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기묘한 이야기 1
2011년 여름, 군대에 입대했다. 아, 군대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니까 긴장이나 기대하지 않으셔도 된다.
입대 전까지는, 대학교에서 주로 네이트온이라는 메신저와 핸드폰 문자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곤 했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이맘때쯤 아이폰 그리고 카카오톡이라는 신규 메신저가 급부상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유행은 당연히 내 친구들 사이에서도 모두 퍼졌다. 내가 사회와 단절된 채 열심히 이등병 생활을 하고 있는 사이, 카카오톡이 어느새 네이트온을 발로 차 버려버린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에 나는 스마트폰이 뭔지도 몰랐고, 전역하면 뭐 새로 폰 하나 사면 되겠지 하고 막연히만 생각했다.
첫 휴가 날이 되었다. 오랜만에 나와 사회의 향기를 맡고 눈치 보지 않고 오랜만에 컴퓨터 그리고 네이트온을 켜보았다. 시험기간이 아님에도 친구가 몇 명 들어와 있지 않았고, 친한 애들은 특히 한 명도 접속해있지 않았다. 뭔가 이상해 아직 입대를 하지 않은 친구에게 물어보니, '너 아직도 네이트온 하냐'는 충격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그럼 뭘 해야 하냐는 나의 질문에, 친구는 '스마트폰으로 카카오톡 해'라고 답변했다. 이렇게 전문적인 두 가지 단어를 가볍게 말하다니, 이 놈은 공대에 갔어야 맞았을 것 같다. 착잡하게 전화를 끊으며, 나도 스마트폰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다시 정신을 차리니, 복귀날이 되어 다시 부대에 복귀하고 있었다. 젠장, 다시 생각해도 그때는 젠장이다.
시간은 어느새 또다시 흘러 일병 정기휴가를 앞두고 있었다. 당시에는 9박 10일의 시간이 주어지는 장기간의 휴가. 준비가 필요했다. 중고 스마트폰을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휴가 첫날부터 열심히 매물을 찾았고, 옵티머스라는 LG의 스마트폰을 저렴하게 팔고 계신 분을 발견했다. 다행히 과정은 일사천리. 그 날 바로 거래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장소는 인천 1호선 끝쪽의 한 역 그리고 시간은 10시 30분, 장소와 시간대가 좀 이상했지만 뭐, 거래 빨리하는 게 더 좋은 거지라고 생각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이름도 생소한 그 역에 10분 일찍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든 생각은... '여기가 할렘인가?'
모든 가로등 조명은 다 어두컴컴했고, 몇 없는 사람들의 표정은 냉정했다. 유일하게 밝았던 지하철역 입구에서 약속 장소인 역 우측 간 이공원 벤치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왠지 모르게 초록색 풀들도 검게 시든 것 같았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나를 흘끗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살짝 괜히 왔나 생각이 들 때쯤, 판매자분의 전화가 왔다. 나랑 비슷한 또래의 남자겠거니 막연히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는데, 중년의 강압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동석 배우의 목소리를 생각하면 꽤나 비슷할 것 같다. 다행히 곧 도착한다는 말 외에, 별 내용은 없었다. 그리고 곧이어, '내가 잘못한 건 없지만 괜히 조심해야 할 것 같은' 인상을 갖고 계신 중년의 남성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이 감정은 뭐지? 아 생각났다. 어렸을 때 동대문에서 형들한테 돈을 뺏기기 전. 안전한 강탈을 당하기 위해 구석진 곳으로 같이 가면서 느꼈던 그때 그 기분! 좋은 추억이 오랜만에 떠올랐다. 나도 이제 성인이니 '마냥 당하고 있지만 말고 경찰을 불러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쯤. 그분께서 먼저 인사하시며 갑자기 지갑을 열어 보이셨다. 다행히 굳이 경찰을 부를 필요는 없어졌다. 이 분이 경찰이었으니까. 설명을 들어보니 이해가 갔다. 본인 인상이 이래서 우선 보여주는 거라고 하셨고, 핸드폰은 본인의 외국인 아내가 사용하던 건데, 더 좋은 걸로 바꿔주려고 판매하는 것이라 하셨다. 깡패는 무슨, 알고 보니 사랑꾼 형사님이었다.
무사히 거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다시 한번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하지만 그 날, 내가 친구에게 보낸 첫 번째 카톡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야 나, 진짜 죽을뻔했다.'
젊었을 때 얻은 교훈은, 때때로 금방 잊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