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

(6)

by 정서정





“어우. 아름씨 오늘 어디 가? 원래도 예뻤지만 오늘은 더 예쁘게 하고 왔네? 아주 눈이 부셔.”


“그런가요?”



나는 더러운 기분을 숨기려고 어설프게 웃으며 대답했다. 요즘들어 나만보면 칭찬을 늘어놓는 과장의 아첨 가득한 얼굴이 기분나쁘다. 누군가 내 외모를 칭찬하는 일은 아주 익숙했고 보통은 거기에 기분 좋게 화답하는 편이었다. 나 정도면 예쁜 얼굴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런 칭찬들을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같은 칭찬이 가끔씩 기분이 나쁠 때가 있었다. 얼굴이 예쁘니 공부를 안 해도 되겠다거나 예쁘니 출세가 빠를 거라거나 돈 많은 남편 만나서 팔자 펴겠다는 말이 덧붙을 때 그랬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관심 없고 별로인 남자가 괜히 번지르르하게 칭찬하면서 내 마음을 떠보려고 할 때.


이건 좀 더 정확하게는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 문제였다. 이런 짓을 하는 놈들은 대체로 내세울 거 하나 없는 함량미달이 보통이었다. 그러니 겨우 너 까짓게 하는 마음이 드는 게 당연했다. 이상한 놈을 고른 적은 있었지만 내가 싫은 남자를 억지로 사귄 적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는 엄청난 매력이 있어도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심지어 그런 매력도 없는 것들이 자꾸만 떠보려고 하는 게 자존심 상하고 성가셨다.


과장은 지난 달부터 유난히 나를 귀찮게 했다. 내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보기만 하면 나를 불러세우고 아첨 가득한 칭찬을 마구 퍼부었다. 처음에는 왜 이러나 싶었는데 얼마 안 가 나도 직원들도 과장의 검은 속내를 금방 알아차렸다. 와인 동호회에서 만났다고 자랑하던 몸매 좋은 여자와 잘 풀리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사원으로 입사한지 몇달만에 결혼했다가 2년 전에 과장으로 승진을 하자마자 이혼했다는 30대 후반의 과장은 이제 열 살이 된 아들도 있었다. 이혼을 하자마자 아이는 부인에게 보냈다고 회식자리에서 떠들썩하게 자유선언을 했다던 그는 늘 미혼인척 행동했다. 내가 입사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같은 팀 정대리에게 과장이 왜 결혼하지 않았는지 묻자 그는 오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아, 과장님? 작년에 이혼하셨어. 아들이 초등학생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커피를 한 잔씩 들고있던 직원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과장이 다른 팀 여자 대리님에게 고백했다가 차였다는 소문은 온 회사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익숙하다는 듯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김대리가 고생이 많았지. 사회생활 한다고 친절하게 대했다가 그게 무슨 봉변이래?”


“그러게 말이에요. 김대리님이 애딸린 이혼남을 왜 좋아해요? 착각이 어마어마하네요.”



과장의 황당한 스캔들에도 나는 그저 커피만 호로록 마시며 고개만 끄덕거렸다. 나와는 별로 관계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그 소동이 난 지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내게 그런 일이 벌어질 줄도 모르고.



“언니, 왜 그래?”



구내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던 지영이가 나를 건너다보며 물었다. 수요일이라 특식이 나왔는데도 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는 내가 신경이 쓰였나보다.



“부서이동 하고싶다.”


“왜?”



과장의 소름끼치는 느끼한 대사를 떠올리니 나도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나는 지영이에게 과장 이야기를 꺼냈다. 벌써 한 달째 이어지는 과장의 추파와 1년 전 있었던 사내 스캔들까지.



“최악이다. 어떡해. 신고할 데도 없고.”


“내 말이. 심지어 나 남자친구 있는 것도 알아. 회식때 말했거든.”


“아는데도 그런다는 말이야?”


“응.”



지영이에게 과장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어쩐지 기분이 더 가라앉았다. 입사한지 겨우 2년차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1년 6개월이 막 지난 참이었다. 그 짧은 기간에 과장의 추파에 시달리고 부장의 선물공세에 스트레스를 받는 회사생활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무슨 일만 있으면 비서실 일에 불려가는 것도 불만스러운 참이었다.


그렇다고 퇴사를 생각하는 것은 망설여졌다. 회사를 들어올 때까지 겪었던 대학생활과 취업준비생 시절을 떠올리면 쉽게 퇴사를 마음먹을 수는 없었다. 이런 생각들 사이로는 불쑥 내 잘못이 무엇인가 하는 억울함이 고개를 내민다. 나는 가만히 내 일을 열심히 하고있었을 뿐이었다. 잘못은 싫다는 사람에게 추근대고 선물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있는 게 분명했다. 이대로 퇴사를 생각하기에는 억울했다.


그러다 문득 도망치듯 헤어져버린 남자친구 생각이 난다. 그의 차에서 도망친 이후로 그에게 몇 번 연락이 왔지만 나는 철저하게 무시했다. 전화 거절은 물론 그가 보낸 메신저 내용도 읽지 않고 방을 빠져나갔다. 내게 가격을 매기고 있는 사람과 연락을 하는 게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러자 그는 곧 시들해졌는지 연락이 뜸해졌고 이번주 들어서는 연락이 전혀 없었다. 뒤늦게 나이 많은 남자를 왜 만나냐고, 어린 여자 좋아하는 남자 별로라고 핀잔주었던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진작 걔 말을 들을걸 그랬다.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 혹시라도 내가 남자친구와 헤어진 것을 과장이 알게 된다면?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남자친구와 헤어진 것을 모두에게 숨겨야겠다고 결심했다. 특히 회사에서는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나는 과장이 눈빛부터 별로였다는 지영이의 말을 흘려들으며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두어 번 문질렀다. 도대체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걸까. 아니, 해결할 수는 있는 걸까. 답이 없는 문제가 내 목을 조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괜히 목덜미 근처를 매만졌다. 곧게 뻗은 목은 조이는 데 없이 매끈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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