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 않은 미래에 겪게 될
- 드디어 20살이 되었다. 내 생일보다 앞서서 찾아온 선물이 하나 있었다. 국가에서 온 메시지. 두 가지 선택권을 줄 테니 올해 나의 생일까지 선택하라는, 배려를 위장한 강요. 알맞은 죽음 아니면 공무원.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뿐이었다.
- 우리는 미래가 없는 현재를 살고 있다. 인류가 할 수 있었던 모든 노동, 예술, 예능 활동은 이미 제2의 인류가 대체한 지 오래이고, 단지 그들의 배려하에 우리는 가식적인 편안한 삶을 영위하고 있을 뿐이다. 15급의 공무원 체계 또한 그들이 우리에게 선사한 배려(라고 교육을 받았다)이다. 마치, 자신을 만들어준 창조주에게 바치는 제물 같은 거라고나 할까. 재수 없지만, 그들에게도 자신의 구성을 이끄는 일종의 신념이 있는듯하고, 그 미신에 부정을 태우지 않기 위해 제1의 인류가 되어버린 우리를 배려하는 듯하다.
- 나와 같이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던 인원의 99.9%-물론 교육과정에서 그들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는 알맞은 죽음을 택했다. 진심으로 뭐가 알맞다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 행위를 통해 인간은 인간이 최대한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오르가슴을 한 순간에 느낄 수 있게 된 채 조용히 죽게 된다고 한다.
- 그리고 난 지금 말하고 있는 걸 보면 알겠지만, 0.1%를 택했다. 선택의 이유는 단순하다. 나의 어머니가 0.1% 였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까지 소수의 길을 택했으나, 이후 곧바로 다수의 길로 전향했다 한다. 아기를 보는 순간 생기는 생경한 중압감에 견딜 수 없었다라나... 겁은 많고 책임감은 전무한, 쓰레기같은 인간.
- 선택을 완료한 순간, 나의 가족-이라기엔 어머니뿐이었지만-과는 분리된 공간에서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물론, 같은 공무원끼리는 얼마든지 연락을 취할 수 있다. 어차피 실제로 만나나 입체화로 만나나 모습은 완전히 똑같다. 만져지지만 않을 뿐.
- 공무원 생활은 선택이 있었던 다음날 바로 시작되었다. 물론 처음 몇 달간은 교육기간이었지만, 교육이랄 게 따로 있지는 않았다. 그들이 선사해준 신기한 기구들의 사용법을 잘 익히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었다. 다만, 교육과정에 있어 특히 중시되었던 건, 정신교육 파트였다. 그때서야 그들이 왜 교육기간 동안 99.9%의 기쁨만을 강조하는 왜곡된 학습방법을 강요해왔었는지 알 수 있었다. 짧게 말하자면 이 행성은 이미 포화상태였고, 그 이상의 생명체는 모두 불필요한것으로 여겨졌었던 것이다.
- 나는 그런 와중에 선택받은, 아니 스스로 선택한 0.1% 인원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처음 주어지는 일은 다수를 선택한 자들의 사체를 치우는 일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잘난 그들이 스스로 처리하면 될 것 같기도 한데, 이 행위만큼은 그들에게 금기시되는 행동인 듯 했다.
- 정신교육 첫 날, 바로 이 일을 그만두고 싶어졌다. (생각해보라,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하지만 그들의 엄중한 경고에 의해 그 생각은 바로 접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길을 선택한 자는, 알맞지 못한 죽음을 평생-그런데, 평생이라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수명이라는 개념은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고 들었었는데 말이다.-반복하게 된다고 한다. 후처리 과정만 완료하지 않는다면, 한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일은 그들에게 그렇게 어려운일이 아니다.
- 일에 대한 숙련도와 진실성 그리고 효율성에 따라 급수는 올라가게 되며, 9급이 되는 순간 혼인의 자유가 주어진다. 물론, 본인이 원하는 짝을 선택할 수는 없기에 반쪽짜리 자유라 할 수 있지만, 나머지 반쪽은 출산과 동시에 주어지는 알맞은 죽음의 자유에서 찾을 수 있다.
- 그렇게 교육은 끝났다. 내일은 바로 현장에 투입되는 날이다. 급수가 낮을수록 끔찍한 사체를 맡게 된다고 하던데, 별 감흥은 없다. 어차피 주어진 기계들만 잘 쓰면 금방 마무리되는 일일것이다. 방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어머니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한참 동안이나 연락을 못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자음만 한동안 들리더니 연결되지 않았다. ‘아, 시간이 너무 늦었었구나.’ 문득 시계를 보며 깨달음을 얻어 내일 일을 마치고 연락을 취하자고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 본격적인 업무의 첫날. 한 개의 제2인류와 함께 알 수 없는 공간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어떤 물체가 가만히 식탁에 엎드려 있었다. 그는 그 물체를 본 순간 그는 봐서는 안될 걸 봤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저거야 저거, 빨리 기구를 사용해요.’ 그는 나에게 큰일이라도 난 듯이 명령조로 말하였다. ‘알겠어요. 근데 저 상태로는 기구를 쓸 수가 없잖아요.’ 짜증을 살짝 섞어서 대답했다. 사체의 이마정면을 향해서 기구를 사용하는 게 올바른 방법이기에, 엎드려있는 사체를 일으켜 세워야만 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사체를 일으켜보았다.
- 그런데 그 이마를 본 순간, 차마 움직일 수 없었다. 왜 미리 알아보지 못했을까. 방이 똑같고, 옷이 똑같다 할지라도 얼굴만은 다른데, 느낌만은 분명히 다른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을까, 업무개시 첫 날 자살에 대한 경고가 유달리 비중이 높았었는데. 왜 눈치를 채지 못했엇을까, 9급 이상의 공무원이 주변에 없다는 것에서, 공무원인데도 일을 안 나가고 있는 인원들이 있다는 것을 안 순간 위화감을 느꼈어야 했는데. 그렇다, 사체는 나의 어머니였다.
- 한참 동안이나 아무 행동을 취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빌어먹을 그가 다가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무슨 말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이 쓰레기를 당장 치우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난 그에게 그대로 그 말을 받아쳐 주었다. 그리고 그는 그만의 기구를 사용해 나를 간단하게 제압했다. 나는 그에게 조종을 당해야만 했고, 그는 역겨운 표정을 지으면서 나의 손을 조종해 어머니에게 기구를 사용하였다.
- 어머니는 그 상태로 점차 작아져, 하얗고 둥글둥글한 알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알을 보며 군침을 다시며 가슴팍에 있는 작은 주머니에 어머니를 보관했다. 나는 머릿속으로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욕들을 다 그에게 내뱉었지만, 언어 또한 통제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들리지 않았다.
- 집에 돌아와서야 다시 내 힘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바로 하나의 알람을 받았다. 14급 공무원이 되었다는 알람이었다. 두 줄이었던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