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혹시."
길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내게 다가와 팔을 살짝 잡으며 말을 걸었다.
'아, 도를 아십니까 구나.'
나는 흠칫 놀라 한 발짝 물러섰다.
"xx 여고, ooo 맞지?"
"어? 누구세요?"
친구의 이름 석자를 듣는 순간 여고시절로 돌아가 교실 풍경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인간의 뇌는 참 신비롭다. 어떻게 그렇게 뇌 어딘가 구석진 곳에 박혀 있던 추억이 그리 빨리 소환되는 건지. 이십여 년간 콕 박혀있다가 나온 기억이 신기할 따름이다. 서로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다음에 다시 보기로 하고 서로 가던 길을 갔다. 집에 오자마자먼지 뽀얗게 앉은 졸업앨범을 넘겨보았다. 집에 오는 길 끄집어냈던 그 친구의 모습과 사진이 똑같았다.
고등학교 시절로 여행을 다녀오게 해 준 친구가 반갑고 고마웠다. 살다 보면 우연히 마주치는 인연들이 있다. 얕은 인연은 또다시 스치기도 하고 깊은 인연은 오래 이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한 번 그 친구를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일주일에 한 번 병원에 가야 해서 잠깐 외출했다가 병원 앞에서 만났다. 평소 나의 동선이 아닌 곳에서도 만난 걸 보면 어째 오래갈 인연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