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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기간은 가장 짧았지만 아직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이상한 놈이었다. 처음에는 멀쩡한 것 같았는데 사귀기로 하자마자 이해할 수 없는 짓을 하나 둘 저지르기 시작했다. 메신저에 10분 이상 답이 없으면 마구 알람이 울리도록 호출 기능을 사용하지를 않나, 이상한 사진을 보내고 낄낄거리지를 않나, 내가 그만 하라고 하면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 하냐며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꾸만 내 뒷모습, 특히 엉덩이와 다리 사진을 몰래 찍길래 그만하라고 했더니 겨우 이것도 못하느냐며 억울하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헤어져야겠다는 마음이 굳어진 것은 사귄지 겨우 한 달 즈음 됐을 때였다. 자꾸 모텔에 가자고 조르기 시작해 두어 번 쯤 거절했을 때. 평소에 하는 짓이 주로 내가 생각해본 적 없는 종류라서 둘이서만 모텔에 들어가기가 무섭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제 더는 만나면 안 될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때쯤 티비 뉴스에 단골로 나오던 불법촬영 범죄 기사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학교 앞에 생긴지 얼마 안 됐었던 주점을 얼큰하게 취한 채로 나오다가 모텔에 가자고 하는 그놈에게 싫다고 하자 그 놈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내 발밑에 침을 탁 뱉었다. 누가 내 앞에 침을 뱉는 것은 처음이어서 어안이 벙벙한 나는 말을 잊은 채로 그놈을 빤히 쳐다봤다. 그 놈은 누가 봐도 비열한 표정으로 빈정거렸다.
“야. 왜이렇게 비싸게 굴어. 너 처음도 아니잖아. 10만원만 주면 모텔 가겠다는 애들이 널렸어. 얼굴 좀 볼만해서 잘해주니까 아무래도 주제파악을 못하는 거 같은데.”
처음 들어보는 수준의 폭언이었다. 내가 똑바로 들은 것이 맞는지, 그리고 그 말이 내가 이해한 뜻이 맞는지 되묻고 싶어질 정도였다. 이 정도로 저열하고 끔찍한 말로 모욕을 당할 거라고는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나보다 겨우 한 살 많은 남자애였는데 어디서 이런 말을 배운 건지 궁금할 정도였다.
처음 몇 초 동안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그놈을 바라보고 있었을 거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이 든 것은, 말을 잃은 나를 보고 아차 하는 표정을 지은 그놈의 난감한 얼굴을 보고 나서였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을 뭐라도 해야만 했다. 가만히 있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빠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미쳤어? 아 아니다. 그냥 헤어지자. 이런 말 듣고 오빠 더 만나면 내가 미친년이지. 이제 나한테 연락하지 마.”
태어나서 가장 충격적인 말을 듣고도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내게 폭언을 내뱉은 그를 어떤 식으로든 벌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말만으로는 처벌할 수가 없었다.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도 보복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일 거다.
억울하고 답답한 기분이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그저 불쾌하니 연락하지 말라고 통보하고 돌아섰을 뿐이었다. 이런게 무력감일까. 얼큰하게 취해 조금 좋아졌던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이 끔찍해졌다.
수치심과 분노가 뒤섞여 몸속의 피가 차게 식는 것 같다가도 부글부글 끓고있는 마그마처럼 가슴 한가운데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용솟음치기를 반복했다.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에서도, 집에 도착해 잘 준비를 하면서도 그랬다.
속상함에 눈물이 터져나온 건 침대에 기대 친한 친구에게 전화해 방금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을 때였다. 그놈의 배설물 같은 말을 그대로 내 입으로 전달하자니 스스로가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어쩌다가 이런 놈과 사귀게 된 건지 재수도 없었다. 친구는 똥 밟았다고 생각하라며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덧붙인 말에 나는 우울하던 기분이 조금 괜찮아졌다.
“그래도 이제 다시는 그놈 안 만나도 되겠네.”
인생 최악의 폭언을 듣기는 했지만 동시에 미친 인간을 조기에 잘라낸 날이라고 생각하니 그리 최악은 아니었다. 어쩌면 비긴 셈인 것 같기도 했다. 친구는 자기 남자친구가 그런 놈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며 다음에는 좀 괜찮은 남자를 고르라고 했다. 다시는 이런 미친 소리를 하는 놈은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세상에는 이런 이상한 인간이 그리 드물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내 다짐만으로 그런 놈들을 모두 피할 수는 없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