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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은 그리 어색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전혀 달랐다. 동경과 부러움, 질시어린 눈빛이 불쾌함과 혐오감이 담긴 눈빛으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반 년이면 충분했다.
교통사고 이후 반 년이 지나는 동안 달라진 것은 많았다. 골절의 여파인지 온몸 곳곳이 쑤시고 부러질듯 아픈 것은 이제 자주 있는 일이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어디 하나라도 끊어질 것처럼 더 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가장 큰 변화가 있는 것은 단연 얼굴이었다.
눈썹 뼈가 부러지고 코뼈가 주저앉았고 폭발때문에 얼굴 전체에 화상을 입었다. 의사는 뼈가 조금만 더 심하게 어긋났다면 시력을 잃었다거나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피부이식을 해야 할 정도로 화상이 심하지 않았던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엄마는 다행이라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도 붕대를 푼 내 얼굴을 보고는 내가 죽은것처럼 목놓아 울었다. 우는 엄마를 가만히 보고있다가 문득 짜증이 솟았다. 왜 저렇게까지 우는 거지? 나는 이렇게 살아있는데. 중요한 건 살아있는 게 아닌가?
겨우 재건한 얼굴의 붕대를 풀고 내 얼굴을 다시 보았을 때 나는 엄마처럼 울고싶은 기분이었다. 눈코입 어느 하나 멀쩡한 게 없다. 눈썹과 속눈썹은 불타 사라졌고 화상으로 손상된 피부에 다시는 눈썹이 자라지 않을 게 자명했다. 억지로 세워올린 콧대는 혼자만 오똑해 이질적이었고 도톰하던 입술의 경계는 일그러진 화상자국으로 뭉그러져 자취를 감췄다. 뽀얀 달걀같다는 찬사를 받던 얼굴 곳곳에는 이제 울퉁불퉁한 불규칙적 무늬가 뒤덮여 다시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했다. 폭발에서 용케 벗어난 왼쪽 귀만이 덩그러니 남아 이전의 기억을 가늘게 붙들고 있었다.
남의 불행을 달갑게 여기는 것은 태초부터 있었던 인간의 본능인걸까. 나를 향한 값싼 동정 사이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비웃음과 승리감, 묘한 만족감이 온전히 내게 닿았다. 나는 이제껏 겪어본 적 없는 멸시감으로 온 몸이 저릴 정도였다. 시혜하는 눈빛이란 무른 구석 없이 구석구석 잔인했다. 친구들과 엄마의 지인들로 시작한 가짜 동정은 몇 달 만에 들른 회사에서 절정을 맞았다.
연차에 휴가와 병가까지 모두 끌어다 써도 한달을 채 버티지 못했다. 무급휴가로라도 버텨보려고 했지만 회사는 나 같은 말단을 붙잡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사직처리가 되고도 병원신세를 지느라 한참동안이나 내 물건들을 찾아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반년이나 지난 다음에야 전화가 왔다. 진작 버렸을 거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마지막 인정이라도 베풀듯 내 물건을 보관하고 있으니 찾아가라며 전화를 걸었다. 회사 대표로 전화를 건 사람은 내가 알지 못하는 우리팀 막내였다. 낯선 목소리로 그가 내게 말했다.
“다음주 중에 오실 수 있으세요?”
모두 버리라고 할까 고민하다가 선물받아 아끼던 텀블러와 이제는 구할 수 없는 한정판 MD 따위를 떠올린다. 영역 표시를 하듯 조금씩 내 자리를 채웠던 손때 묻은 내 취향의 물건들을 마저 떠올리다가 결국 다음주 중에 가기로 했다. 아직은 외출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지만 이 일을 핑계삼아 외출을 감행해보자는 심산이었다.
후회하기 시작한 것은 집을 나서면서부터였다. 전에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숨막히는 압박감이 순식간에 심장으로 치고들어왔다. 심장이 세게 뛰는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확대된 것처럼 양쪽 귀가 쟁쟁하다. 멀쩡한 귀도 우그러진 귀도 다른 소리는 담을 수 없게 된 것만 같다.
심장소리가 줄어들 때까지 땅에 박힌 듯 움직이지 못하던 나는 소리가 잦아들자 겨우 시계를 확인한다. 곧 호출한 택시가 도착할 시간이다.
택시를 부른 큰길가로 나가면서 나는 자꾸 어깨를 구부린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나를 송곳처럼 꿰뚫는 것 기분이었다. 짙은 남색의 벙거지 모자와 시커먼 마스크로 얼굴을 다 가려놓고도 그랬다. 그 안에 감춰진 내 뭉그러진 얼굴이 불편함으로 씰룩거렸다.
큰길가에서 비상깜빡이를 켜고 나를 기다리는 택시에 올라타면서 회사에 들르기로 했던 내 결정을 후회했다. 처음 보는, 그리고 아마도 다시는 볼 일이 없을 택시 기사님이 룸미러로 내 얼굴쪽을 보며 인사했을 때 등줄기를 따라 소름과 함께 식은땀이 쭉 돋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직 타인을 만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사라지다시피 흩어져버린 내 입술을 떠올리며 평소보다 발음에 신경써서 택시 기사님에게 인사했다. 기사님은 한 번 더 거울로 나를 흘끗 쳐다보았고 나는 곧장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나에게 그 어떤 관심도 두지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