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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어릴적 나를 좋아해서 괴롭혔다는 남자애의 끈질긴 괴롭힘이나 학교앞에 나타나 나만 보면 앞섶을 활짝 열어젖히던 바바리맨의 끔찍한 기억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지저분하게 헤어진 남자친구와 그 친구들에게서 하루가 멀다하고 그놈을 차버린 나를 저주하는 욕설 섞인 메시지를 테러 수준으로 받았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방식으로 실존을 위협당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멈춰요! 위험하니까 속도 줄이라고!”
두근두근.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귀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귀에 둥둥 울리는 심장소리 때문인지 주변의 소리가 어딘가 희미하다. 가속페달을 급하게 밟아 길게 울리던 엔진소리와 창밖에서 날카롭게 들려오던 클락션, 그리고 시뻘개진 얼굴로 분해 마지않는 과장의 씩씩대는 숨소리까지 모두 비 맞은 수성잉크처럼 흐릿하게 뭉개졌다.
분명히 과장을 만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다고 해서 생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겨우 2년차 새내기 사원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렵게 써내려간 거절 메시지를 확인한 과장은 결국 내 자리로 나를 찾아왔다. 퇴근을 앞둔 6시 5분 전이었다.
“아름씨.”
과장이 퇴근준비를 마쳤는지 가방까지 들고 내 책상 옆에 와 섰다. 사무실 사람들의 이목이 순식간에 이쪽으로 쏠렸다. 과장은 사람좋은 척 웃는 얼굴 일색이던 평소와는 달리 썩 기분이 나쁜 얼굴이었다. 내가 어쩔 줄 몰라 머뭇거리자 그는 마치 협박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여기서 얘기할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과장이 내 앞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회사 내 입방아 일순위가 될 것이 분명했다. 더이상 가십거리를 던져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내려와.”
과장은 자기 뜻대로 된 것이 기분 좋은지 웃는 낯으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나와 과장에게 집중되었던 시선이 오롯이 내 얼굴로 꽂힌다. 호기심과 경멸 어린 눈빛들이 나를 샅샅이 훑고 지나간다. 어쩐지 울음이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으로 컴퓨터 전원을 껐다. 가방을 들고 사무실을 나서며 내 뒷모습에 쏟아질 핀잔과 악담들을 생각했다.
할 말이 있다던 과장은 막무가내로 내 앞에 차를 세웠다. 드라이브나 하면서 이야기를 하자는 구실이었다. 과장은 그 차에 타기 싫어 망설이는 나를 어르고 달랬다. 결국 잠시 근처 카페에 가기로 했다. 그 때 과장의 차를 타지 말았어야 했다.
목적지였던 카페를 지나치는 과장에게 화가 난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느냐고, 내려달라고 소리쳤다. 과장은 갈 데가 있다며 아직도 사람좋은 척 허허 웃었다. 지금 이 상황이 웃긴가? 나는 전혀 웃을 수 없었다. 내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손대면 부스스 무너지는 모래더미 같았다.
나는 뒤이어 몰려오는 공포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쩌자고 이 사람을 믿고 차에 올라탔을까. 직장인이 되면서는 세상을 아는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순진하기 짝이 없는 어린애 모양이었다. 졸아드는 가슴을 잡아보려 그 위에 손을 가져다댔다. 평소보다 큰 심장의 박동이 손바닥에도 느껴지는 것만 같다. 그러니까 이거 일종의 납치 아닌가?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하지?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나는 그 어떤 질문에도 답할 수 없었다.
“걱정 하지 마.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줄게. 그러니까…….”
“내, 내려주세요.”
공수표를 남발하는 과장의 말을 잘라낸 것은 겁에 질려 더듬거리는 맥없는 목소리였다.
“아름씨.”
“안 내려주면 겨, 경찰에 신고할 거에요.”
나를 회유하려는 과장의 시도를 차단한 내가 벌벌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어보였다. 순식간에 얼굴이 콱 구겨진 과장이 한손을 뻗어 내 핸드폰을 낚아채려 했다. 나는 뺏기지 않으려고 애쓰며 핸드폰을 든 손을 어떻게든 그에게서 먼 쪽으로 뻗었다. 과장의 얼굴이 다른 모양으로 일그러지며 위협적인 목소리로 협박했다.
“신고? 신고 해 봐, 어디. 할 수 있나 보자.”
갑자기 엔진소리가 요란하게 났고 타고 있던 차가 위험할 정도로 속도를 올렸다. 앞차를 박을 것만 같다. 나는 다시금 공포에 질려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인지하기 어려웠다.
“미쳤어요? 빨리 멈춰요. 이거 범죄에요.”
“그래. 그러니까 어디 신고해 보라고. 신고한다며.”
내가 당황해서 큰소리로 말하자 과장도 흥분한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쳤다. 울고 싶었다. 내게 왜 이런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건지, 너무 억울했다.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세요?”
“네가 먼저 꼬리쳤잖아!”
얼토당토 않은 과장의 말에 나는 황당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적 없다고 반박해야 하는데 허를 찔린 탓인지 말이 입안에서만 뱅뱅 돌았다.
“네가 먼저 웃으면서 말걸고 칭찬하고 친근한척 꼬리쳐놓고 이제와서 뭐가 어째? 신고?”
시뻘건 얼굴로 마구 화를 내는 과장을 멍하니 쳐다보던 나는 다시 한 번 차안을 울리는 엔진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멈춰요! 위험하니까 속도 줄이라고!”
내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과장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제 차는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은 속도로 차선을 넘나들었다. 나는 이리저리 쏠리는 몸을 가누려고 노력했다. 과장은 씩씩대고 있었고 계속 가속페달을 밟는 건지 엔진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야! 이 미친놈아!”
내가 무어라 소리를 더 지르려고 했을 때, 갑자기 눈앞이 새하얗게 밝아지는 것 같더니 온 몸에 상상할 수 없는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꼭 몸이 반으로 쪼개지는 것 같은 비현실적인 고통이었다. 심각한 충격에 나는 악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저 내팽개쳐질 뿐이었다.
얼굴에서 빗물이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며 눈을 떴을 때, 깨진 운전석 창문 너머로 다리를 절뚝이며 멀어지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를 부르거나 잡을 수 없었다. 펑 하는 폭발음과 함께 이번에는 온 몸이 데는 듯한 열기를 느끼며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