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지키며 배운 다정함과 단호함 사이

6년 차 카페 사장이 배운 온도 조절법

by 묘한 날들

나는 어쩌다 카페 사장이 된 걸까?

그리고 이렇게 오래 이 일을 하고 있는 건 또 왜일까?

앞으로도 계속 이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걸까?

이런 의문이 문득문득 스쳐갈 때가 있다.

사실 처음부터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단지 좋아하는 공간을, 좋아하는 방식으로 꾸며보고 싶었고,

그 안에서 나만의 리듬으로 하루를 살아내고 싶었다.

그 마음 하나로 시작한 일이 어느덧 6년을 넘겼다.

물론, 카페라는 공간에 내 정성을 쏟고 그 공간을 즐겨주는 손님들을 떠올리면

그깟 피로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오히려 뿌듯함으로 바뀌곤 한다.


쉴 새 없이 생겨나는 신상 카페들 사이에서 6년이라는 시간을 버텨낸 내 카페도 참 대견하다.

(초등학교 졸업할 정도의 나이 아닌가!)

학교 다닐 때 개근상 한 번 못 받아본, 조금은 불성실했던 내가 정기 휴무일을 제외하곤

매일 꼬박꼬박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는 점도 솔직히 좀 기특하다.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긴다는 게 조금은 민망하지만, 이 모든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내 카페에 대해 조금 설명하자면 관광지 한편, 정원이 있는 조용한 카페다.

그 말은 곧 동네 단골보다는 타지에서 온 여행객과 처음 오는 손님들의 비율이 높다는 뜻이고

사계절 내내 정원일로 분주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겨울엔 눈을 쓸고,

봄이면 꽃을 가꾸고,

여름에는 잡초와 사투를 벌이고,

가을엔 다시 정원을 정돈한다.

커피 한 잔이 손에 들어오기까지 그 안엔 참 많은 손길이 스며 있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조금 외진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찾아주는 단골손님들이 제법 있다는 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분들은 어떻게 나에게, 이 공간에 사로잡힌 걸까?


놀랍게도 대부분은 오픈 초기에 맺어진 인연들이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분명 온도차가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훨씬 단단하고 유연하지만,

예전의 나는 지금보다 섬세하고 다정했을 것이다.

그래도 변함없이 아침 일찍 나와 빵을 굽고 원두를 채워 넣고 샷을 내리는 나는 똑같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좋아하는 컵에 커피를 담아, 좋아하는 꽃을 테이블에 얹는 순간들.

그 작은 루틴들이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 줬는지도 모른다.


매 시즌마다 카페 인테리어를 바꾸는 일보다 내 마음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는 95도 이상의 뜨거움을 품고 있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뼛속까지 시리게 얼음을 담아내고,

그 위에 차가운 물을 붓고, 샷을 얹는다.

확실한 것도, 나쁘지 않다.

그 정도의 선명함이 때론 필요하다.

그래서 요즘은, 무례한 손님에게까지 무작정 웃으며 맞이하려 애쓰던

예전의 나에게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서비스업'이라는 말에 가려 내 감정과 존중받을 권리를 애써 무시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분명한 선을 긋고 싶다.

내 공간에 들어선 이상, 나와 이 공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줬으면 좋겠다.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맞이하는 장소이기에.

내 공간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아껴주는 손님들에게는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예의 없는 태도와 무례한 말투에는 더 이상 나를 구겨 넣지 않으려 한다.

단호함은 불친절이 아니라 내 공간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다.


그렇게 오늘도 문을 열고 정원을 살피고 커피를 내리고 손님을 맞이한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의 답은 아마, 매일 아침 다시 열리는 이 평범한 하루 안에

조금씩, 조금씩 담겨 있을 것이다.


사실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건 다음 편에 쓰기 위해 조금은 아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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