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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에 가해지는 충격과 얼굴에서 느껴지는 둔탁한 아픔이 비현실적이지만 생생하다. 눈썹 뼈가 부러지고 주저앉는 감각이 소름끼친다. 갈라진 피부로, 눈과 코로 흐르는 붉은 핏줄기가 떠오르듯 시야를 점령한다. 내 시선이 닿는 곳마다 시뻘건 잔상이 따라붙어 온통 피바다인 것만 같다. 눈을 몇 번 감았다 뜨면 곧 뜨거운 화염이 뱀처럼 몸 이곳저곳을 스쳐간다. 얻어맞는듯 둔탁했던 고통이 날카롭게 변해 불이 스친 피부 전체로 퍼진다. 고통을 참을 수 없어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이대로 사라지는 걸까. 끝없는 고통 속으로 침잠하다가 무기력과 패배감에 잠겨 무감각에 이른다. 마침내 오롯이 남는 것은 결국 ‘나’다. 나는 정말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걸까. 이렇게 무력감에 휩싸여 끝나는 걸까.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 해야하는 일이 있다. 나는 살아남아야만 한다.
몽롱한 느낌에 취해 눈을 뜨고 나서 가장 먼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내 옆에서 울상을 짓고 있는 엄마에게 웃어보이려고 했을 때였다. 얼굴에서 부자연스러운 압박감이 느껴졌다. 영문을 알수가 없다.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축축 쳐지는 손을 들어 얼굴에 대니 까슬까슬한 붕대의 감촉이 손끝에 와닿는다. 얼굴을 다친 건가. 나는 당황스러워 엄마쪽을 쳐다보았다.
“사고때문에… 얼굴을, 얼굴을 좀 다쳤어.”
자꾸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엄마때문에 나는 덜컥 겁이 났다. 크게 잘못된 건가. 심장인지 간인지 모를 몸속 무언가가 툭 떨어져내린다. 떨어진 곳이 녹아내리기라도 하는지 말할 수 없이 간지럽고 쓰리다. 가슴이 답답하다. 숨을 조금 크게 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놀란 엄마가 간호사를 부르는 소리가 멀게 들린다. 처음 보는 간호사의 마른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더니 곧 졸음이 무겁게 쏟아진다.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사고의 기억은 무참히 잘려나간 영화필름처럼 단편적으로만 남았다. 새하얗게 눈앞을 가리던 반대차선의 헤드라이트와 급격히 쏠리던 몸, 그리고 고통, 고통, 고통. 코를 찌르는 병원의 약냄새와 몸서리쳐지는 한밤중의 통증은 오직 독한 진통제로만 달랠 수 있었다.
조각난 기억을 얼기설기 기워준 것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회사 직원들 중 유일하게 병문안을 왔던 지영이었다. 사내 게시판과 메신저를 휩쓸고 있는 과장의 이야기는 예상보다 더 끔찍했다. 내게 사고의 경위를 이것저것 묻고 갔던 형사의 건조한 질문들보다 훨씬 지저분하고 자극적이었다.
사내 게시판과 자체 조사를 통해 그간 있었던 과장의 문제행동들이 속속들이 수면위로 드러났다고 했다. 드러난 것보다 피해자는 다양했다. 과장의 성희롱에 고통받던 옆팀 대리와 자꾸 사적인 만남을 강요당했던 계약직 직원을 바롯해 최소로만 꼽아도 한 손으로는 부족했다. 나처럼 드러나있던 피해자 말고도 우후죽순 나타나는 피해직원들에 경악한 회사는 그를 바로 해고했다. 과장은 그러고 나서도 정신을 못 차린 건지 억울하다며 이사람 저사람 괴롭히고 있는 모양이었다. 노동부에 고발하겠다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고 했다. 도주의 위험이 없다고 판단한 건지 경찰이 그를 구속시키지 않은 게 안타까울 지경이다.
“과장이 언니가 먼저 꼬셨다고 헛소리 했다더라.”
과장의 망언이 놀랍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불쾌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끝까지 내 탓을 하는구나. 시내를 내달리는 차 안에서 과장은 내가 자신에게 먼저 꼬리쳤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내가 먼저 웃었다고 했던가. 지나치게 황당한 비약이 아닐 수 없다.
어딜 가나 조용히 있고 싶어도 사람들은 자꾸 내게 다가왔다. 기분이 나쁠 때라고 가만두는 법이 없었다. 불쾌하거나 짜증이 나 조금이라도 무표정으로 있으려고만 하면 사람들은 예쁜 애가 성질은 나쁜 모양이라며, 스스로 예쁜 줄 알고 콧대가 높아 저러는 거라고 이러쿵저러쿵 말을 지어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웃어야만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예쁜 애가 성격도 좋다며 늘 칭찬 일색이었다. 그러니까 미소는 내게 생존 전략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전략은 단 한 번도 나를 배신한 적이 없었다. 적어도 직장인이 되기 전까지는.
남자 직원들은 자꾸 자신을 좋아하느냐고 물었고 아니라고 해명하는 것도 지겨워질 정도였다. 웃지 않으려고 해도 평생 의식적으로, 그러다가 언젠가부터는 무의식적으로 지어왔던 웃는표정은 자꾸만 튀어나왔다. 미소를 지워내는 것은 녹록지 않았다. 당황스럽거나 불쾌할 때에도 자꾸만 어색한 웃음부터 튀어나왔다. 내 의지와는 관계 없는 일이었다.
겨우 웃었다는 이유로 꼬리쳤다고 욕을 먹고, 싫다는데도 끌려가 이렇게 큰 사고까지 겪어야 한다니. 억울하다. 물이 코끝까지 차올라 곧 숨이 막히고 끊어질 것처럼 답답하다. 내가 어떻게 했어야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까. 지영이가 돌아가고 나서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정말로 내가 뭘 어떻게 했어야 했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어쩌면 애초부터 답이 없는 문제였던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