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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규인 Aug 16. 2021

완벽한 결혼을 사랑한 그녀

<콜레라 시대의 사랑>(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민음사)

<부부의 세계>라는 드라마가 한때 인기였다. 드라마는 여주인공이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보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완벽했다.”라는 대사와 함께 시작된다. 평온한 가정, 자상하고 그녀만을 사랑하는 남편, 모범생 아들을 둔 그녀는 병원 부원장이라는 사회적 지위까지 갖추고 있었다. 곧 그녀의 남편은 외도 중이고, 그로 인해 엇나가는 아들이 비친다. 완벽함은 그녀의 눈에만 보이는 착각이고 허상임이 드러난다. 불완전한 결혼 생활은 그녀의 집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드라마 각각의 가정에는 저마다 다른 불행이 있었다. 하지만 외부 시선에는 철저히 가려져 있어서 오히려 행복한 가정으로 보이기도 한다.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쓴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 속 부부 페르미나 다 사 와 후베날 우르비노도 공식적으로는 “완벽하게 어울리는 한 쌍”(p.121)이었다. 우르비노는 명문가 출신에 부유하고 명성을 지닌 의사이고, “여자들이 가장 탐내던 미혼 남성”(p.185)이었다. 부유한 상인의 딸 페르미나 다사는 결혼 후 “카리브해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가장 행복한 여인”(p.44) 이 된다. 그녀가 사랑한 것은 완벽한 가정의 모습이었지만 그녀의 실상은 “돈 많은 하녀에 불과”(p.109)했다. 남편은 “자신만을 위해 건설한 거대한 행복의 제국을 다스리는 절대군주”(p.107)이었고, “가문의 명예를 빛내는 데 전념”(p.80)하였다. “훌륭한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안정”(p.246)이라고 말하는 남자는 그녀가 원하던 남편의 모습이 아니었다. 사랑이 없는 결혼의 종말은 무엇일까?     


 페르미나 다사는 결혼 전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2년 넘게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나눈다. 그는 가난한 우체국 전신기사이다. 둘은 결혼 약속을 하지만 페르미나 다사의 아버지가 반대한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어느 날 그에게 환멸을 느끼고 스스로 그와의 관계를 끊는다. 하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 그녀의 존재는 “왕관을 쓴 여신”(p.107)이다. 그는 첫눈에 그녀에게 반해서 상사병을 앓는다. “그의 인생에서 유일한 목표는 페르미나 다사를 다시 찾아오는 것”(p.21)이다. 결국 51년 9개월 4일 후. 페르미나 다사가 미망인이 되고,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그녀에게 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하고 그녀의 사랑을 쟁취한다. “외로운 사냥꾼”(p.100)을 자처했던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사랑은 처절하고 지고지순하다. 물론 소설에서 그의 비밀스러운 사랑이 수차례 그려지긴 하지만…….


 페르미나 다사는 완벽한 결혼을 사랑했던 것이 아닐까? 그녀는 플로렌티노 아리사와의 사랑을 알아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우르비노의 조건을 택했다. 페르미나 다사의 결혼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다. 조건을 선택한 결혼 생활이 행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결혼 생활은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다. 페르미나 다사가 플로렌티노 아리사를 택했다면 어땠을까? 조금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페르미나 다사는 시장통에 서 있는 플로렌티노 아리사를 마주한 순간 환상 속에 있던 그의 모습이 아닌 현실 세계의 그의 모습을 보게 된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교감은 만족스러웠으나 눈에 보이는 객관적인 지표는 그녀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미혼의 남녀들은 눈에 보이는 조건을 따라 상대를 평가하게 마련이다. 일명 결혼정보회사에서는 재력, 직업, 외모 등으로 회원들의 등급을 정하기도 한다. 사람의 인성이나 사랑을 등급표로 매기는 일은 없다. 눈에 보여지는 척도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점이 참으로 씁쓸하다. 결혼은 그 무엇보다도 두 사람의 사랑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선한 향내”(p.206)가 나던 페르미나 다사는 시간이 지나 “노파 냄새”(p.298)가 나는 노년이 되었다. 그녀는 이제 주체적으로 행복한 삶을 선택한다. 그녀의 딸이 “가문의 명성에 더 큰 해를 끼칠 게 틀림없다”(p.287)며 플로렌티노 아리사와의 사랑을 반대하지만 페르미나 다사는 그런 딸을 집에서 내쫓아버린다. 이제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남에게 보이는 게 아니라 본인이 느끼는 사랑, 그 본질이기 때문이다. 페르미나 다사와 플로렌티나 아리사는 먼 길을 돌고 돌아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 내“목숨이 다할 때까지.”(p.331) 여행을 하겠다는 페르미나 다사와 플로렌티노 아리사를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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