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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규인 Aug 16. 2021

눈 감은 자들의 도시

<눈먼 자들의 도시>(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해냄)

<눈먼 자들의 도시>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이다. 저자는 마침표와 쉼표만을 사용하여 서술과 대화를 한 줄에 나열함으로써 기존 소설의 형식에서 탈피했다. 소설 속 실명한 작가가 종이 뭉치에 손가락을 짚어가면서 빽빽하게 쓴 글을 연상시킨다. 글자 홍수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글자 하나하나 잘 따라가면서 천천히 읽어야 한다. 마치 소설 속 인물들이 실명 후 앞으로 나아갈 때 벽을 짚으면서 한발 한발 뗐던 것처럼 말이다. 사라마구는 한 인터뷰에서 "기아와 전쟁, 착취 등 우리는 이미 지옥 속에 살고 있다. 모두가 눈이 멀어버린 집단적 파국과 함께 모든 것들, 긍정적인 것들과 부정적인 것들이, 떠오르고 있다. 내 책은 있는 그대로의 우리 세계를 그린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운전을 하다가 신호 대기 중에 눈이 먼다. 그 남자는 아내와 함께 안과를 찾게 되는데, 안과 의사도 곧 앞을 볼 수 없게 된다. 곧 도시 안에 사람들이 순식간에 전염된다. 그들은 “마치 안개 속이나 우유로 가득한 바닷속에 들어와 있는 것”(p.12)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실명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의사는 보건부에 전염병 신고를 한다. 보건부는 실명한 사람과 보균자를 예전 정신병원으로 쓰였던 건물에 격리 수용한다. 수용자는 240여 명. 안과 의사, 안과 의사의 아내, 첫 번째 눈이 먼 남자, 그의 아내, 검은 색안경을 쓴 여자, 사팔뜨기 소년, 안대를 한 노인 등. 그들을 감시하던 군인들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통제되지 않는 수용자를 사살하기도 한다. 예고 없이 찾아온 실명에 패닉 상태인 눈먼 자들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눈먼 사람들에게는, 우리 것이라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p.315) 시간이 흐를수록 그곳은 “지옥의 도랑처럼 악취가 나는 동굴”(p.189)로 변한다. 그곳에서 눈이 먼 자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


이 소설은 인간이 지닌 본성 선과 악의 측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타인의 시선이 차단된 속에서 권력을 바탕으로 폭력과 탐욕을 행사하는 악의 모습은 너무나 잔인하고 비인간적이어서 읽는 내내 불편했다. 무능한 정부는 통제력을 상실하고 눈먼 자들을 방치한다. 의사는 수용소 격리 직후부터 그 누구도 본인들을 도와주지 않을 거라면서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불길이 치솟는 건물 안에서 “솔방울처럼 꼭 붙어”(p.303) 출구를 찾기 위해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자를 찾는다. 눈이 보이지 않는 자들이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 속에서도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공동체 의식이었다. 그들은 극한 상황에서도 이름도 모르는 자를 의지하며, 공평하게 음식을 나누어 먹고,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배려한다.




악과 대비되어 뚜렷하게 보여지는 또 다른 선의 모습은 바로 이타심이었다. 안과 의사의 아내는 소설 속 인물 중에서 유일하게 앞을 볼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녀는 실명된 남편이 구급차로 이송될 때 본인도 눈이 멀었다면서 함께 따라나섰다. 감염된 사람들의 수용소를 자발적으로 들어간 그녀는 앞을 볼 수 없는 자들을 간접적으로 직접적으로 도와준다. 처음에는 그녀의 이타심을 눈을 뜬 자로서 당연한 배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눈먼 자들보다는 불편함을 덜 느끼는 시각장애인은 권력을 휘두르며 악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눈을 떴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선을 베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녀는 홀로 눈을 뜬 자로서 참혹한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그 현실 속에서 그녀는 강한 정신력으로 버티며 눈먼 사람들을 이끌고 보호했다.




이 책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p.463)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짓으로 위장”(p.179)한 사람들로 인해 전염병 확진자가 증가 추세에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밑바닥과 그와 동시에 희망을 보았다. 눈을 감은 자들이여, 모두가 “눈먼 짐승”(p.192)이 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눈을 크게 뜨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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