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올레 이브스키-가이몬 코스
일본의 산이라고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후지산인데 가고시마에도 비슷한 분위기의 산이 있습니다. 가이몬산입니다. 정상에 구름을 이고 있는 모습이 꼭대기가 녹지 않은 눈으로 덮인 후지산을 떠올리게 합니다. 규슈올레 이브스키-가이몬 코스는 일본의 기차역 중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니시오야마 역에서 출발하여 가이몬산을 빙 둘러가는 길입니다.
화산지대의 특유의 검은 흙밭 사이를 걸으며 올레길에서 얼굴이 익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바닷가 근처 마을을 지나면서는 결혼 45주년을 기념해서 여행 오신 노부부를 만납니다. 남편 되는 분과 고향과 젊은 시절 이야기 등을 소재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눕니다. 아내분은 등에 조그마한 가방을 메었고 남편분의 조금 큰 배낭 주머니에는 물병이 두 개가 담겨있습니다. 두 분은 적절한 걸음걸이로 일행들과 흐름을 이어갑니다. 가다가 쉬고 다시 걷습니다. 가이몬산에 다가갈수록 두 분의 거리도 점점 더 가까워집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올해가 결혼 20주년입니다. 10주년에는 나름 유명하다는 뷔페집에 갔었습니다. 15주년에는 뭐를 한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은 안 나네요. 세월은 빨라 결혼 후 벌써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예전에 사용하던 우리 집 현관 비밀번호 6자리는 991128입니다. 결혼기념일이지요. 지금은 번호가 우리 부부의 처음 만난 날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처음 만난 날이나 결혼기념일이나 집에 드나들면서 워낙 여러 번 눌러대서 잊히지 않습니다.
딸아이에게 쓴 편지에도 결혼 45주년 노부부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올해가 결혼 20주년이라고 말하면서 현관 비밀번호 이야기도 꺼냅니다. 뭔가 기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생각해보자고 했습니다. 결혼식을 올린 그 무렵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때인데 아마 기념일을 좀 넘겨서 가족여행을 갈 것 같습니다. 큰 딸의 고3 입시가 끝나고 결과가 마무리되면 가족 모두가 어디에 가기로 한 곳이 있습니다. 그 여행에 결혼기념일도 같이 묻어가면 어떨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