말인 것 같다. 이정도면 말이 안통하겠다 싶어 자리를 뜨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야 그냥 꺼져 하고 다른 쪽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놈이 내 머리채를 홱 잡는다. 어깨까지 오던 머리카락이 그놈 손에 꽉 붙잡혔고 나는 도리없이 비명을 지르며 그놈 앞에 넘어졌다. 둘러싸고 구경하던 사람들이 함께 놀란 소리를 냈다. 이제 핸드폰을 들고 촬영하는 사람도 보였다.
“내가 문도 잡아주고, 너 병원에 있을때도 같이 있어주고, 사람들이 니 욕할 때도 편들어줬는데. 이제와서 뭐? 꺼지라고? 야, 내가 좋아한다고 했잖아!”
순식간에 격분한 김동현은 이제 머리를 붙잡은 내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다 뽑힐 것 같고 얼굴에 있는 뼈도 다 부러질 것만 같다. 나는 마구 비명을 질렀다. 곧 얼굴이 부어오르고 피가 나는 것이 느껴졌다. 터진 입의 상처와 흘러들어온 코피가 입안에서 섞여 비릿한 쇠 냄새가 진동한다. 안구가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에 남은 힘을 짜내서 겨우 눈을 떴다. 눈 앞에 보이는 검은색 정장 바지를 따라 살짝 고개를 들었더니 안경을 쓴 중년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아저씨 도와주…….”
“야. 내가 좋아한다고 했잖아! 어? 왜 남의 말을 무시해!”
내 미약한 구조요청은 채 끝을 맺지 못했다. 누구라도 들었다면 좋았을텐데 놀라울 정도로 커다란 김동현의 괴성과 망설임 없는 주먹질이 그 위에 덧입혀져 관심받을 뿐이었다. 이대로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비참하게 죽고 싶지는 않았는데. 내가 이렇게 맞아 죽을 정도로 잘못한 게 있었던가. 엄마 아빠가 보고싶다. 엄마, 내가 이대로 죽으면 꼭 내 복수를 해 줬으면 좋겠어.
찌르듯 날카롭던 고통이 조금 뭉툭해진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먹물이 쏟아진 것처럼 눈앞이 까맣게 물들었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몸은 어때?”
사건조사를 위해 다녀간 경찰 다음으로 내 병실을 찾아온 건 김대리였다. 나는 김대리의 얼굴을 확인하고 눈을 감았다. 할 수만 있었다면 창문쪽으로 홱 돌아눕고 싶었지만, 머리와 갈비뼈를 다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눈을 감는 것뿐이었다. 딱히 보고 싶은 얼굴은 아니었다. 밤새 내 곁을 지키고 있던 엄마는 저녁을 먹고 오겠다며 병실을 나섰다.
“미안해, 지현씨.”
사과를 받아주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입을 다물고 눈을 감았다. 다른 생각이라도 하면서 그를 애써 무시하려고 했는데 검은 시야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오히려 나와 김대리의 어색한 모습이다. 김대리는 나의 괜찮다는 말을 기대하기라도 했는지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조금 당황한 듯 어-하는 소리를 여러 번 냈다. 나가라고 할까 말까 망설이는데 김대리가 고백하듯 말했다.
“지현씨가 고백 거절한거, 동현씨가 말해줬어. 한쪽 말만 듣고 이상한 소리 해서 미안해. 정말로.”
어쩐지. 자세하지만 어딘가 이상하게 불쾌하다 했더니 이번에도 범인은 동일인이다. 이번에도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는 한숨을 한 번 뱉더니 시키지도 않은 회사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의외로 김대리가 전해준 회사 이야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내가 전국민이 다 아는 ‘전철역 거절녀’가 되었다는 사실 빼고는. 내가 폭행당하는, 아니 김동현이 나를 폭행하는 영상을 찍은 어떤 사람이 인터넷에 영상 전체를 공유하는 바람에 김동현이 저지른 범죄를 모르는 사람은 회사 안에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동안 담배친구라는 이유로 그놈을 감싸던 부장은 가벼운 징계를 받게 되었고, 그놈은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킨 죄목으로 해고당할 예정이었다. 부하직원 문제로 부장 징계까지 들어간 것은 대표 딸인 남이사의 입김이라고 했다.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별로 통쾌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놈이 나보다 더 심하게 얻어맞는다면 조금 속이 시원할지 모르겠다. 부장이 징계를 받고 그놈이 잘리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가 다시 그 회사에서 일을 하고 부장 얼굴을 볼 수 있을까? 하다못해 집 앞 지하철역에는 갈 수 있을까?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 의사의 모습만 봐도 몸이 경직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나는 괜찮다고 확신할 수 없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계속 생각다발 속으로 들어와 함께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처럼 복잡하게 얽힌다. 나는 김대리가 가보겠다며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갈때까지도 눈을 뜨지 않았다. 차라리 이대로 눈을 뜨지 않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아직 식사중일 엄마와 나 대신 담당형사를 찾아갔을 아빠의 얼굴을 떠올린다. 눈앞의 암흑을 조금 담은 한숨이 입술 사이를 빠져나간다. 그리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버텨내고 말겠다고.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