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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규인 Dec 04. 2023

동네에 아는 사람이 없다면

"이사하면 어떤 기분이에요? 동네에 아는 사람이 없으면 여행지에 온 느낌인가요?"

나는 새로 이사 온 사람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니 외로워요."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여행지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보니 겉모습과 행동을 함에 있어 주변 의식을 할 필요가 전혀 없어 편하다. 난 이런 점에서 이사를 여행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다.


한 동네에 오래 살다 보니 아는 사람이 꽤 많아졌다. 집 밖을 나가서 볼일을 보고 들어오면 아는 사람을 최소 한 명은 만나게 된다. 물론 그들이 반갑다. 하지만 때때로 지나치고 싶을 때도 있다. 바쁘거나, 마음의 여유가 없다거나, 머리를 안 감았거나, 옷이 추레하거나, 양치를 안 했거나 등등의 이유로 말이다.


오늘은 순전히 햇볕 차단 용도로 벙거지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밖에 나갔다. 얼굴에 레이저 시술을 받아서 직사광선을 피할 요량이었다. 모자와 마스크는 햇빛 차단뿐만 아니라 나의 존재도 완전히 감춰주었다. 바로 앞에서 아는 언니를 만났는데 전혀 알아보지를 못했다. 내가 불러 세우니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나를 빤히 보았다. 모자의 챙을 들어 올리고서야 나를 알아보며 웃었다. 집에 오는 길 엘리베이터에서 거울로 나의 모습을 보았다. 겨우 두 눈만 보일 뿐이었다.


나는 유레카를 외쳤다.

'벙거지와 마스크만 있으면 동네에서도 이사한 사람으로 전환이 가능하겠군. 내일도 이러고 돌아다녀 봐야겠다. 어떤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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