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

(2)

by 정서정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르던 스무 살.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대학생 잡지의 촬영을 하게 되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1학년이 표지모델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이상했던 건 내가 모델을 하고싶다고 신청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같은 동아리 남자 선배가 나 몰래 사진을 보내 신청했다고 했다. 내 전신 사진을 어떻게 구한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갑작스러운 연락이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나쁜 기회는 아니었기에 간단하게 미팅을 하고 스케줄을 잡아 촬영을 했다. 촬영까지는 재미있었다. 본격적인 잡지 사진을 찍는 스튜디오에 가는 것도, 포토그래퍼가 내 사진을 찍어주는 것도, 잡지 제작에 참여해보는 것도 처음이어서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해서 좋았다.


잡지가 발매될 무렵 포토그래퍼에게 전화가 왔다. 사진을 고르고 보정하고, 계속 내 얼굴을 보다보니 나를 보고싶다고 했다. 밥을 사줄 테니 나오라고, 잡지가 나오기 전에 한 번 만나자고 했다. 나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결국 나가고 말았다.


그날, 그는 나를 연예계에 데뷔시켜 줄 수 있다고 했다. 그 쪽으로는 발이 넓어서 나를 데뷔시켜줄 수 있는 사람도 많다고. 나는 별로 연예인이 되고싶지는 않았다. 얼굴이 알려지고 이런저런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이미 충분했다. 그렇다고 그런 제안이 기분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내가 예뻐서 일어났다는 게 기분 좋았다. 어떤 사람들 말마따나 여자가 예쁜 것은 권력이라는 그 말이 아무래도 맞는 모양이었다.


잡지가 발매된 후부터 나는 교내 유명인이 되었다. 같은 학부 사람들은 물론이고 타과, 타대생들에게까지 어마어마하게 메시지를 받았다. 매일같이 내 SNS를 찾아와 예쁘다는 댓글과 질투 섞인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수백 명씩 있었다.


그러다 매일같이 내게 연락했던 잘 생긴 복학생 오빠와 한 학기 정도를 사귀었다. 내 첫 번째 연애였고, 고등학교 때부터 꿈꾸던 캠퍼스 커플이었다. 사람들은 늘 선남선녀라고 입이 마르게 우리를 칭찬했다. 사람들의 그런 시선이 좋아 조금 우쭐했고, 이 남자가 내게만 충실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순진한 착각이었던 모양이었다. 우리 동네 버스정류장 앞에서 내 첫키스를 가져간 그 놈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 몰래 내 맥주잔에 알 수 없는 흰 가루를 뿌리다가 들키고 말았다.



“뭐하는 거야?”


“아… 아름아.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한참 머리를 굴리던 그 놈이 꺼낸 변명이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이걸 먹으면 뜨거운 밤을 보낼 수 있다며 친구가 준 약이라고 했다. 나는 헤어지자고 그를 뿌리쳤지만 그는 우리집 앞까지 쫓아와 제발 나를 용서해 달라며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나 없이는 못살겠다는 고함소리를 동네 사람들이 다 들을 때쯤 나는 그를 용서했다. 내가 이렇게 좋아서 죽겠다는데 이번은 실수로 봐주는 수밖에.


하지만 나는 그놈과 곧 헤어졌다. 같이 모텔에 가자더니 나 몰래 핸드폰을 세워두었기 때문이었다. 겨우 이것밖에 안 되는 놈과 계속 만날 필요는 없었다. 나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라는 친구의 말을 듣기로 했다. 그렇게 내 첫 연애는 끝이 났다. 첫 이별이었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그 놈이 나쁜 놈이었고 그 놈보다 더 좋은 남자를 찾으면 될 일이었다. 아직도 내게 연락하는 남자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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